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피곤하면 왜 몸이 무겁게 느껴질까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2023. 9. 6.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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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뇌 감각피질의 넓이에 비례에 만든 인체 모형인 감각 호문쿨루스. 얼굴과 손은 실제보다 훨씬 크고 몸과 팔다리는 왜소한 생김새다. 같은 자극이라도 신체 부위에 따라 꽤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다. 위키피디아 제공

인터뷰 녹음을 듣다 보면 ‘이게 내 목소리인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발성기관에서 만들어진 음파가 입을 통해 밖으로 나간 소리이므로 이게 객관적인 내 목소리일 것이다. 반면 내가 듣는 내 목소리는 여기에 머리를 통과한 음파가 섞여 변조된 상태이니 말이다. 녹음기가 없던 시절 사람들은 자신의 진짜 목소리를 알지 못했다.

얼굴도 마찬가지다. 구조적으로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거울을 본다고 해도 좌우가 바뀐 상태다. 거울 속의 내 얼굴과 타인이 보는 내 얼굴의 인상은 십중팔구 다르다.

우리는 얼굴의 비대칭을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정면 얼굴 반을 지우고 나머지의 좌우를 바꿔 붙인 좌우대칭 얼굴은 꽤 낯설다. 연예인들은 얼굴 비대칭을 잘 알고 있어서 예능에 나가면 예쁜 쪽 얼굴이 나오게 자리 배치를 요구하기도 한다.

몸 냄새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마스크를 쓰게 되면서 벗어둔 마스크에서 나는 입 냄새에 놀랐다는 사람이 많다. 입 냄새를 포함해 자기 몸에서 나는 냄새는 후각 피로 현상으로 정작 본인은 실시간으로 잘 맡지 못한다. 

촉각도 예외는 아니다. 특정 신체 부위의 감각에 연결된 대뇌 감각피질의 넓이와 비례해 만든 인체 모형인 ‘감각 호문쿨루스’를 보면 얼굴과 손은 엄청나게 크지만 몸과 팔다리는 왜소하다.

신체 부위에 따른 촉각의 민감도를 떠올리면 아주 이상한 그림은 아니다. 아무튼 외부에서 같은 자극이 오더라도 닿는 신체 부위에 따라 바로 느끼는 것부터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까지 반응의 폭이 크므로 촉각 정보 역시 객관적일 수 없다. 

● 손 무게, 실제의 절반으로 느껴

최근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는 우리가 자신 몸에 대한 무게를 상당히 왜곡해 지각한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자신의 손 무게를 실제보다 훨씬 가볍게 느낀다는 것이다.

컨디션이 안 좋거나 피곤하면 몸이 무겁게 느껴진다. 실제 피로한 상태에서 손 무게를 추측하는 실험을 한 결과 더 무겁게 느끼는 것으로 밝혀졌다. 자기 몸에 대한 무게감이 변하는 건 몸 상태에 따른 적절한 행동을 유도하기 위한 뇌의 전략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내 손의 무게감이 느껴지나?’ 이렇게 반문할 독자들도 많을 텐데 사실 필자도 논문을 읽기 전까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뜻밖에도 우리가 무게를 어떻게 느끼는가는 아직 잘 모르고 있다. 다른 감각처럼 자극(무게)을 감지하는 수용체가 아직 밝혀져 있지 않다. 

우리가 자기 몸의 무게를 왜곡해 지각하고 있다는 사실은 사고나 병으로 팔이나 다리를 잃어 의수나 의족을 하게 된 사람들의 불만에서 드러났다. 실제 팔이나 다리보다 무겁지 않음에도 의수나 의족이 무겁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해당 신체 부위 무게의 절반에 불과한 의족도 여전히 무겁다고 불평했다.

영국 런던대 심리과학과 매튜 롱고 교수팀은 사람들이 자신의 신체 무게를 실제와 얼마나 다르게 느끼는지 알아보는 실험을 고안했다. 보통 성인의 손 하나 무게는 400그램 내외다. 연구자들은 100그램에서 600그램 사이에서 16단계로 무게를 달리한 추를 준비해 비교 평가로 손 무게로 느껴지는 추의 무게를 알아냈다.

손 무게의 경우 팔목 직전까지 팔을 의자 팔걸이에 걸치고 손의 무게감을 느끼게 했다. 저울 무게는 두 의자의 팔걸이를 약간의 간격을 두고 마주 보게 배치하고 각각에 팔과 손을 걸치고 사이 공간에 놓인 손목에 밴드를 두르고 추를 매달아 무게를 느끼게 했다.

추를 달리하며 손과 무게를 비교하는 실험을 반복한 결과 손의 무게와 같다고 평가한 추의 평균 무게는 200그램 내외였다. 자신의 손을 실제 무게의 절반의 무게감으로 느낀다는 결과다. 팔이나 다리를 대상으로 한 추정 실험은 없지만, 의족을 한 사람들의 반응으로 볼 때 실제의 반도 안 되는 무게감으로 느끼지 않을까.

● 체화된 인지의 중요성

그런데 의족은 손실된 해당 부위의 다리와 발을 대신해 부족하나마 나름대로 기능함에도 불구하고 왜 외부 물체에 불과한 추와 마찬가지로 온전한 무게를 느끼는 걸까. 의족이 무겁다는 불만을 잠재우려면 더 가벼운 소재를 찾아야 하는 걸까.

잃어버린 다리를 대신하는 의족은 어느 정도 기능을 수행하지만 환지통, 넘어질 위험성, 무게감 등 여러 문제가 있다. 의족이 땅에 닿을 때 정보를 신경에 전달하는 감각 피드백 장치로 체화 정도를 높인 의족을 쓰면 이런 문제들을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 네이처 의학 제공

지난 2021년 역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는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 논문이 실렸다. 감각 피드백을 주는 의족을 쓰자 23%나 덜 무겁게 느꼈다는 내용이다. 연구자들은 무릎 위가 잘린 사람들을 대상으로 중단된 신경계의 말단에 전극을 연결하고 의족 발바닥에 센서를 붙여 발을 내디딜 때 그 신호가 무선으로 전극에 전달돼 신경계를 자극하게 만들었다.

원래는 환지통(팔이나 다리를 잃어 신경이 갈 곳을 잃어 생기는 통증)을 줄이고 보행을 좀 더 안전하게 하려고 감각 피드백 의족을 만든 것인데 부수적으로 무게감이 줄어드는 효과도 본 것이다. 그렇다면 단순히 물리적으로 연결한 의족과 땅과 접촉할 때 감각을 신경이 어느 정도 느끼게 하는 의족이 같은 무게임에도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연구자들은 체화의 정도 차이 때문이라는 설명을 제시했다. 체화(embodiment)란 외부 대상을 내 몸의 일부처럼 느끼는 현상이다. 체화가 많이 될수록 대상을 쓸 때 의식을 덜 하게 되는데, 이런 일은 일상에서 흔히 겪는다. 예를 들어 신발을 사서 처음 신으면 한동안은 불편하지만, 둘 다 서로 적응하면서(신발은 변형된다) 나중에는 편해져 신발을 의식하지 않는다.

의족도 마찬가지이지만 체화는 낮은 수준이라 여전히 불편하다. 그런데 센서를 달아 보행 시 땅과 닿는 자극의 정보를 신경에 보내면 뇌가 진짜 자기 다리와 발이라고 착각하는 순간이 늘어나, 체화의 수준이 높아져 무게감도 줄어드는 것이다. 그런데 왜 신체 부위는 같은 무게의 물체보다 훨씬 가볍게 느껴지는 걸까.

이에 대해 연구자들은 변별력을 높이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무게가 3㎏인 팔로 500g인 추와 400g인 추를 들고 무게가 얼마나 다른가를 평가한다고 하자. 감각은 절대적인 차이가 아니라 상대적인 차이, 비율에 민감한데 둘의 차이는 20%다. 그런데 손으로 들어 차이를 평가하면 팔의 무게도 더해야 하므로 차이가 크게 줄어들 것이다.

만일 신체 무게도 온전하게 감지한다면 둘의 무게 차이는 3.5/3.4=1.03, 비율로는 3%에 불과해 구분하기가 힘들 것이다. 그런데 팔 무게를 1㎏로 느낀다면(의수와 의족 결과를 보면 절반이 안 될 것이다) 1.5/1.4=1.07로 차이가 두 배 이상 늘어난다. 마치 저울의 영점조절처럼 우리는 신체 무게를 최소화해 지각함으로써 평가의 민감도를 높였다. 자기 객관화를 잃음으로써 대상의 무게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게 진화한 셈이다. 
 

같은 사람을 업더라도 깨어 있을 때보다 의식이 없을 때 훨씬 무겁게 느껴진다. 후자의 경우 내 몸의 움직임에 맞추는 반응이 없어 체화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 아닐까.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몸이 무겁게 느껴지는 건 쉬라는 신호

“몸이 무거운데...”

컨디션이 안 좋을 때나 피곤할 때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한다. 비유적인 표현 같지만, 실제 이런 상태에서는 가능하면 앉거나 누우려고 한다. 물리학의 관점에서 이런 행동은 들고 있는 짐을 내려놓는 것과 같다. 몸의 무게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

연구자들은 피로를 유발하는 운동을 10분 동안 하게 한 뒤 무게 비교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손의 무게를 실제의 70%로 느끼는 것으로 나왔다. 여전히 같은 무게의 추보다는 가볍게 느끼지만 앞서 실험에서 절반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꽤 무거워졌다. 피로한 상태에서는 뇌가 우리 몸을 더 무겁게 느낀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뇌의 몸무게 왜곡이 왜 이처럼 일관성이 없는 걸까.

이 역시 생존에 유리하게 진화한 결과다. 오랜 활동으로 손상된 몸이 회복해야 할 상태에서 몸이 무겁게 느껴지는 게 몸의 피로도를 나타내는 신호이고 그 결과 자연스럽게 쉬는 행동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결국은 모든 게 심리적 현상이란 말인가.

설사 그렇더라도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우리 몸은 심리의 변화를 반영한 생리적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앞서 의족의 예도 심리적으로만 무겁게 느껴질 뿐 실제 해당 부위의 다리보다도 가벼우므로 생리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뇌가 의족을 무겁다고 판단하면 이를 바탕으로 마치 모래주머니를 찬 것처럼 움직일 때 더 많은 에너지가 들어갈 것이라고 판단해 심혈관계가 준비한다. 실제 의족을 한 사람들은 뇌의 착각으로 심혈관계가 무리한 결과 건강이 나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득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체화의 정도가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친구를 업으면 상당히 무겁게 느껴진다. 반면 같은 친구가 깨어 있을 때 업으면 그렇게 무겁지 않다.

정신이 없을 때는 짐을 드는 것과 같은 객관적인 무게감이라면 깨서 업힐 때는 상대에 맞추려고 자세를 조정한 결과 실제보다 가볍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즉 업힌 사람의 반응이 일종의 신경 피드백으로 작용해 뇌가 내 몸의 일부로 해석하는 체화가 일어난 게 아닐까. 이를 정량적으로 측정하는 비교 실험을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7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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