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5년 연장땐 '16조' 든다는데…인건비 감당 어떻게
[편집자주] 생산인구 감소와 평균연령 증가로 인한 연금 고갈 등 고령자 고용이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른 가운데 노조가 강력하게 정년연장을 요구한다. 기업은 고령자 고용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정년연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을 긋는다. 양 측의 주장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상황에서 내놓을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일까.
'정년을 5년 연장하면 추가비용은 16조원'
한국경제연구원이 2020년 내놓은 '정년연장의 비용 추정과 시사점' 보고서 내용이다. 한경연은 60세 이상인 정년을 65세로 연장하고, 제도 도입 5년이 지난 시점에 60세부터 65세까지의 노동자에게 들어가는 추가 비용을 계산한 결과 한 해 15조8626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처럼 많은 비용이 드는 것은 연공서열형 임금체계 탓이 크다. 하는 업무와는 상관없이 근속연수가 늘어나면 임금이 늘어나는 구조기 때문에, 정년 연장을 할 경우 부담해야 할 임금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한경연은 "정년연장을 도입하는 경우 기업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직무급제나 임금피크제와 같은 임금체계 개편도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고 했다.
최근의 조사 결과도 다르지 않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7월 30인 이상 기업 1047개사(관리자급 이상)를 대상으로 '고령자 계속고용정책에 대한 기업 인식조사'를 실시해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서 고령자 계속고용을 위해 필요한 정부 지원으로 '임금유연성 확보를 위한 취업규칙 변경절차 개선'을 꼽은 응답이 47.1%로 가장 높게 나왔다.
경총은 "우리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절차는 지나치게 경직적이어서 고용환경이 바뀌고 경영이 어려워도 집단적 동의 없이는 합리적인 임금체계 개편조차 어렵다"고 했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경우 1998년 이후 법정 정년을 60세로 유지하면서도 2007년 65세까지 고용확보조치(계속고용, 정년연장, 정년폐지 중 하나를 선택)를 의무화했다. 이같은 조치가 가능했던 이유는 취업규칙 변경이 한국보다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2011년 고용부는 일본의 이같은 조치에 대해 "기업이 근로조건 변경 없이 65세까지 근로자를 계속고용할 경우 비용부담이 막대하기 때문에 기업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일단 60세에서 근로관계를 청산한 후, 고용확보조치 등을 통해 65세까지 고용을 담보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2021년 일본은 고용확보조치의 나이를 70세로 연장했다. 일본 기업들은 고령자가 희망하면 70세까지 지속해서 의무위탁계약을 체결하는 제도(계속고용제도)를 도입해 고령자들이 기존 직무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상대적으로 비용부담이 적은 제도를 활용해 숙련된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어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제도에 협조했다고 알려져 있다.
재계는 일본의 사례를 참고할만 하다고 말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미국은 정년이 아예 없는데, 이는 노동시장이 그만큼 유연성이 있기 때문"이라며 "국내에서 고령자 고용을 위해서는 최소한 정년 연장형 임금 피크제라도 도입해야 고령자에 대한 안정적인 고용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정년 연장형 임금피크제는 정년을 일정 기간 연장하는 대신 일정 연령부터 임금을 줄이는 제도다.
정년 연장 65세가 현실화되면 국가 재정에 가해지는 부담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공무원 및 공공기관 정원이 크게 늘어난 가운데 임금 제도 개편 없이는 정년 연장에 따른 추가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4일 인사혁신처 등에 따르면 10년 사이 전체 공무원 수는 23% 늘었다. 공무원 수는 2010년대 초반에는 점증했지만 공공부문 일자리 중심의 정책이 추진되면서 최근 몇 년 사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2019년 68만1049명에서 2020년에는 74만6267명으로 뛰었다. 2013년 62만명에서 2019년 68만명까지 6년간 공무원 수는 6만명 증가했지만, 2020년 당해에만 같은 숫자를 채용한 셈이다.
공기업·준정부기관 등 공공기관도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 발맞춰 채용을 늘려왔다. 공공기관 정규직 신규 채용 규모는 2017년 2만2659명, 2018년 3만3984명, 2019년 4만1322명으로 증가했다. 공무원·공공기관 임직원 수가 크게 증가한 가운데 정년 연장으로 퇴직 연령도 늦춰지면 정부의 재정 부담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실제로 공공기관은 2020년(3만736명)부터 채용을 줄이고 있다. 2021년 2만7053명, 지난해에는2만5000명을 기록하며 3년 연속 감소했다. 올해 역시 1분기 기준 정원이 43만6000명으로 전년보다 9000명 가까이 감소하는 등 정원 조정 수순을 밟고 있다.
이는 공공기관의 부채가 불어나는 등 재무 상황이 악화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부채는 2021년 582조4000억원에서 지난해 670조원으로 한 해 만에 87조6000억원 증가했다. 부채비율은 2021년 151.8%에서 지난해 174.3%로 22.5%포인트(p) 올랐다. 지난해 총 13조6000억원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임금 개편 없는 정년 연장이 불가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올해 한국은행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1.4%로, 내년에도 2%대 이상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년 연장에 따른 인건비 상승폭이 이보다 크면 국가의 재정 건전성도 흔들릴 수 있다.
이지만 연세대 경영대 교수는 "30세 입사를 가정했을 때 정년 5년이 늘면 인건비가 단순 수치로만 17% 이상 증가한다"며 "한국은 호봉제라 말년 임금이 초임대비 4배 가량 높은데 인건비가 더 많이 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초임과 말년의 임금차가 두 배 이상인 다른 국가가 없다"며 "결국 공공부문에서 신규 채용을 줄이면 청년실업이 악화되기에 호봉제보다는 성과제를 중심으로 한 임금체계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근로자 정년 연장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안정적인 노후를 보장할 수 있느냐다. 단순히 기업과 노동자만의 갈등으로 바라만 봐서는 해결은 요원하다. 연금개혁 문제도 얽힌 고차방정식이다. 정부 차원의 제도 개선 또한 필수 과제다.
근로자의 정년연장 요구의 배경엔 '소득 크레바스'(Income Crevasse)가 있다. 현재 법정 정년인 만 60세에 퇴직할 경우 직장에서 은퇴해 국민연금을 받을 때까지 소득이 없는 기간이다. 올해 63세인 국민연금 수령 연령은 5년에 한살씩 높아져 2028년 64세, 2033년에는 65세가 된다. 현행 제도에서는 소득 공백이 5년간 발생한다.
이때문에 일하는 고령자의 숫자는 늘었다. 60~64세 취업자는 2011년 127만명에서 2021년 241만명으로 늘었다. 전체 취업자 중 이들의 비율은 5.18%에서 8.85%로 높아졌다. 다만 한국노총 조사에 따르면 재고용시 계약직과 촉탁직 형태의 비정규직으로 고용되는 비율이 86.2%로 대다수를 차지한다.
고령자의 안정적 고용이 필요하다는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문제는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폭증하는 데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2021년 조사에 따르면 국내 주요 기업에서 근속 연수 30년차는 1년차 신입 대비 2.95배의 임금을 받았다. 기업의 부담만 늘어나는 방식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과도한 부담으로 대외 경쟁력을 잃으면 임금이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임금체계 개편과 재고용이 함께 가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아울러 정년연장과 연금개혁을 연계해 대안을 찾아야 한다. 해외에서는 정년과 연금개시연령을 맞추되 시점을 늦추는 방법을 사용 중이다. 스웨덴은 노사정이 10년을 꾸준히 논의해 올해부터 정년과 연금개시연령을 모두 67세로 늘렸다. 독일도 모두 67세로 올리기로 했고 일본은 65세 고용을 의무화하고 연금개시연령을 65~75세 중 택하게 했다.
보건복지부 산하 자문기구인 국민연금재정계산위원회는 지난 1일 공청회에서 수급개시연령이 65세에서 68세로 늦추는 방안을 공개했다. 아울러 현재 59세인 국민연금 가입 상한도 단계적으로 높이고 정년연장 등 노동제도도 함께 개편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현행 제도를 유지하면 국민연금은 2041년 적자 전환하고 2055년이면 적립금이 완전히 고갈된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연금개혁과 노동개혁을 따로 보지 말고 두가지를 함께 논의해 타협의 지점을 찾아야 한다"며 "정년연장만 얘기하면 관철되기 어렵지만 이와 함께 연금수급 시점 개시도 동시에 늦추는 방안이 함께 논의된다면 각각의 이해관계자들이 수용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태성 기자 lts320@mt.co.kr 정한결 기자 hanj@mt.co.kr 강주헌 기자 z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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