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이 바꾼 삶...“연기는 나를 찾는 과정이죠”
85년 ‘에쿠우스’ 데뷔 이후 140여편
“15만원 월세에도 연기 포기 생각 안해”
“배우 생활을 하면서 ‘난 뭐지?’ 혹은 ‘생각하는 게 나인가 아니면 껍데기가 나인가’라는 생각을 해요. 그저 작품의 역할에 맞게 연기하면서 나를 찾아가고 있어요.”
영화 56편, 드라마 17편, 연극 70여 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리즈까지 포함하면 출연 작품만 140편이 훌쩍 넘는다. 탄탄한 연기력으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 배우 김종수의 이야기다. 올해에도 ‘드림’을 시작으로 ‘밀수’와 ‘비공식작전’,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화란’ 등 영화만 5편을 했다.
그는 늘 새롭다. 친근한 옆집 아저씨였다가 갑자기 피도 눈물도 없는 빌런으로 변신한다. 절절한 부성애로 관객들의 눈물을 쏙 빼다가도 속정 깊은 직장 상사가 되기도 한다. 대통령, 안기부장, 법원장부터 언론사 편집국장, 경찰, 선생님 등 안 해본 역할이 없다.
그가 연기에 입문한 지는 어언 38년. 인생의 약 3분의 2를 연기에 쏟았다. 연륜이 묻어날 나이지만, ‘배우’ 김종수에게 삶은 여전히 물음표다. 그런 그를 헤럴드경제가 단독으로 만났다.
김종수가 연기에 처음 발을 디딘 건 지난 1984년. 울산의 연극 극단 ‘고래’가 단원을 모집하는 포스터를 보고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이듬해 연극 ‘에쿠우스’의 주연으로 데뷔했다. 그는 “산에 올라가 소리 지르며 발성 연습을 하고, 극단 형이 가르쳐 주는 대로 대사를 연습했다”며 “그때 형이 ‘연기는 이런 거야’라고 가르쳐주지 않고 연기를 느끼게 해줬는데, 그게 참 도움이 됐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사실 연기는 그가 고등학교 시절 남몰래 키워 온 꿈이었다. 선생님이 준 티켓으로 우연히 연극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본 후 그의 진로는 결정됐다. 경남연극제에서 연기상을 받으며 실력을 알린 이후 20년간 그가 활동한 연극 작품만 70여 편이다. 그는 “무대에서 연기할 때 관객들의 호응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게 매력적”이라며 “ ‘이데올로기의 시대’였던 당시, 생각이 앞선 (연극쟁이) 형들도 멋있었다”고 말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연기에 대한 열정만으로 먹고 살기는 쉽지 않다. 그 역시 월세가 없어 친구 집에 얹혀 살았고, 30대 중반엔 영양실조에 걸리기도 했다. 덕분에 교육, 아동 극단, 방송 VJ, MC, 성우 등 생계를 위해 안 해본 직업이 없었다. 그는 “재밌고 좋았지만 힘들기도 했다”며 “15만원짜리 월세방에서 사는 내가 사람 구실을 못하나 싶어 소주만 마시면 한숨이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연극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한 번도 안 했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런 그에게도 기회가 왔다. 바로 2007년에 개봉한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이다. 당시 이 감독이 사투리를 쓰는 배우들을 모집한다는 소식에 무작정 오디션에 지원했다.
떨린 마음으로 연기를 보여줬지만, 당시 이 감독은 별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달 뒤, 오디션을 봤던 역할보다 대사가 더 많은 역을 맡아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김종수는 극중 송강호·전도연과 함께 땅을 보러 다닌 부동산 사장 역할로 스크린에 처음 얼굴을 알렸다. 그는 “영화를 촬영할 때 감독과 배우들이 참 많이 배려해줬다”며 “송강호 배우도 제게 (성공의) 기회가 무조건 올 것이라며 용기를 줬다”고 말했다.
‘밀양’ 이후 그에게 러브콜이 쏟아졌다. 이는 ‘풍산개(2010)’, ‘홈 스위트 홈(2012)’ 등 수많은 영화 및 드라마의 출연으로 이어졌다. 이때 그는 울산에서 서울로 거쳐를 옮겼다. 동서울행 버스를 탔던 지난 2014년, 그의 수중엔 월세 30만 원짜리 옥탑방을 얻을 수 있는 보증금 500만 원이 전부였다.
드라마 ‘미생’에 출연한 시점도 이 때다. 그는 냉철한 원칙주의자이지만, 따뜻한 속정이 있는 김부련 부장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당시 사람들은 그를 볼 때면 ‘부장님’이라고 부르며 팬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정작 그는 이를 부끄러워했다. 그는 “나는 김부련 같은 이상적인 어른이 아니라 옥탑방에서 사람 구실을 걱정하며 사는 사람이었는데, 그런 관심과 사랑을 받는 게 부끄러웠다”고 회고했다.
그가 맡았던 여러 캐릭터 중 가장 헤어 나오기 힘들었던 역할은 바로 박종철 군의 아버지 역이었다. 민주항쟁을 다룬 영화 ‘1987’에서 그는 차디찬 강에 아들의 유골을 흘려 보내며 “아버지는 아무 할 말이 없데이”라는 대사로 관객들을 눈물샘을 자극했다. 그는 “처음엔 살아있는 분을 연기하는 게 민망했고,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당시 아픔을 깊이 공감하지 못해 (연기를 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었다”며 “촬영을 마치고 요양병원에 계신 박군의 아버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니 그 캐릭터를 떠나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작 배우인 김종수는 이미 수십여 편의 영화를 했지만, 그래도 아직 영화가 매력적이다. 연기의 재미를 넘어 영화가 불안한 그의 삶을 위로해주기 때문이다. 그는 “삶은 늘 선택의 기로에 있는데, 작품 안에서 (내가) 누군가가 되어 뭔가를 확실하게 선택하는 것이 불안한 내 삶의 위안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유명 배우도 감사하지만, 작품 안에 녹아드는 배우로 남았으면 좋겠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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