윤 대통령, 아세안에서 ‘캠프 데이비드’ 결과 부각…러시아에는 “북과의 군사협력 시도 중단”
윤석열 대통령은 6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한·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에서 한·미·일 3국의 아세안 협력 공동 대응을 강조하며 지난 달 캠프 데이비드 회담 결과를 부각했다. 한·미·일 공조를 아세안과의 협력 지렛대로 활용하는 동시에, 캠프 데이비드 회담 뒤 첫 다자회의에서 3국 관계 격상을 국제적으로 천명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러시아를 겨냥해 “북한과의 군사협력 시도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북·중·러 대 한·미·일 충돌 구도가 격화하는 흐름이다. 다만 윤 대통령은 중국에는 “한·일·중 협력” 복원을 제안하며 손을 내밀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현지시간) 자카르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아세안 정상회의 모두발언에서 모두발언에서 “지난 8월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일 협력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면서 “한·미·일 3국은 아세안이 주도하는 지역 구조에 대한 전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각국의 인·태 전략을 조율하고, 신규 협력 분야를 발굴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독자적으로 아세안 정상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한·미·일의 아세안 전략 공조를 띄운 데는 ‘캠프 데이비드 회담’ 결과 이행의 첫 발을 딛는 성격이 있다. 한·미·일이 ‘모든 분야, 인·태 지역과 그 너머’까지 협력을 확장하기로 한 만큼 첫 다자회의에서부터 ‘하나의 협의체’로 움직이겠다는 신호를 국제사회에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현지 브리핑에서 “아세안 협력과 역내 평화 번영을 위해 함께 한·미·일이 노력하는 효과가 글로벌 사회에 확산되도록 한다는 연장선상에서 이번 아세안,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순방을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미·일은 지난달 3국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우리는 아세안 중심성 및 결속과 함께, 아세안이 주도하는 지역 구조에 대한 지지를 전적으로 재확인한다”면서 “우리는 아세안 파트너들과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명시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또 “국제사회의 평화를 해치는 북한과의 군사협력 시도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조만간 만나 무기거래 등 협상에 나설 거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러시아를 겨냥해 경고 메시지를 낸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이 “어떠한 유엔 회원국도 불법 무기거래 금지 등 유엔 안보리(안전보장이사회)가 규정한 대북한 제재 의무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고 한 것 역시 북·러 접촉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될 수 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한 나라는 세계 평화와 안보에 비토권을 갖고 중요한 때 영향력을 행사해야 하는 나라이고 다른 한 나라는 지난 20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가장 엄중한 결의안을 가동한 당사자”라며 “두 나라의 협력은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러시아와 전쟁물자, 공격용 무기, 군사기술을 놓고 협의하고 있다는 것을 주의 깊게 관찰 중이고 조치는 실제 이행될 경우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한·미·일 강조로 가치 공유국과의 연대, 중국 견제 등에 방점을 두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조응하는 한국의 외교 전략 기조는 재확인됐다. 윤석열 정부는 독자적인 인·태 전략과 지역 특화 정책인 한·아세안 연대구상을 내놓을 때부터 미국의 인·태 전략에 발맞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더해 한·미·일 3국 밀착 틀이 공고해지면서 대외 전략에서 미국에 보폭을 맞추는 전략이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 북·러의 군사협력이 심화하고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더딜수록 북·중·러 대 한·미·일이라는 신냉전구도가 고착화할 수 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다만 지난 4일 기자들과 만나 이번 다자회의 의장국들인 인도네시아와 인도의 미국과의 협력·긴장 관계를 언급하며 “한국과 인도, 인도네시아는 국방·방산 협력뿐만 아니라 경제안보, 첨단기술, 환경 분야까지 다양한 협력을 추진해 왔다는 점에서 한국 나름대로의 특장점이 있다”고 독자성을 강조했다.
회의에서는 ‘인·태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AOIP)에 대한 한·아세안 정상 공동성명’이 채택됐다. AOIP는 2019년 채택된 아세안 차원의 인·태 지역구상이다. 윤 대통령은 한국 정부의 한·아세안 연대구상의 외연과 깊이 확장을 환영하고 “아세안 중심성과 AOIP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근간으로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윤 대통령은 내년 한·아세안 대화관계 수립 35주년을 맞아 양측 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할 것을 제안했다.
윤 대통령은 “역내 핵심 해상교통로인 남중국해의 평화와 안정이 인·태 지역의 번영에 필수적”이라며 “아세안 국가들의 해양 법 집행 역량을 지원하고 아세안과 연합훈련 공조를 확대하면서 해양안보 협력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경제 분야에서는 ‘한-아세안 디지털 혁신 플래그십 사업’ 추진과 메콩강 유역 4개국(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베트남)의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기여방안 등을 논의했다.
2030 세계박람회 부산 유치 활동에도 방점을 찍었다. 윤 대통령은 “부산은 2014년과 2019년 두 차례에 걸쳐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개최한 도시”라며 “부산이 다시 한번 인태지역과 전 세계 인류의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데 기여할 수 있도록 여러분의 관심과 지지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쿡제도, 캐나다, 말레이시아,베트남 등과 양자 정상회담을 열어 양국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세계박람회 부산 유치에 대한 지지를 요청했다.
자카르타 |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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