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광장] 저성장 국면에 진입한 한국 경제

2023. 9. 6.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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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부산항 신선대부두에서 컨테이너하역 작업이 한창이다. [연합]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7월 ‘세계 경제전망’ 수정보고서를 통해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5%에서 1.4%로 떨어뜨렸다. 반면 세계 주요국 전망치를 일제히 상향조정하면서 세계 성장률 전망치도 2.8%에서 3.0%로 올렸다. 주요 선진국·개발도상국은 모두 회복세를 보이는데 유독 한국만 성장률이 역주행한 것이다.

더군다나 한국 성장률 1.4%는 글로벌 성장률 3%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올해 들어서만 벌써 5번째 연속 하향조정한 것은 한국 경제성장에 비상등이 켜진 것이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침체를 지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8개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평균 1.1%로 전망했고, 내년 경제성장률도 평균 1.9%로 낮춰 잡았다.

이 전망대로라면 한국 경제는 1954년 통계 작성 이래 최초로 2년 연속 1%대 성장률을 기록해 저성장 국면으로 완전히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리오프닝 효과가 기대에 못 미치는 데다 대내외 악재가 쉽사리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이미 한국은 장기 저성장구조에 와 있다”고 한 발언대로 일본이 겪고 있는 ‘잃어버린 30년’과 같은 초장기 침체로 진입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5번 연속 동결하면서 내년 경제성장률은 중국 경제의 빠른 회복 가능성이 작다는 이유로 기존의 2.3%에서 2.2%로 하향조정했다. 반면 대안 시나리오 분석에 의하면 중국이 부동산 부진 지속으로 성장세가 추가 약화되는 경우 한국 경제는 올해 1.2~1.3% 성장에 이어 내년에도 1.9~2.0%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도 다른 부문이 지난해 수준 성장세를 유지한다는 가정 아래 중국의 경제위기로 인한 대(對)중국 수출감소율이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1.2%포인트 깎아내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증가하는 중국발 리스크가 현실화하면 2년 연속 1%대 성장률이 실현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정부의 하반기 경기 회복 전망에 적신호가 켜진 가운데 반도체 바통을 이어받을 차세대 주력 산업군 부재에 중국의 부진까지 겹치며 저성장이 ‘뉴노멀’로 고착화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해 11월 ‘장기경제성장률 전망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경제성장이 2050년께 완전히 멈추거나 최악의 경우 마이너스 성장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이 2011~2019년 수준인 0.7%로 유지될 경우 장기경제성장률은 2023년 1.7%에서 2050년 0%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만약 생산성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처럼 계속 하락한다면 2050년에는 성장이 멈추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역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에서 우려되는 더 본질적인 문제는 경제의 장기 성장궤도를 나타내는 잠재성장률의 지속적 하락이다. 잠재성장률이 추락한다는 것은 경제의 기초체력이 갈수록 떨어져 성장엔진이 꺼져가는 것이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잠재성장률의 하락 속도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01∼2005년만 해도 5.1%에 달했으나 2021∼2022년에는 2.0%로 하락했다. 이처럼 잠재성장률이 20여년 만에 절반 이하로 떨어진 경우는 세계 주요국 중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생산인구 급감이 잠재성장률의 하락에 일조를 했지만 생산성의 둔화가 최대 원인으로 밝혀졌다. 지금은 경제성장률 변화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잠재성장률의 추락을 반전시키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전통적인 통화·재정정책은 한시적인 경기 부양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저성장 국면에 진입한 한국 경제를 살리는 근본대책이 될 수 없다. 게다가 한미 금리 격차에다 가계부채 증가세로 통화정책 완화는 쉽지 않고, 급증한 국가부채에다 불황에 따른 세수 감소로 재정 확장 카드도 꺼내기 어렵다.

따라서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려 꺼져가는 성장엔진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과거처럼 요소투입량을 늘릴 수 없기 때문에 요소투입 효율을 높여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밖에 없다. 결국 경제성장의 주체는 기업이므로 경제체질 개선으로 민간부문에 활력을 불어넣어 경제 효율을 높여야 한다.

잠재성장률 제고의 핵심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인 한국의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해법은 고통스럽더라도 과감한 구조개혁으로 경제 전반의 활력을 높여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노사법치주의를 확립하고 신속하고 과감한 노동개혁으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여 기업이 안심하고 투자에 나설 수 있는 친시장·친기업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기업을 옥죄고 투자를 저해하는 각종 ‘킬러 규제’를 조속히 혁파해 기업가의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이 살아나게 해야 한다.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미래 먹거리와 혁신을 주도할 산업을 민간이 주도해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해야 한다.

강명헌 단국대 명예교수(전 금융통화위원)

p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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