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신매매·해양투기·밀수…무법천지 된 '바다'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저인망 어선 안에서 한 남성이 쇠고랑을 찬 채 웅크리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랑 롱. 캄보디아서 태국으로 인신매매된 노동자다. 태국 내 건설업 일자리를 알아봐 준다던 브로커는 그를 태국의 선주(船主)에게 팔아치웠다. 롱은 나무나 쇠막대기로 맞으며 일했다. 식수가 부족하면 물고기를 넣는 통에서 고약한 맛이 나는 얼음을 훔쳤고, 어구를 잘못 넣으면 벌로 밥을 굶어야 했다. 그는 3년간 육지를 본 적이 없었다. 그는 그 기간, 이 어선에서 저 어선으로 팔려 다녔다. 그가 선주에게 진 빚은 750달러. 그러나 아무리 일해도 빚은 늘었지 줄어들지 않았다. 선장이 태국 경찰에 체포된 이후에야 비로소 그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러나 롱의 정신과 감정 체계는 이미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상태였다.
퓰리처상 수상 기자 이언 어비나가 쓴 '무법의 바다'(원제: The Outlaw Ocean)는 바다에서 벌어지는 각종 불법행위를 조명한 르포르타주다. 저자는 인신매매와 납치, 해양 투기, 포경, 매춘 등 바다와 그 인근에서 벌어지는 불법 행위, 그리고 그런 불법행위를 단속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거침없는 손길로 그려냈다.
책에 따르면 많은 캄보디아·미얀마인들이 사기꾼에 속아 태국 어선에서 강제 노역하고 있다. 일터 조건은 엄혹하다. 물고기 비늘에 손이 베이는 건 기본. 어망 작업을 하다가 손가락을 잘리기도 한다. 작업 속도가 느리면 구타당한다. 배에서 명령에 불복했다가는 죽을 수도 있다. 2009년 유럽연합(UN)이 태국어선에 팔려 온 캄보디아 남성 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가운데 절반이 넘는 29명은 선장이나 사관이 선원을 죽이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답했다.
인신매매된 어부 대다수는 빚에 시달렸다. 그들은 식사와 마약, 숙소가 공짜로 제공되는 줄 알았으나 수개월 뒤 이는 미납 요금이 되어 돌아왔다. 선장은 선원에게 돈 대신 노래주점 이용권을 지급하기도 했다. 브로커와 술집 주인은 인신매매된 여성들을 활용해 인신매매된 선원들을 옭아맸다. 특히 성 노동자와 빚에 묶인 구매자 양쪽 모두 상당수가 아동이었다는 점에서 그들의 수법은 지독했다.
바다는 인권의 사각지대뿐만 아니었다. 수많은 쓰레기가 버려지는 환경의 사각지대이기도 했다. 예부터 사람들은 광대한 바다가 만물을 흡수하고 소화하는 무한한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석유, 오물, 사체, 각종 화합물, 생활 쓰레기, 군수품, 심지어 시추기 같은 해상구조물까지 바닷속에 버렸다.
크루즈 업체들은 벙커시유 잔해인 '엔진 슬러지'를 바다에 투기했다. 독성이 남달라 폐기물을 처리하려면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러시아·영국·미국은 터뜨리지 않은 폭탄과 화학무기 100만t을 먼바다에 보내 배 밖으로 가라앉혔다. 소련을 포함한 10여개 국은 방사성 연료가 들어 있으나 쓸모가 없어진 원자로와 핵폐기물을 북극해, 북대서양, 태평양에 투기했다. 이 같은 행위는 1993년에야 금지됐다.
저자는 "투기는 보통 바다 멀리서, 어쩌면 밤을 틈타 비밀과 협박의 장막을 두르고 일어나는 일이라 당국이 투기 자체를 목격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한다.
책은 이 밖에도 밀수업자, 해적과 용병, 밀항자, 임신 중지가 불법인 나라의 여성들을 공해로 데려간 의사, 배를 훔치는 도둑과 폐유 투기범, 미꾸라지 같은 포경선 선원들과 그들을 쫓는 환경 보호 운동가들의 삶을 기록했다.
저자는 대규모 환경 파괴와 경제 불평등, 무차별적인 해양 동물 살육, 어업 종사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 시급한 해양 문제에 대응하지 못하는 각국 정부의 태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한편, 이런 부조리한 상황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다층적인 이유와 그런 현실을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내가 전 세계의 배에서 목격해 이 책에 담아내려 애쓴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서글프리만치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바다와 그 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빈번하게 맞닥뜨리는 혼란과 고통이었다."
아고라. 박희원 옮김. 784쪽.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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