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대약탈과 후쿠시마 오염수[역사브런치]
하드리아노 교황 사후 줄리오 메디치가 클레멘스 7세 교황으로 즉위했다. 그는 키가 훤칠하고 외모가 준수했으며 철학, 신학, 건축 등 모든 분야에 탁월한 식견이 있었다. 레오 10세 교황 시절에 2인자로서 교황청의 외교, 내정 등을 훌륭하게 소화해낸 실무경험도 있었다. 더욱이 예술과 학문에 호의적인 메디치 가문 출신 교황의 재등장에, 로마는 풍성하던 레오의 시대가 돌아왔다며 환호했다. 당시 학자이자 시인인 피에트로 벰보는 그가 “교회 역사상 최고이고 가장 지혜로운 통치자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윌 듀런트, 문명이야기 5-2>.
실제로 그의 출발은 아주 훌륭했다. 자신의 연수입을 모두 추기경들에 나눠주었고, 학자들과 서기들에게 일자리를, 선물은 많지 않았지만 모든 계층에게 예의를 다해 그들의 마음을 얻었다. 어떤 교황도 이렇게 훌륭하게 시작한 적은 없었다<윌 듀런트, 전게서>.
그러나 클레멘스 7세가 처한 상황은 그렇게 녹녹치 않았다. 알프스 이북에서는 루터와 츠빙글리 등이 종교개혁을 외치고 있었고, 동쪽에서는 오스만 제국이 기독교 세계를 위협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독일과 스페인, 네덜란드, 이탈리아 남부까지 장악한 군주(카를 5세)가 나타났다. 외가는 스페인 왕가이고 친가는 신성로마제국 황가였다. 카를 5세의 등장에 유럽의 군주들은 서유럽의 세력균형이 어떻게 될 지 불안했고, 영국 프랑스 등 대국은 엄청난 세력의 경쟁자가 나타난 데 대해 긴장하게 되었다. 특히 프랑스는 동쪽과 서쪽에서 카를 5세의 영토에 의해 포위된 느낌이었다.
한편 카를 5세는 독일의 군주여서 그런지 종교개혁에 관심이 많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세계공의회를 주장하고 있었다. 교황은 공의회를 가급적 피하고 싶었다. 공의회는 오늘날의 국회처럼 교황의 일에 사사건건 개입하고, 황제가 배후에서 조정할 것 같았다. 안 그래도 황제가 이탈리아 남쪽의 나폴리와 북부의 밀라노까지 자기 영향권에 두고 있어 교황령을 포위하고 있었다. 클레멘스 7세는 황제의 영향력을 견제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두 라이벌 강대국은 가만히 놔둬도 싸울 가능성이 많았는데, 교황이 여기에 불을 붙였다. 이러한 결정은 대단히 위험하다. 두 강대국 중 자기편이 아닌 나라가 승리할 경우 그 폐해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조선왕조가 러시아를 편들다 망한 것처럼….
프랑수아 1세는 4만의 대병력을 동원하여 황제파가 집권하고 있던 밀라노를 단숨에 함락시켰고 그 여세를 몰아 스페인 군이 지키고 있던 파비아성을 공격했다. 그러나 스페인군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군의 공세를 석 달이나 막아냈고, 카를 5세는 실기하지 않고 명장 페스카라와 샤를 부르봉을 사령관으로 하는 증원군을 급파했다.
카를 5세는 포로로 사로잡힌 프랑수아 1세를 마드리드로 송치하였으나, 교황에 대해서는 응징할 여유가 없었다. 독일에서 벌어진 농민전쟁을 진압해야했고 헝가리를 공격하려는 오스만의 술레이만 대제도 상대해야 했는데, 프랑스는 프랑수아1세의 석방을 위해 이슬람 국가인 오스만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그런데 너무 서둘렀다. 프랑스는 파비아 전투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당장은 전쟁을 수행하기 어려웠고, 영국도 카를 5세의 세력이 두려워 코냑동맹에 가담했지만 그 역할분담이 명확하지 않았다. 동맹군이 결성되었지만 피렌체 베네치아 등 이탈리아 국가들의 병력뿐이었다.
한편 카를 5세는 자기가 임명한 밀라노 공작이 반란음모를 일으키자 밀라노를 공격하고 있었고, 밀라노는 스페인군의 공세를 힘겹게 버텨내고 있었다. 당시 동맹군은 3만5천명이나 되어 수적으로 우세했다. 신속하게 밀라노를 도왔다면 스페인군을 패퇴시킬 수 있었다. 중대한 실기를 한 것이다. 동맹군의 구성이 베네치아 피렌체 등으로 다양해 의견의 통일이 어려웠고, 베네치아군 사령관 우르비노 공작은 메디치 교황 레오10세에 의해 우르비노 공국에서 쫓겨난 적이 있어 클레멘스 7세에게 악감정이 있었다. 그런데도 클레멘스 7세는 대단히 우유부단해서 아무런 지침을 내려주지 않았다. 어영부영하는 사이에 스페인은 파비아전투의 영웅 샤를 부르봉을 보내 밀라노를 함락시켰다(1526.7). 샤를 부르봉은 겨우 300명의 병력만 데려왔을 뿐이었다. 왜냐하면 카를 5세는 오스만투르크의 헝가리 공세(모하치 전투, 1526.8월)때문에 다른 곳에 병력을 배분할 여유가 없었다. 이런 호기를 동맹군은 잃어버렸다<시오노나나미, 나의친구 마키아벨리 P436>.
카를 5세는 당장 자신의 군대를 동원할 수 없어 교황과 사이가 나쁜 콜론나 가문을 부추겨 로마에 있는 교황을 공격하게 했다(1526년 9월). 다급해진 교황은 동맹군 병력을 포강 이남으로 옮기는 데 동의하는 등 동맹군의 항전의지를 꺾어버렸다. 카를 5세의 시간벌기 작전에 말려든 것이다. 이 상황을 지켜본 베네치아는 교황을 단념하고 베네치아군 사령관 우르비노공작에게 가급적 전투를 피하라는 비밀지령을 내렸고, 당시 동맹군 사령관이었던 구이차르디니는 “왔노라, 보았노라, 달아났노라” 라고 그의 ?이탈리아사?에 적었다<시오노나나미, 전게서P438>.
프룬츠베르크는 용병들을 이끌고 독일에서 이탈리아로 오는 브레너 고개를 넘어 만토바 근방으로 나아갔다. 여기서도 동맹군은 의견이 분열되었다. 밀라노의 스페인군과 연합하기 전에 이 독일용병들을 당장 공격하자는 조반니의 주장과 좀 더 기다려 보자는 베네치아안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런데도 교황은 명확한 지침을 주지 않았다. 11월 25일 조반니는 자기 병력만 이끌고 독일용병을 공격했다. 일부 성과를 거두었으나 본인이 부상을 당해 죽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교황군의 큰 손실만 초래했다. 이렇게 티격태격 하는 과정에서 독일용병과 밀라노의 스페인군이 합쳐지게 되었다. 카를황제는 밀라노에 있던 부르봉에게 총사령관직을 맡겼고 부르봉은 밀라노의 스페인군을 이끌고 포강을 건너 독일용병과 합류했다(1527.2월).
설상가상으로 이제까지 중립을 지키고 있던 페라라의 알폰소 공작이 황제군에게 식량과 대포를 제공했다. 겨울이라 약탈이 힘들었다. 황제군 입장에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포는 로마 성벽을 공격하는데 요긴 할 터였다. 이제껏 교황이 페라라를 코냑동맹에 가입하라는 요청을 한 바가 없었으니 이에 대해서 할 말이 없었다. 2만 명이 넘는 거대한 군대는 3월 7일 볼로냐에 도착했으나 동맹군은 성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눈 덮인 들판에서 야영을 하는데 식량도 부족했다. 황제군 내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용병대장 프룬츠 베르크는 그 와중에서 중상을 입었고 독일로 실려 가서 사망했다. 부르봉은 겨우 목숨을 구했다.
이 상황에서 교황은 동맹군에 충돌을 피하라는 지령을 내리면서 강화교섭을 시작했다. 그러나 부르봉이 원하는 충분한 몸값(24만 두카트)을 구하지 못했다. 피렌체 사절이 급한 대로 8만 두카트를 들고 부르봉을 찾아갔으나 길이 어긋나고 말았다<시오노나나미 전게서 P450>.
3월29일에 부르봉은 병사들의 성화에 못 이겨 로마행을 선언했다. 교황에게 자신은 부하들을 제제할 수 없으며 평화조약은 끝났다고 알렸다<윌 듀런트, 전개서 P391>. 병사들은 환호하며 중간에 피렌체를 들르지 않고 로마로 직행했다.
황제군이 5월4일에 로마의 성문 밑에 도착해서 5월 6일 새벽에 공격을 개시했다. 문제는 전투가 개시된 지 얼마 안 되어 앞장서던 총사령관 부르봉이 총탄을 맞고 전사했다. 그럼에도 전투는 8시간 정도 지속된 후 정오쯤에 승패가 났다. 콘스탄티노폴은 불과 7천명의 방어군으로 16만의 오스만 제국군을 상대로 53일을 버텼다. 그런데 9만 명의 시민이 살고 있었던 로마가 단 반나절의 전투로 함락된 것은 최고 지도자의 단호한 의지 부족으로 판단된다. 황제군을 뒤따라오던 동맹군도 기독교의 수도가 약탈되고 있는데도 수수방관하다가 철수 했다.
사령관이 죽고 지휘계통이 무너진 군대는 폭도로 변했다. 황제군은 거리를 행진하면서 앞을 가로막는 사람은 모두 죽였다. 성베드로 대성당에 피난처를 찾은 사람들도 죽였다. 사제, 수도사, 주교 등도 죽임을 당했고, 라파엘로의 그림이 전시된 방들이 마구간이 되었다. 살아남으려면 몸값을 내야했다. 돈을 받아내기 위해 부모들 앞에서 아이들을 높은 창문에서 던지려 했다. 황제군의 절반은 독일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교황과 추기경이 도둑이고 로마 교회의 재산은 여러 나라에서 도둑질한 것이라고 믿었다. 교회의 성스러운 그릇과 예술품들은 끌어내어 녹이거나 팔았다. 몸값을 내지 못한 추기경들은 고문을 당했다. 수녀들과 귀부인들도 겁탈을 당하고 폭행을 당했다. 이런 상황이 6개월이나 지속되었다. 로마에 르네상스 시대 건물이 없는 것도 죄다 불타 버렸기 때문이다. 교황청의 죄악과 탐욕, 로마의 부정부패 등이 징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동정심을 일으키는 광경이었다.
같은 기독교도에 의한 약탈이니 5,6세기에 훈족, 반달족, 고트족 등 야만족에 의한 로마파괴보다 더 처참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에라스무스는 “ … 정말이지 이것은 한 도시의 파괴가 아니라 온 세상의 파괴입니다<윌듀런트 전게서>.” 라고 썼다.
6개월 동안 로마 인구는 9만에서 3만으로 줄어들었다. 살해된 자 2만, 도망친 자 2만, 페스트로 죽은 자 2만 이었다. 전염병이 점령군을 물러나게 했다. 독일 용병도 1만2천명에서 7천명으로 줄어들었다<시오노나나미, 나의친구 마키아벨리 P458>.
둘째 그렇게 전쟁을 부추겨 놓고서 자신은 정작 전쟁이 두려워 평화협상에 매달렸다. 생즉사 사즉생의 이치나, 평화를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하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단호한 전쟁의지 부족으로 참화를 막을 여러 기회를 놓쳤다. 그 과정에서 동맹군 내부의 분열과 전투의욕을 꺾어버렸다. 교황은 평화를 원했지만 그 희망이 왠지 전쟁을 불러온 것만 같다. 마키아벨리는 당시 상황을 “평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전쟁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클레멘스 7세는 평화와 전쟁 가운데 택일하는 것조차 힘겨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시오노나나미 전게서>. 지도자의 우유부단함이 빚은 참사였다.
셋째 교황은 성직자로서의 존경심을 잃어버렸다. 카를 5세는 클레멘스 7세를 뻔뻔하고 교활한 정치인으로 봤을 뿐, 성직자로 보지 않은 것 같다. 진정한 성직자는 이 세상을 바보같이 사는 사람이 아닐까. 황제는 교황을 벌주고 약탈하기 위해 루터를 지지하는 독일용병들을 골랐고, 그들에게 돈도 제대로 지불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처리수 방류와 관련하여 야당의 공세가 끝이 없다. 더불어민주당과야권 성향 단체는 지난 주말 기간 서울 도심에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월 3일 런던협약·의정서를 비준한 세계 88개국에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저지를 촉구하는 내용의 친서를 보내겠다고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가세해서 오염처리수 방류에 반대한다고 발언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시절 강경화, 정의용 전 외교부 장관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계획은 일본의 주권적 결정 사항”이며 “국제원자력기구(IAEA) 기준에 맞는 적합한 절차에 따른다면 굳이 반대할 건 없다”고 답변했다. 과학적 판단에 따르겠다는 말이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의 정부 합동 태스크포스(TF)가 발간한 ‘후쿠시마원전 오염수 관련 현황’ 보고서에도 “삼중수소는 생체에 축적되기 어렵고, 수산물 섭취 등으로 인한 유의미한 피폭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했고, “해류에 따라 확산·희석돼 국내 해역에의 유의미한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IAEA는 이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계획에 관한 최종 보고서에서 “안전 기준과 일치한다.” 결론을 내렸다. 국제적으로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판단을 믿고 있다. 해류가 가장 먼저 닿는 미국과 캐나다가 일본의 오염수 방류를 전혀 문제 삼지 않고 있다. 명시적으로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국가는 북한과 중국, 러시아 정도다.
지금 이 문제를 계속 거론하는 것은 과학의 문제를 정치적 사안으로 비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밝혀지기 마련이다. 광우병도 결국 괴담으로 드러나지 않았는가. 야당 정치인들이 일시적인 이해득실에 따라 행동하기보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 광명정대한 결단을 해 주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그것이 국가를 위하고 자기들이 속한 정당을 위하는 길이다.
김상규 전 조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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