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2023] (24) 한양대 표승빈 “팀에서 원하는 선수가 될 자신 있다”
#갑작스러운 시작, 인생을 바꾼 선택
표승빈의 농구 인생은 ‘갑작스럽게’ 시작됐다. 집 근처 초등학교에 다녔던 그는 4학년 여름방학 동안 체육 선생님의 추천으로 송림초에서 농구를 했다. 농구 경기를 본 적도, 해본 적도 없었지만, 농구공을 만지는 그 자체가 좋았다고.
여름방학이 끝나고 곧바로 전학 절차를 밟아 송림초 농구부에 합류한 표승빈. 4학년 당시 162cm 남짓한 신장으로 센터를 맡았고 송도중 1학년 때까지 해당 포지션을 소화했다. 하지만,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
“크면서 외곽 플레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제가 좋아하는 선수들은 다 가드, 포워드였어요. 그래서 2학년 땐 운동이 끝나고도 드리블 연습을 별도로 2시간씩 했던 것 같아요.”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볼 운반에 능숙해지면서 리바운드뿐만 아니라 득점도 능수능란하게 해냈다. 자연스럽게 팀의 공격을 이끌게 됐고 덩달아 더블더블은 기본으로 할 수 있는 선수가 됐다. 팀 에이스로 자리 잡은 표승빈. 그는 중학교 3학년에 열린 협회장기를 회상했다.
예선전부터 더블더블을 기록한 표승빈은 4강서 평원중 상대로 31점 13리바운드 3어시스트를 올리며 경기 최고 득점자가 됐다. 경기 종료 후에도 다음날 펼쳐질 결승전을 위해 팀원들과 가벼운 운동을 했다. 그런데 더블클러치를 시도하는 와중 발목을 밟히고 말았다.
부기가 가라앉지 않았지만, 우승에 대한 열망이 컸기에 테이핑에 의지하며 결승전에 출전했다. 간절함 덕분이었을까. 표승빈은 결승에서도 더블더블(23득점 13리바운드 4어시스트 3스틸)을 기록하며 팀의 103-70 승리를 이끌었다. 송도중이 30년 만에 협회장기 우승을 이룬 순간이었다.
동시에 그는 대회 최우수 선수상의 주인공이 됐다. “득점을 많이 하다 보니 상을 받고 싶다는 생각은 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3등 상은 여러 번 받았는데 기억에 남는 건 아무래도 최우수 선수상인 것 같습니다.”
화려할 것만 같았던 농구 인생에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3학년 말미 송도고에서 운동을 시작한 표승빈은 훈련 도중 오른쪽 발목 부상을 당했다. 발목 인대가 끊어지며 1학년 봄까지 재활에만 매진했다.
이에 그치지 않았다. 복귀 경기에선 왼쪽 발목 인대가 끊어졌다. 1년 동안 자신을 보여줄 기회는 없었다. 상승세가 한풀 꺾이는 듯했지만, 그는 오히려 마음을 다잡았다. “1학년을 통으로 날렸지만, ‘복귀해서 몸 만들고 잘하면 되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1학년 때 기억을 깨끗이 지운 표승빈은 2학년 당시 팀의 주전으로 자리 잡으며 활약을 이어나갔다. 제56회 춘계연맹전 남고부 예선 양정고와의 연장 승부에선 29점 11리바운드를, 2019 주말리그 왕중왕전 남고부 상산전자고 상대로는 28점 13리바운드에 5스틸과 2블록까지 곁들였다.
승패를 떠나 좋은 기록을 만드는 건 어떤 의미였을까. 그는 “제가 팀에서 최장신에 속해있었기 때문에 더블더블 하는 건 기본 옵션이었어요. 욕심, 책임감보단 팀의 역할이었죠”라며 든든한 면모를 보였다.
대학교 1학년 당시 한양대가 MBC배, 2021 대학농구 U-리그 왕중왕전에서 모두 준우승을 차지했는데 상대는 각각 연세대와 고려대였다. 그는 한양대 입학 당시 목표가 있었다고 전했다. 여기서 강팀을 상대하는 그의 자세를 엿볼 수 있었다.
“사실 우승 욕심도 있었고 대학교 졸업하기 전에 모든 팀을 한 번씩 이기고 나가자고 생각했어요. 고려대, 연세대가 강팀에 속하지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 팀한테 무조건 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쓰라리지만, 큰 깨달음을 주었던 경기도 있었다. 2022 대학농구 U-리그 경희대와의 경기. 3쿼터까지 16점 차(65-49)로 앞서고 있었던 한양대는 경기 종료 12초 전 3점슛을 허용하면서 역전패를 당했다.
팀도, 선수 개인도 충격적인 패배였다. 부상 복귀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기에 체력적인 면에서 아쉬움을 드러냈다. 동시에 더욱 냉정하게 경기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지난해 플레이오프 탈락의 고배를 마셨으나 올해 평균 15.1점 8.1리바운드 4.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을 5위로 이끌었다. 그의 효율적이고 냉철한 플레이가 한양대의 팀 색깔을 더욱 진하게 만들었다.
오재현과 이근휘, 이승우, 전준우를 이어 한양대 얼리 역사에 한 획을 그으려는 표승빈. 그의 얼리 엔트리 선언은 가벼운 결정이 아니었다. “목표가 있었어요. 이번 연도에 열심히 해서 얼리로 나갈 수 있는 선수로 성장해야겠다 싶었고 항상 도전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감독, 코치님도 도전하고 싶으면 언제든 찾아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팀의 핵심을 맡아왔지만,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실력을 평가받길 원했다. “프로는 우리나라에서 농구를 가장 잘하는 사람들이 모인 리그잖아요. 거기서 최고평가를 받는 선수들이랑 맞닿았을 때 제가 어느 정도인지를 느끼고 싶어요.”
득점이면 득점, 어시스트면 어시스트, 궂은일이면 궂은일. 항상 팀에 100% 녹아들었기에 적응에 있어서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어느 팀에 가서든 팀에서 원하는 선수가 될 자신이 있어요. 팀에서 원하는 역할을 해낼 자신이 있습니다.”
농구를 시작한 순간부터 현재까지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이행해온 표승빈. 그의 ‘에이스 본능’이 프로의 판도를 뒤집을 수 있을지 지켜보자.
#사진_점프볼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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