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개발 사업, 평가 미흡도 수십억씩 배정....R&D예산 비효율 사례 살펴보니
중소기업 보조금 형식 뿌려주기 사업 대폭 삭감
중기부 연구장비활용 바우처지원 사업은 전액 삭감도
33년 만의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의 후폭풍이 계속되는 가운데 정부가 예산 삭감의 근거로 들었던 R&D 예산 비효율의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했다. 비슷한 사업에 예산이 중복으로 투입되거나 중소기업에 보조금 형식으로 뿌려진 예산이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6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국회 등에 따르면, 과기정통부는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예산결산심사 자료로 ‘2024년 R&D 예산 비효율 조정 예시’를 제출했다.
내년도 국가 R&D 예산은 25조9152억원으로 올해(31조1000억원) 대비 16.6% 삭감됐다. 1991년 이후 33년 만의 국가 R&D 예산 삭감에 과학기술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출연연구기관 소속 연구자를 중심으로 한 과학기술계는 전날 성명을 내고 정부의 사과와 예산 삭감 철회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날 공개된 R&D 예산 비효율 예시는 그동안 정부가 언급한 중복·미흡 사업과 중소기업 보조금 형식의 사업이 위주다.
우선 대표적인 유사중복 사업으로 보건복지부의 백신기술개발 사업이 꼽혔다. 복지부는 ‘미래성장고부가가치백신개발’ ‘백신기반기술개발’ ‘신속범용백신기술개발’ 등 백신기술개발을 위해 3개 사업을 동시에 진행했다. 각각의 사업에 요청한 내년도 예산이 89억8700만원, 103억5000만원, 83억7400만원으로 모두 합하면 277억1100만원에 달한다.
이에 대해 과기정통부는 “감염병 사업군 특정평가 결과 3개 세부사업이 유사중복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결국 이 3개 사업은 ‘글로벌백신기술선도사업’으로 통폐합되고 내년도 예산도 51억900만원으로 삭감됐다.
R&D 성과가 충분하지 않은 사업들도 구조조정 대상이 됐다. 국토교통부의 ‘철도배전선로케이블 무전원·무선안전 감시기술개발’ 사업은 올해 국가연구개발성과평가에서 68.3점으로 미흡을 받았다. 소프트웨어 등록건수가 목표치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이 사업에 배정된 내년도 예산은 당초 국토부가 신청한 52억2000만원에서 대폭 삭감된 12억8200만원으로 결정됐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재생에너지디지털트윈 및 친환경교통실증 연구기반구축’ 사업도 52.2점으로 미흡 평가를 받아 내년도 배정된 예산이 114억1900만원에서 66억9200만원으로 줄었다. 환경부의 ‘ICT기반 환경영향평가기술 개발사업’도 마찬가지로 미흡 평가를 받아 예산이 44억4000만원에서 20억원으로 반토막 났다.
중소기업에 대한 보조금 형식의 R&D 예산도 대거 삭감됐다. 중소벤처기업부의 ‘공정품질기술개발사업’은 당초 내년도 예산으로 420억4200만원이 배정됐지만 70억9100만원으로 6분의 1로 줄었다. 과기정통부는 “국내 제조 중소기업 공장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공정 자동화·지능화·효율화 등을 위해 불특정 다수의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사업이라 다른 R&D 사업과 중복 가능성이 높고, 현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소액·단기적인 사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산업부의 ‘공공에너지선도투자 및 신산업창출지원사업’도 예산이 42억1200만원에서 1억7900만원으로 크게 줄었다. 역시나 경쟁률이 매우 낮은 보조금성 사업이라는 이유였다.
과기정통부 사업도 예산 삭감을 피하지 못했다. 과기정통부의 ‘ICTR&D혁신바우처지원사업’은 예산이 402억900만원에서 19억2000만원으로 삭감됐다. 과기정통부는 “혁신적인 기술개발 등 연구개발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의 생산활동을 지원하는 보조금 성격이라 R&D 사업으로서 필요성이 높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중기부의 ‘연구장비활용 바우처지원’ 사업은 90억원의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과기정통부는 이 사업에 대해서도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중소기업의 생산활동을 지원하는 보조금 성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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