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19년 차’ 라미란 “항상 조금은 덜 밉게 보였으면” (종합)[인터뷰]
[OSEN=유수연 기자] ‘잔혹한 인턴’의 배우 라미란이 작품에 대한 비하인드를 전했다.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는 티빙 ‘잔혹한 인턴’의 주역 배우 라미란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잔혹한 인턴’은 경력 단절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오피스 드라마로 지난 11일 티빙에 첫 공개됐다. 12부작 중 현재 8부까지 공개된 가운데, 라미란은 “저도 재밌게 잘 보고 있다. 사실 오픈 하기 전에 배우들끼리 미리 시사를 하자, 짧은 거니까 4편 정도만 보자 했는데, 그날 6회까지 본 것 같다. 놔뒀으면 다 끝까지 봤을 수도 있었을 거 같다”라며 “6부까지 봤나 보니 저 역시 7, 8부를 엄청나게 기다렸다. 재밌게 보게 됐고, 앞으로 몇 회가 더 남았는데 배우들끼리도 아직 보질 못해서 궁금하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극 중 자아를 찾기 위해 불혹의 나이 40대에 재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마켓하우스 ‘인턴’에 입사하게 된 경단녀 ‘고해라’역을 맡은 라미란은 캐릭터와 깊은 공감대를 전했다. 그는 “사실 경력 단절은 배우라는 직업에 더 있다. 작품이 없을 때는 백수이지 않나. 그래서 경력 단절은 항상 있었고, 저도 출산과 임신을 하면서 2년 정도 공백이 있었다. 그래서 해라에게 정말 공감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다시 돌아보면, 저는 정말 하루 종일 아기만 보고 있더라. 그때는 영화나 드라마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무대 공연을 했을 때인데, ‘다시 무대 가서 공연할 수 있을까’, ‘누가 날 불러주긴 할까?’ 하면서 하는 일이 없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나는 연기를 죽을 때까지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일을 못 하게 되면 어쩌지. 이렇게 3~4년씩 지나면 아예 못하게 되면 어쩌나, 하고 굉장히 불안했던 것 같다”라고 털어놨다.
불안감을 어떻게 해소했냐는 질문에 라미란은 “안정이 안 됐죠”라고 웃으며 “일을 하니까 괜찮아졌다. 아이가 돌이 됐을 때 ‘친절한 금자씨’ 오디션을 보고 영화라는 걸 처음 시작했는데 날아갈 것 같더라. 일을 하러 나간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그런데 애를 낳고 첫 영화를 하니 모르는 것투성이고, 엄청 눈치도 봤다. 촬영 자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다 보니 정말 움츠려서 했던 거 같다”라고 회상했다.
특히 그는 “해라도 7년의 휴식 이후 돌아온 회사에서 후배와 동기들을 윗사람으로 맞이하게 됐는데, 저도 그랬다. 저 역시 처음 매체 연기로 왔을 때가 이미 서른이었으니, 동기건 후배건 그들의 서브 역할이 되기도 하고,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라며 “하지만 (주연은) 그 사람들이 맡은 거지, 제가 할 수 없지 않나. 그런 것에 대한 욕심은 전혀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 각자 자리가 있고, 있어야 할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제가 해야 할 몫이 많아진 것뿐이지, 언제든지 유연하게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더불어 기억에 남는 시청자 반응에 대해 “‘너무 내 이야기 같아서 공감된다’는 댓글을 봤는데, 그게 더 슬프더라. 이 이야기에 공감이 되면 슬픈 거지 않나. 해라가 성공했을 때 공감이 된다고 해야 하는데, 현실 같아서 공감된다고 하니까 씁쓸하더라”라며 “어쨌든 그래도 다행인 건, 해라라는 인물이 그래도 파이팅이 있고, 발붙이고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거다. 재미있고, 이런 걸 떠나서 그런 사람들에게 조금 위로가 되고, 응원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감하신다는 그 댓글이 씁쓸하지만 조금이라도 힘이 됐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저는 좋았다”라고 떠올렸다.
7년 전에는 일에만 몰두하던 고해라는 다시 일터에 복귀하자 워킹맘들의 처지에 공감하는 따뜻한 인물로 변모했다. 이같은 캐릭터의 변화에 대해 라미란은 “감독, 작가님하고도 ‘해라가 왜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었어?’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라며 “사실 돌이켜보면 해라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7년 전의 해라와 지금의 해라는 일에 대한 열정은 같다. 근데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과거의 해라는 정말 각서를 쓰고도 승진하고 싶은 만큼 더 간절했던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똑같이 일하는데, 집 핑계 대는 걸로 보이는 거다.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으니까. 자신은 애가 다치고 아파도 일을 우선으로 삼는 여자였으니까. 다른 사람의 그런 모습을 인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해라도 같은 입장이 되고 7년이 되다 보니까 그런 껍데기가 많이 벗겨졌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원래 바뀌지 않는다.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 타고난 성향과 본질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라며 “주변 상황이 변하면 사람의 행동이 변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해라가 생각하는 정의는 과거의 그것이 맞았을 뿐이다. 현재의 해라는 인생의 풍파를 많이 겪고, 삶의 가치관도 달라지면서 죄책감을 느끼게 됐다. 이렇게 본다면 과거의 해라와 지금의 해라는 동일하다고 본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라미란 역시 출산 후 많은 점이 변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저도 많이 바뀌었다. 일단 인상이 정말 많이 좋아졌다. 옛날에는 정말 구형 아반떼 후미등처럼 눈이 올라가 있었고, ‘집에 안 좋은 일 있냐?’ 싶을 정도로 눈이 늘 부어있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 결혼하고 인상이 많이 바뀌었고, 아이를 낳고 또 바뀌었다. 지금은 축 처지지 않았나”라고 웃으며 “성격도 많이 둥글둥글 해졌고, E였는데 I 성향으로 바뀌기도 했다. 예전보다는 조금 더 소극적으로 바뀌었다. 또한 더 이상 헛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게 결국은 ‘인정’하는 것이더라. 욕을 하든 칭찬하든, ‘맞아’라고 인정할 수 있는 태도로 변했다”라고 부연했다.
극 중 ‘워맨스’를 펼친 엄지원과의 호흡도 전했다. 두 사람은 지난 2013년 영화 ‘소원’에서 한 차례 호흡을 맞췄고, 약 10년 만에 같은 작품에서 재회하게 됐다. 라미란은 “그동안 같이 작품을 한 적은 없지만, 오랜만에 만난 건 아니다. 늘 안부는 묻고 살았다 보니 내적 친밀감 같은 게 있었다”라며 “현장에서 호흡은 잘 맞았다. 간략한 카메라 동선과 같은 리허설은 했지만, 감정을 쓰는 리허설은 거의 안 했다. 이미 학습된 액션이나 리액션이 나오면 신선하지 않을까 봐 그랬다”라고 회상했다.
엄지원이 맡은 최지원 역과 고해라의 감정선에 대한 분석도 들을 수 있었다. 라미란은 “두 사람은 원래 입사 동기였고, 많은 것들을 공유한 사이였다. 하지만 7년 동안 두 사람은 연락도 하지 않았고, 면접장에서 재회하게 된다. 당황하는 마음도 있었겠지만, 사실 해라는 지원을 조금 의지하는 구석도 있었을 것”이라며 “경력 단절 여성의 퇴직을 유도해달라는 제안받았을 때는 지원에 대한 안타까움도 컸을 거다. 변한 지원에 대한 짠한 마음도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2005년 영화 ‘친절한 금자씨’로 매체 연기 데뷔를 하게 된 라미란은 벌써 19년 차 경력의 배우가 되었다. 출산 후 데뷔하게 된 그는 “영화로 처음 데뷔하려고 지원했던 건 아니었다. 20대 중반에 뿌려놓았던 프로필이 돌고 돌았던 거다. 그때 당시에는 연락이 없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오전에 전화가 와서 ‘오후에 오디션에 오겠냐’하더라. 정말 말 그대로 아이에게 젖을 먹여주고 있었다. 준비하고 오디션에 가는데, 가는 동안 심장이 정말 벌렁거렸고,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편으로면 ‘되면 정말 어떡하지?’ 싶었다”라며 “오디션을 보고 2일 후, 캐스팅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다음부터 ‘어떻게 해야 하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설렘은 너무 행복한 설렘이었다. 정말 날아갈 것처럼 좋았다”고 회상했다.
이후 그는 ‘막돼먹은 영애씨’ 시리즈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당시 인연을 맺은 한상재 PD와 이어 ‘잔혹한 인턴’ 출연에까지 닿게 되었다. 라미란은 “‘영애씨’의 연장선 느낌이 있긴 하다. 제가 ‘막돼먹은 영애씨’의 수혜자 중이 하나기도 하지 않나. 워낙 ‘영애씨’ 팬들이 많았고, 저라는 배우를 많이 알리게 된 작품이기도 해서 ‘잔혹한 인턴’을 안 할 수가 없었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재미있는 시리즈물이라 매년 즐기면서 했다. 캐릭터가 욕을 많이 먹긴 했지만, 애정도 상당했다”라며 “한상재 감독이 ‘잔혹한 인턴’을 초고 준비할 때부터 만나서 이야기했었는데, 안 할 수가 없었다. 조금 안 맞는 게 있는 거 같아도 그냥 해야지, 싶었다”라고 웃었다.
각종 작품에 출연하며 ‘열일’ 행보 끝에 지난 2021년 영화 ‘정직한 후보’를 통해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수상 이후 배우로서 삶이 달라졌나’라는 질문에 라미란은 “전혀 없다”라고 단호히 답해 웃음을 안겼다. 이어 “청룡영화제 외에는 어떤 곳에도 노미네이트가 안 되기도 했고, 그냥 특별한 이벤트였다고 생각한다. 관객들을 즐겁게 해주고, 웃게 해줬다는 것에 대한 ‘잘했어’라는 ‘보너스’ 개념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이후 크게 달라진 것도 없고, 오히려 작품이 안 들어올까 봐 걱정했다. 상 받으면 오히려 작품이 더 안 들어온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실 수상이 무슨 의미가 있나. 칸이나 아카데미 상을 받는다고 해도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 더 입방아에만 오르내릴 뿐”이라며 쿨한 면모를 보였다.
앞으로 드라마 ‘이상한 과자가게 전천당’, ‘정년이’ 등 차기작을 앞둔 그는 “요즘은 많이 안 바쁘다. 3년 전에는 한 번에 다섯 작품을 했다. 지금은 시간이 너무 많다”라고 웃었다. 그는 “앞으로 또 보여드릴 모습이 뭐가 있을까 싶다. 사실 저는 항상 내 캐릭터가 밉게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어떤 역을 하던, 조금 더 안 밉게 하자, 하는 바람이 늘 있었다”라며 “여태껏 다 재미있어서 작품을 선택했다. 그게 저에게 가장 중요하다. 여성의 경력 단절이나 무슨 사상이나 큰 포부, 주제 의식이 있어서 택하는 게 아니라, 얼마나 흥미로운가, 재미있냐가 저에게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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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티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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