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태평양전쟁과 ‘더러운 평화’[김세동의 시론]

2023. 9. 6.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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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동 논설위원
이재명 방탄단식 명분 약하자
오염처리수 방류 물고 들어가
방사능 변화 없어도 괴담 계속
한미일과 한일 新연대 해치고
北·中에 이용당하는 괴담 선동
공교롭게 북한 지령과도 일치

말의 품격은 인격을 반영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말이 거친 것은 성남시장 때부터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해졌다. 원내 제1당 대표의 품격은 언감생심이고, 자해 공갈 방식의 시위로 눈길을 끄는 극단적 시민단체 대표에나 어울릴 수준의 언사를 손쉽게 발설한다.

이 대표는 지난달 31일 “무능 폭력정권을 향한 국민 항쟁”을 시작하겠다며 무기한 단식을 선언했다. 내세운 명분이 정치 구호성이고 구체적이지 않아 검찰 소환과 체포동의안 국회 표결, 대표 사퇴 요구 등으로 코너에 몰린 그가 나름 묘책이라고 강구한 ‘방탄 단식’이란 분석이 곧바로 제기됐다. 무기한 단식의 명분이 약하다는 걸 알았는지 후쿠시마원전 오염처리수 방류도 물고 들어갔다. 그의 “정권은 안전을 걱정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괴담이라 매도하며 겁박하고, 국민과 싸우겠다고 선전포고한다”는 주장부터가 교묘하게 말을 비튼 괴담 그 자체다. 일반 시민들의 오염처리수 방류에 대한 안전 걱정이 뭐가 문제겠나. 원내 제1당으로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이 앞장서 과학적 진실에 부합하지 않는 황당한 헛소리를 퍼트리는 게 문제인 것이다.

지난달 24일부터 시작된 방류 이후 바닷물 속 삼중수소 농도 변화는 민주당의 ‘기대’와 달리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본의 동북쪽 바다에 방류하는 만큼 시계 방향으로 도는 해류의 흐름을 타고 캐나다, 미국 서부 태평양, 북적도해류, 필리핀 등을 거쳐 일본 오른쪽 태평양으로 다시 돌아오는 데 4∼5년 걸린다. 이 과정에서 애초부터 큰 의미 없는 수준이었던 오염처리수의 삼중수소가 광대한 태평양 바닷물에 완전히 희석된다. 사정이 이런데도 이 대표와 민주당은 일본이 서쪽 바다(우리의 동해)에 방류하고, 이게 해류 흐름을 역류해 며칠 만에 한국 연안에 도달할 것처럼 거짓 선동한다.

이 대표가 지난달 26일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 중단·윤석열 정부 규탄 범국민대회’에서 한 발언은 두고두고 발목을 잡을 것이다. 그는 “핵오염수 방류는 태평양 연안 국가에 대한 전쟁을 선포한 것”이라며 “일본이 총과 칼로 전 세계 인류를 침범하고 살육했던 태평양전쟁을 다시 한 번 환경 범죄로 일으키려 한다”고 했다. 하마터면 대통령이 될 뻔했던 공당 대표의 용어가 지나치게 저열한 것도 지적받아야 하지만, 논리적으로 전혀 맞지 않은 데다 정치적 속셈은 더 문제다. 반일 선동을 통해 윤석열 정부를 흔들 수만 있다면 한국이 국제적 웃음거리가 돼도 상관없다는 것 아닌가.

한국 야당과 북한, 중국 외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승인을 받은 오염처리수 방류에 국제사회가 조용하고, 이재명 표현대로 하면 ‘독극물’ ‘핵폐수’를 가장 먼저 받는 미국은 심지어 환영 논평을 냈으며, 환경 이슈에 민감한 유럽연합(EU)이 후쿠시마산 농수산물 수입 규제를 철회한 것에서 오염처리수 방류에 대응하는, 혹은 이용하는 ‘정치학’이 드러난다. 북한은 이미 문재인 정권 때부터 오염처리수 방류를 이슈로 반일·반정부 투쟁을 남한 내 친북 단체나 간첩 조직에 지령해 왔다. 조용하다가 최근 갑자기 오염처리수 방류 반대를 선동해 전(全) 인민의 가슴에 불을 붙인 중국의 속셈도 뻔하다. 중국과 북한은 캠프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드러난 한미일 및 한일 신(新)연대를 깨뜨리기 위해 오염처리수를 물고 늘어지고 있다. 이 대표의 오염처리수 무한전(戰)은 본의 아니게, 또는 본의대로 북한과 중국에 이용되는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 7월 4일 ‘정전 70주년 한반도 평화행동’ 인사들과의 간담회에서 “아무리 더러운 평화라도 이기는 전쟁보다는 낫다”고 했다. 핵·미사일 도발을 계속하는 북한에 대한 강경 대응과 한미일 연대가 강화되는 데 대한 비판과 반박으로 이해된다. 일본에 대해선 없는 사실도 만들어 전쟁도 불사할 것처럼 선동하고 북한과 중국에 대해선 민망할 정도로 구차스럽다. 김정은이 최근 전군지휘훈련을 점검했고, 조선중앙통신이 ‘남조선 전 영토 점령’을 언급했으며, 연이어 남한을 겨냥한 미사일을 쏘는 데도 형식적으로나마 일언반구가 없다. 친북·반일이 민주당의 운동권 유전자 때문인지, 최근 간첩단 사건에서 보듯 진짜 북한의 지령 때문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김세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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