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에 곤돌라 있다면, 파리에 부키니스트 있다

한겨레21 2023. 9. 6.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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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책방 기행]세금과 임대료 면제받는 센강변의 서점들…2024 파리올림픽 때문에 일시 철거 예정인데
퐁마리 다리 부근의 한 부키니스트. 서점 주인이 초록 상자 4개를 펼쳐놓고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한미화 제공

오래전 프랑스 파리에 갔을 때 체류시간은 단 하루. 에펠탑 아래서 사진 찍고 불타기 전 노트르담성당을 보고 루브르박물관을 뛰어다녔다. 그다음 파리를 갔을 때 오르세미술관과 퐁피두센터를 방문했다. 세 번째 파리를 방문해서야 센강의 노점상이 눈에 들어왔다. 센강 주변에는 루브르박물관이나 개선문 같은 역사적 건축물이 즐비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센강 오른쪽 기슭의 퐁마리 다리부터 루브르 선창까지, 왼쪽 기슭의 투르넬 선창부터 볼테르 선창까지 200개 넘는 노점상이 있다. 초록색 상자에 중고 서적과 고서적, 혹은 그림과 엽서 등을 담아 파는 부키니스트(Bouquiniste)다. 부키니스트는 엄연한 서점이면서 1991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센강 기슭에 등장한 헌책 노점상

인쇄술이 발명되기 이전에도 필사본이 거래됐다. 성당이나 시장으로 가는 길처럼 사람 왕래가 많은 곳에 좌판을 벌이고 필사본을 팔았다. 그렇다면 구텐베르크 인쇄혁명이 일어난 뒤에는 어땠을까. 인쇄본을 책방에서 팔았을까. 중세에 함부로 판매소를 차렸다간 큰 봉변을 당하기 십상이었다. 길드 때문이다.

직업이나 목적이 같은 중세 기능인의 조합을 일컫는 길드는 권한이 막강했다. 길드는 특정 산업을 독점했기에 빵이나 철물 등을 만들어 팔고 싶다면 먼저 길드에 소속돼야 했다. 대개 7년여 동안 도제식으로 이뤄진 견습은 필수였다. 견습생은 월급 한 푼 받을 수 없었고, 결혼하거나 술집에 가면 안 되는 등 엄한 규율을 지켜야 했다. 길드 조합은 전문 기술자 수를 제한하고 상품 공급량까지 조정했다. 길드에 속한 상인이 질 낮은 제품을 팔거나 손님을 속이면 벌금을 물리거나 추방했다.

인쇄서적업도 당연히 길드가 존재했다. 예컨대 18세기 영국 런던의 인쇄서적상으로 유명한 에드먼드 컬은 견습생으로 일하다 주인이 파산하자 서점을 이어받았다. 미국에서 출간된 뛰어난 어린이문학에 주는 뉴베리상은 출판서적상 존 뉴베리의 이름에서 따왔다. 뉴베리 역시 열여섯 살에 인쇄업자 윌리엄 에이어스의 견습생으로 출판일을 시작했다. 인쇄 장인들이 뭉쳐 집단을 형성한 길드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는 1548년에, 런던에서는 1557년, 파리에서는 1570년 등장했다. 이처럼 막강하던 길드는 16~17세기에 이르러 상공업이 근대화되고 특허와 저작권이 생기면서 필요성이 줄어들어 사라진다.

부키니스트는 16세기 센강을 따라 들어선 책 노점상에서 시작됐다. 부키니스트란 프랑스어로 헌책·고본을 이르는 부캥(Bouquin)에서 유래했는데 ‘헌책 노점상’이란 뜻이다. 부키니스트는 등장 뒤 바로 정부와 길드의 견제를 받았다. 당시 절대왕정은 불온한 내용이 담긴 책을 파는 부키니스트를 눈엣가시로 여겼고, 인쇄서적상 길드로 이를 통제하려 했다.

부키니스트는 프랑스 문학이나 고서 혹은 중고 음반(LP) 판매 등 전문 영역을 지닌 경우도 많다. 센강 주변 노점에서 책을 고르는 한 고객.

지정된 자리, 정해진 색깔의 매대만 허용

1649년 길드의 압력으로 서적상 이외의 사람이 센강 기슭에서 책을 파는 일이 법으로 금지됐다. 이후 검열 기준에 맞춘 책만 팔겠으니 허락해달라고 청원했지만 규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1810년에 이르러서야 나폴레옹 1세가 허가증을 갖춘 상인만 책을 판매하도록 허용했다. 이때부터 부키니스트는 파리 공인 상점들과 같은 지위를 획득했다.

1994년 파리시장이던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은 부키니스트가 사용하는 매대나 세금과 임대료 면제 등을 아예 법으로 제정했다. 이에 따라 노점상처럼 보이지만 부키니스트는 정식 서점의 권리를 가지며 동시에 엄격한 기준을 지켜야 한다. 지정된 자리에서만 영업할 수 있고 2m 길이의 초록색 상자 4개만을 매대로 사용해야 한다. 상자 색깔은 파리 시내에 있는 모리스 원기둥이나 왈라스 음수대와 동일한 초록색이어야 한다. 매일 아침부터 해 지기 전까지 영업할 수 있고 일주일에 적어도 4일 이상은 영업해야 한다. 6주의 휴가와 3개월의 병가를 사용할 수 있다. 단 세금이나 임대료는 없다.

파리시의 부키니스트 규정에는 “신간 서적을 팔 수 없고, 기념품 판매 비율을 준수해야 하는” 조항이 있다. 물론 서적 판매가 점차 줄어들자 기념품 판매를 늘리겠다고 요청했지만 파리시는 “그러려면 다른 상점을 빌려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다만 팬데믹 봉쇄로 서적 판매가 급감하자 기념품 판매가 허용됐다. 팬데믹 기간에 부키니스트의 매출은 80% 이상 감소했고, 젊은 부키니스트는 온라인 판매(bouquinistesdeparis.com)도 시작했다. 2023년 봄 내가 방문했을 때도 센강의 부키니스트는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초록색 매대가 단단히 잠겨 있거나 책보다 기념품이 될 법한 물건을 파는 부키니스트가 더 많았다.

파리올림픽 개막식은 센강에서 열린다

팬데믹은 끝났지만 부키니스트의 시련은 멈추지 않는다. 2024년 파리올림픽 기간 중 센강의 부키니스트를 해체해 이전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됐다. 파리올림픽의 특이한 개막식 때문이다. 보통 올림픽 개막식은 시 외곽의 경기장에서 열렸는데 파리올림픽은 도심 센강에서 열 예정이다. 올림픽 참가 선수 수천 명이 160척의 배를 타고 센강을 이동하고, 강가에서 수십만 명이 이를 관람할 계획이다. 프랑스 경찰은 안전을 위해 부키니스트를 일시적으로 이전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파리는 그동안 ‘세계에서 가장 긴 서점을 가진 도시’로 불렸다. 무려 3㎞에 이르는 강가에 200여 개의 부키니스트가 자리 잡고 900여 개의 상자에 30만 권 이상의 책과 잡지를 담아 팔았다. 부키니스트는 서적 판매의 과거를 엿볼 수 있는 현장이자 아날로그 방식으로 책을 파는 전통 서점이다. ‘부키니스트 없는 파리는 곤돌라 없는 베네치아’와도 같지만 이래저래 앞길은 험난하다.

글·사진 한미화 <동네책방 생존탐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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