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쏘공'의 배경은 이곳이 아니다 [더 라이프이스트-성문 밖 첫 동네, 중림동 이야기]
12,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배경이 중림동일까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 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터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2022년 12월 25일, 성탄절에 하늘나라로 간 조세희 선생의 대표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한 부분이다. 나는 이 대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생활은 전쟁과 같았’고 ‘그 전쟁터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던 난장이 가족. 아무리 전쟁터라도 가끔은 이기는 날도 있어야 살아갈 수 있을 것 아닌가. 세월은 흘러 소설이 출간된 지 어느덧 반세기다. 격동의 70년대를 지나 새천년을 훌쩍 넘은 21세기에도 ‘난쏘공’이 늘 회자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평론가 김현이 '난쏘공'을 밤새워 읽고 흥분해 8천 부는 나갈 거라고 작가에게 장담했다고 한다. 이후 소설로 200쇄를 최단시간 내에 돌파하고, 300쇄가 넘는 초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유가 뭘까? 난장이 가족이 아직 살아있는 것은 아닐까? 전쟁터 같은 이 세상에서 지기만 하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시대의 억울한 자들은 난장이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지 모른다.
난장이 가족들이 날마다 졌다는 소설 속 공간은 ‘낙원구 행복동’이다. 그들의 삶이 지옥일 망정, 작가는 난장이가 사는 삶의 공간을 그렇게 명명했다. 조세희는 지옥과 같은 전쟁터가 낙원으로 바뀌어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바랬을 것이다. 그래서 1편의 제목이 '뫼비우스 띠'인지 모르겠다. 안과 바깥이 고정돼 돌고 돌아도 겉은 겉대로 바깥은 바깥인 채로 존재하는, 뫼비우스의 띠 같이 본질적 삶이 순환되는 인생. 그래서 패자도 승자도 없이 서로 보듬어 주는 삶을 바랬던 것은 아닌지…
‘낙원구 행복동’이라는 동네는 서울의 어디쯤일까?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중림동을 소개할 때 사족(蛇足)처럼 따라다니는 문구가 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배경이 되는 동네’라고 한다. 왜 중림동이 난쏘공의 배경인지는 설명이 없다. 조세희 작가가 작품의 배경이 중림동이라고 이야기 한 적이 있는가?
내가 조사한 바로는 조세희가 직접 중림동을 소설의 배경이라고 이야기한 적은 없다. 김연수의 논문-’문학공간 현저동이 지니는 상징적인 의미들‘을 인용하면 현저동 옥바라지 골목이 난쏘공의 배경이라고 한다. 현저동 46번지 일대이다. 논문 속 작가의 말을 인터뷰한 것을 보면 이렇다.
’12편의 연작 중 4번째 중편소설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나오는 문학공간인 서울시 낙원구 행복동의 모습은 중랑천이 흐르고 있는 면목동과 당시 초라한 무허가 주택들이 들어서 있는 무악동 일대를 모자이크 해놓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김훈, 박래부, 문학기행1, 한국문화원, 1997, p25,) 뿐만 아니라 작가는 무악동 일대(당시 현저동)를 취재 다니면서 난장이 가족이 밥먹는 장면 같은 것을 실제로 보고, 무허가 주택 철거 장면도 도처에서 보았다고 집필 과정을 이야기 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의 주된 문학 공간은 현재 무악동임을 알 수 있다. '문학공간, 현저동이 지니는 상징적 의미, 김연수, 57p'
현저동은 '엄마의 말뚝'과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먹었을까'의 배경이기도 하다. 난쏘공은 난장이 가족이 개발 논리에 자신들이 살았던 삶의 터전에서 밀려난다는 서사가 중심축을 이룬다. 중림동이 소설의 배경이라면 작품이 쓰여진 1976년 이전, 아니 책이 발간된 1978년 이전에 철거민들과 건설사 간의 분쟁이 있었던 아파트가 중림동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중림동에는 그런 아파트가 없다. 중림동에서 가장 대규모의 아파트인 ‘삼성사이버빌리지’는 1990년대 말에 착공, 2001년에 준공됐다. 1972년에 세워진 성요셉아파트의 개발자는 중림동 약현 성당이다. 이 일대의 땅은 성당 소유가 많다. 성당에서 아파트를 지을 때 무단으로 점유한 지역 사람들에게 싼 가격에 분양해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역주민과 개발사간에 문제가 없었다. 그러면 같은 시기에 지어진 서소문 아파트는 어떨까? 전술한 바와 같이 이 아파트는 하천 위에 지어졌기 때문에, 건설사와 지역주민 간의 마찰은 물리적으로 존재할 수가 없었다.
조세희는 한 인터뷰에서 ‘우리에게 70년대는 파괴와 거짓, 희망, 모멸, 폭압의 시대였다’고 정의 한다. 그가 한 사람의 작가이기 이전에 시민으로서 제일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악'이 드러내놓고 '선'을 가장하는 것이었는데, 악이 자선이 되고 희망이 되고 진실이 되고 또 정의가 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의 고백은 소설이 되었다.
조세희는 KBS의 TV문학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촬영 당시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이와 같은 이야기를 했다. "내가 당시 마지막 식사를 위해 고기를 사 가지고 갔고, 극 중 고두심씨가 연기한 난장이의 부인이 국을 끓이고, 밥을 해주셨다. 재개발 현장의 밑바닥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고기를 먹는데, 철거반원들이 그 시간을 못 참고 철퇴로 대문과 시멘트 담을 쳐부수고 들어왔다. 나는 철거반원들과 싸우고 집으로 돌아가다 작은 노트 한 권을 사서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 이후에 소설을 썼다" 작가는 이 소설에 자신의 문학적 역량을 진정성 있게 쏟아부었고 신작을 쓰는 대신 카메라를 들고 시대를 증언할 소외계층을 찾아 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왜 중림동을 난쏘공의 배경이라고 한 것일까? 조세희 선생은 ‘학생중앙’이란 잡지사에 근무했다. 서소문 옛 중앙일보 건물이 그의 직장이었다. 그러다 보니 가까운 달동네, 중림동을 소설의 배경으로 누군가 지목한 것이 아닐까? 그것이 인터넷에서 계속 떠돈 것이다.
중림동에는 아직도 핸드마이크를 메고 ‘이곳이 난쏘공의 배경’이라고 설명하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정신 차리시라! 잘못짚었다.
‘겉으로는 사회가 풍요롭고 자유로워진 것 같지만, 난쏘공을 처음 내던 때와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고 봅니다. 난장이 가족의 불행은 아직 끝나지 않은 거죠.’ (조세희 작가의 말)
<한경닷컴 The Lifeist> 한이수 엔에프컨소시엄에이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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