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 논란 4년만에 재소환…당국, 사모펀드 CEO 제재수위 '고심'
라임 재조사 속 손태승 승소 선례·관치금융 지적 등 변수
금융당국과 검찰이 단군 이래 국내 최대 금융사기 사건으로 꼽히는 라임 펀드 사태를 다시 면밀히 들여다보면서 라임·옵티머스 펀드 판매사 최고경영자(CEO)들의 최종 징계 수위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라임 펀드 특혜 환매 의혹이 불거진 것을 계기로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선 CEO들에 강력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강경론자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에 맞서 법적 처벌 근거가 없는 과도한 제재를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도 거세다.
사모펀드에 대한 재검사·재수사 결과와 더불어 비슷한 이유로 제재가 가해졌던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징계 취소 소송 결과도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제재의 최종적인 열쇠를 쥔 금융위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대신·신한·KB·NH 전·현직 CEO 징계 결정, 일단 국감 이후로
6일 금융당국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위는 라임·옵티머스 펀드 불완전 판매와 관련해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징계를 받은 대신증권, 신한투자증권, KB증권, NH투자증권(가나다순) 전·현직 CEO들에 대한 제재 심의를 진행 중이다.
앞서 금감원은 나재철 전 대신증권 사장과 윤경은 전 KB증권 사장에게 직무정지, 박정림 KB증권 사장과 양홍석 대신증권 사장(현 부회장)에게 문책경고를 내렸다. 또 김병철 전 신한금융투자 사장(현 KCGI자산운용 부회장)에게는 주의적경고를 줬다.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은 옵티머스 펀드 사건의 책임을 물어 문책경고를 처분했다.
금융회사 임원에 대한 제재는 총 5단계로 △주의 △주의적경고 △문책경고 △직무정지 △해임권고 순이다. 이중 문책경고부터는 중징계에 해당하며 3~5년간 금융권에 재취업할 수 없다. 현재 금감원 제재 결정 당시와 같은 회사에 다니는 CEO는 박정림 사장과 양홍석 부회장, 정영채 사장이다.
임원 제재는 금융위 정례회의 의결을 거쳐 최종 결정한다. 금융위는 당초 이달 정례회의에 CEO 제재안을 올릴 예정이었지만, 다음 달 이후로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정례회의는 통상 격주 수요일에 열리는데 이달에는 추석 연휴 관계로 13일에만 개최한다. 금융위는 내달 국정감사를 앞두고 연휴까지 겹치면서 논의에 필요한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중징계 유지 vs 경징계 감경…라임 재조사 속 변수 많아
금투업계는 현재 당국과 업계 안팎에서 중징계 수준의 현 제재 수위를 유지해야한다는 의견과 경징계로 감경해야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으로 관측한다. 먼저 중징계 유지를 지지하는 측은 잇따른 사건사고로 사모펀드 시장은 물론 자본시장 전반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상황에서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선 회사 수장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불가피하다는 견해를 펼치고 있다.
반면 감경을 주장하는 측은 CEO에 대한 제재는 법적 처벌 근거가 부족한 전 정부 시절 '포퓰리즘식' 제재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사태가 발생한 뒤 기관 제재를 받았고, 운용사 대신 보상 책임까지 진 상황에서 CEO 개인에 대한 추가 처벌까지 이뤄지는 것은 가혹하다는 입장이다. CEO들은 중징계가 확정되면 최소 3년에서 5년까지 금융권에 발을 들일 수 없다. 사실상 퇴출되는 셈이다.
지난해 12월 손태승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DLF 사태 관련 중징계 처분에 반발해 금감원을 상대로 취소 소송을 제기해 최종 승소한 사례도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라임·옵티머스 펀드 판매사 CEO들도 같은 이유로 징계를 받은 상황이다.
손태승 전 회장 측은 당시 재판에서 현행법이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하도록 의무화했을 뿐 CEO가 내부통제 기준을 준수하지 못하거나 미흡하더라도 처벌한 근거가 없다고 항변했다. 이에 대법원은 "내부통제 기준 자체를 마련하지 못했다는 사유로 제재할 수 없어 금감원의 처분 사유를 모두 인정할 순 없다"며 손 전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이는 당국이 CEO 처벌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내부통제 관리 책임을 강화하는 기업지배구조법 개정안을 추진하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손 전 회장의 승소 이후 우세했던 감경 분위기는 지난달 금감원의 라임 펀드 재조사 결과 발표 이후 묘하게 바뀌고 있다. 특혜성 환매 의혹이 일면서 다시 펀드 판매사 CEO 책임론이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금융위는 일단 라임 사태 재조사와 재수사 결과를 지켜보겠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4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태 관련 증권사 CEO 제재 최종 결과에 대한 질문에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최근 발생한 상황과 관련해 좀 더 고려할 점이 있는지 보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 일각에선 이번 CEO 제재가 윤석헌 전 금감원장 시절 관치금융 지적까지 나온 금융회사 CEO 무더기 제재의 일환이라는 점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당시 윤 전 원장은 소비자보호라는 명목을 내세워 CEO 처벌에 강경한 자세를 취했다. 이에 업계 안팎에선 지배구조법상 근거 없이 보여주기식의 무리한 징계를 내렸다는 거센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더해 조만간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의 DLF 징계 취소 소송 2심도 당국의 결정에 영향을 줄 소지가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편 금감원의 원안대로 중징계가 유지되면 대신과 신한, KB, NH 등의 전·현직 CEO들이 앞서 손 전 우리금융 회장과 마찬가지로 당국을 상대로 개인 소송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CEO들은 유사한 사안으로 징계를 받은 손 전 회장의 승소를 선례로 내세울 전망이다.
김기훈 (core81@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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