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욕받이서 재간둥이로… 재미 추구해 살아남았죠”

박동미 기자 2023. 9. 6.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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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르문학 전문가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미야베 미유키 소설 활용해
우표·괴담지도 등 굿즈 제작
펀딩 반나절만에 목표액 달성
18년간 사실상 ‘1인 출판사’
한때 ‘이벤트 회사냐’ 비난도
“언제나 기본은 재미있는 책”
출판계 기획의 귀재로 손꼽히는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가 자신의 아이디어로 제작한 머그잔을 손에 들고 웃고 있다.

글·사진=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장르문학 출판사 북스피어는 요즘 하루에도 수십 통의 “우표 없냐”는 전화를 받는다. 우표라면 우체국의 일인데, 무슨 이유일까.

“오랜만에 실력 발휘 좀 해봤어요.”

너스레를 떠는 주인공은 김홍민(47) 대표. 일본 추리소설 거장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 시리즈의 우키요에 표지 20장을 오롯이 담은 우표를 제작했는데, 이게 히트를 쳤다. ‘외딴집’ ‘안주’ ‘눈물점’ 등 일명 ‘미미여사’의 대표작 스무 편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우표는 우체국 ‘나만의 우표’ 형식으로 단 500장만 발행됐다. 김 대표가 직접 쓴 미야베 소설 길라잡이인 ‘미미독본(美美讀本)’, 소설을 그림으로 옮긴 ‘괴담 지도’ 등과 함께 얼마 전 진행한 ‘삼가 이와 같이 아뢰옵니다’의 펀딩 참가자들을 위한 굿즈다. 최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 대표는 “이런 우표나 지도를 만들 수 있는 출판사는 흔치 않다”며 잔뜩 상기된 표정이다. 그럴 만하다. 펀딩은 반나절 만에 목표액을 달성, 3주 만에 1500%가 넘는 3000만 원을 돌파했다.

올해로 창립 18주년을 맞이한 북스피어는 직원이 세 명 이상 늘어난 적이 없다. 2005년부터 김 대표가 직접 작가 섭외·기획·편집·출간을 도맡아 온 ‘1인 출판사’에 가깝다. “우표나 지도를 만들 수 있는 출판사”도 없지만, 이렇게 ‘작은 몸집’을 유지하며 오랜 세월 ‘잘 만들고 잘 파는’ 출판사도 드물다. “몸집을 불렸거나 망했거나…, 보통 둘 중 하나죠(웃음).”

체급은 그대론데 매출과 수익은 늘었고, 주 4일 근무에 야근도 없다. 의기양양한 김 대표에게 비결을 물으니, 이날 입고 온 티셔츠 문구를 보여주며 웃는다.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어크로스·2015)는 일념뿐이었다는 것. 출판론이자 인생론을 명료하게 정리하고, 자신이 쓴 책까지 슬쩍 홍보한다. 과연, 출판계 ‘재간둥이’라 불리는 김 대표다운 대답이다.

“한때 ‘욕받이’였어요. 이벤트 회사냐, 여행사냐, 주객전도다, 출판 말세다…. 별소리를 다 들었는데, 그때 제가 했던 이벤트나 마케팅을 요즘 안 하는 출판사들 없잖아요. 격세지감이죠.”

십수 년 전, 다소 고루했던 출판 시장에서 김 대표가 벌이는 일들은 매번 화제가 됐다. 한강 유람선을 통째로 빌려 개최한 ‘장르문학부흥회’, 상반신 탈의 사진을 실어 논란이 된 장르문학 소식지 ‘르 지라시’ 발간 등 지금 들어도 기발하다. 김 대표는 아이디어가 매일 샘솟았고, 과감하게 실행했다고 돌아본다. 시험을 봐서 합격한 독자들에게 저자 인터뷰를 시켜줬고, ‘워런 버핏과의 식사’를 흉내 낸 ‘마포 김 사장과의 대화’를 판매했다. 또, ‘뉴스 레터’격인 ‘마포 김 사장의 지령’을 정기적으로 발송해 북스피어 팬을 모았고, 그로 인해 5000만 원 펀딩에 성공한 사례는 심심한 책 동네에 ‘전설’처럼 남은 이야기다. 참고로 ‘마포 김 사장’은 과거 김 대표의 별칭. 경기도로 이사한 지금은 ‘삼송 김 사장’을 쓴다.

미야베 미유키 에도 시리즈 표지로 구성된 우표(왼쪽)와 괴담 지도.

지금은 ‘재간둥이’라고, 옹골찬 출판사라고 칭찬받지만, ‘진심’을 몰라주는 것 같아 당시엔 섭섭했다고 김 대표는 토로했다. “동종업계의 인정이 고팠던 것 같아요. 그건 엄마가, 또 친구들이 나를 인정해 줬으면 하는 그런 ‘마음’과 비슷한 거였어요.”

창립 20주년 계획을 벌써 세우고 있는, ‘이벤트 마니아’ 김 대표. 철학은 변함없다. “재미가 없으면 절실함이라도 보여야 한다”고, “책을 위해선 ‘야매’라고, ‘이단’이라고 하는 뒷담화도 다 견딜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주특기 하나를 더 풀어놓는다. 바로, ‘측은지심’ 유발하기. 김훈의 ‘자전거 여행’의 마지막 문장 ‘사람들아 책 좀 사가라’를 활용해 주목받은 머그잔이 좋은 예다. ‘아아 사람들아 책 좀 사라’. 유머와 간절함이 깃든 말에 눈길과 손길이 절로 간다.

책 판매를 위해 각종 ‘기술’을 가져다 쓰지만, 주객전도한 적은 없다. 언제나 기본은 재미있는 책, 자신이 읽고 싶은 책, 좋은 책이다. 북스피어를 지탱해 온 힘은 이것이고, 김 대표는 그 결정적인 역할을 ‘미미여사’가 했다고 강조한다. 지금은 억대 선인세의 저자를, 아직 한국에서 그 진가를 알아차리지 못했을 때 ‘운 좋게’ 만날 수 있었기에. 지난 18년간 출간한 180종 중 50종이 미야베의 작품이고, 이 중 25종이 시대물이다. 김 대표는 “이만하면 출판인 그리고 장르문학 마니아로서 소임을 거의 완수했다고 자부한다”고 했다. 그래도 재미를 방향키 삼아 출판이라는 바다를 조금 더 항해해 볼 생각. 여전히, 그 배가 작더라도. “‘미미여사’의 은퇴가 아마 제 은퇴가 될 거예요. 그게 언제냐고요? 이번에 제가 쓴 ‘미미독본’에 있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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