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770송이 황홀한 ‘꽃밭’…일본서 돌아온 나전칠기 상자

노형석 2023. 9. 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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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유랑은 끝났다.

800여년전 이땅의 고려 세공사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최고급 나전칠기 상자가 수백여년간 일본을 떠돌다 고국에 돌아왔다.

하지만, 문양이나 만듦새 등에서 고려 나전칠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빼어난 명품으로 평가된다.

주목할 부분은 매입 전에 유물을 국내로 들여와 제작기법, 재료 등을 분석해 고려나전칠기임을 밝혀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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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 최고급 나전 상자 환수
나전상자의 국화넝쿨무늬를 확대한 모습.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오랜 유랑은 끝났다.

800여년 전 이 땅의 고려 세공사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최고급 나전칠기 상자가 수백여년간 일본을 떠돌다 고국에 돌아왔다.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김정희)은 6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최근 일본에서 매입한 13세기 고려 중기의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를 처음 언론에 내보인다. 나전칠기는 자개로 무늬를 장식하고 칠을 한 공예품을 말한다.

환수한 나전 상자는 폭 33cm에 높이 19.4cm의 작은 유물이다. 하지만 문양이나 만듦새 등에서 고려 나전칠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빼어난 명품으로 평가된다. 핵심인 문양을 살펴보면, 고려 나전칠기를 수놓았던 국화넝쿨무늬, 모란넝쿨무늬, 점·원 등을 잇따라 연결한 연주(連珠)무늬가 고루 들어갔다.

최근 일본에서 환수된 고려시대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 세계적으로 20개도 채 되지 않는 고려시대 나전유물을 대표하는 빼어난 유물로 평가됐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전체 면에 약 770개의 국화넝쿨무늬를 자개로 장식하고, 천판(뚜껑 윗면) 테두리의 좁은 면에는 약 30개의 모란넝쿨무늬가 자리잡았다. 외곽에는 무려 1670개의 연주무늬가 촘촘히 둘러져 있다. 이런 문양들에 쓰인 자개편의 숫자만 약 4만5000개에 달한다고 재단 쪽은 설명했다.

국화꽃무늬를 감싼 넝쿨줄기는 시(C)자 형 금속선으로, 외곽 경계선은 꼬인 두개의 금속선을 통해 정교하게 표현한 것도 눈길을 끈다. 국화꽃무늬는 중심원이 약 1.7mm, 꽃잎 하나의 크기는 약 2.5mm에 불과하지만, 꽃잎 하나하나에 음각으로 선을 새겨 세부를 묘사했다.

나전도 본래의 무지개 빛깔과 광택이 살아있어 오색의 영롱함을 보여주며 나전과 금속선 같은 장식재 보존 상태도 단연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재단 쪽은 “자개로 국화 또는 모란 무늬를 기물 전면에 빼곡하고 규칙적으로 배치하거나 단선의 금속선으로 넝쿨 줄기를 묘사했고, 매우 작게 오려낸 자개에 음각 선을 그어 세부를 표현한 측면 등에서도 고려 나전칠기 중 최고의 작품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환수한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는 일본 개인 소장가의 창고에서 100여 년 이상 보관되면서 현지 학계나 고미술업계 쪽에서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희귀 유물이다. 재단 쪽은 이 유물을 지난해 7월 현지 협력망(네트워크)을 통해 확인하고, 1년여간의 조사와 협상 끝에 지난 7월 환수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현전하는 고려나전칠기 유물은 전세계적으로 20점 안팎에 불과하다. 대부분 외국에 소장된 상황에서 환수한 ‘나전국화넝쿨무늬상’의 문양과 보존 상태는 국내외 고려 나전 유물들을 대표할 정도로 뛰어나며 기존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새 유물을 찾아냈다는 의의도 지대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나전국화넝쿨무늬 상자를 풀어낸 모습. 덮개와 내함, 외함의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나전칠기 공예품은 목재, 옻칠, 자개, 금속 등 다양한 재료를 쓴다. 작게 오려낸 자개를 일일이 붙여 꽃과 잎의 문양을 장식하는 등 정교하고 복잡한 제작 과정을 거치는 까닭에 ‘공예 기술의 집약체’라고도 일컫는다.

고려시대에는 청자, 불화와 함께 나라를 대표하는 최고 미술공예품으로 손꼽혀 왔다. 1123년 인종 1년 사신으로 왔던 송나라 인사 서긍은 기행기인 ‘고려도경’에 ‘나전 솜씨가 세밀하여 가히 귀하다’는 뜻의 ‘나전지공(螺鈿之工)/세밀가귀(細密可貴)’라는 찬사를 적었다.

‘고려사’도 이미 11세기에 고려 조정이 송, 요 등 외국에 보내는 선물 품목에 나전칠기가 포함됐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어 당시 주변국에서 인기가 높았다는 것을 일러준다.

주목할 부분은 매입 전에 유물을 국내로 들여와 제작 기법, 재료 등을 분석해 고려나전칠기임을 밝혀냈다는 점이다. 지난 5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엑스(X)선 촬영 등 과학적 조사를 통하여 정밀분석을 실시했는데, 그 결과 목재에 직물을 입히고 칠을 한 ‘목심저피칠기(木心苧被漆器)’로서 전통 칠기제작기법이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재단 쪽은 “국내 나전칠기의 전통 기술 복원을 위한 연구와 국민들의 문화유산 향유를 확대하기 위한 전시 등에 환수유물들을 잘 활용하리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도판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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