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땡이 화가’의 변신은 무죄…김용익 전시

이한나 기자(azure@mk.co.kr) 2023. 9. 6. 08: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권위 전복하는 미술과 놀러 가보는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 김용익전
가급적 재료 덜 써서 작품 만들고
과거 작품 활용해 새로운 작품으로
위트있게 기후변화시대 대응 메시지
동시대 감수성 통해 MZ 관람객에 인기
김용익, 라스트 제너레이션에게(2022) <서울시립미술관>
망친 그림인가. 알록달록 고운 빛깔 그림 위에 비닐이 덮였고 크고 검은 스프레이 페인트 얼룩이 한가운데 남았다. 어디서 많이 본 느낌, 맞다. 최근 몇 년 새 주요 미술관과 박물관을 돌면서 토마토수프나 달걀, 페인트를 뿌리면서 기후변화에 경종을 울리며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환경단체의 행동이다.

문제적 작가 김영익(76)이 최근 기후변화 위기 시위방식에 착안해 만든 작품이 바로 ‘라스트 제너레이션에게’(2022)다. 예술파괴 메시지로 위기를 전달해온 독일 환경단체 ‘라스트 제너레이션’이 있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있는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에서 같은 제목의 전시가 11월 19일까지 열린다. 이곳에서 소장한 작가 김용익 아카이브를 통해 1970년대 모더니즘·개념미술부터 2000년대 이후 공공·생태미술로 해석됐던 작가의 주요 작품 38점과 이면지 드로잉, 육필원고, 사진 등 300여점 자료를 만날 수 있다.

김용익, 무제(1981년 〈제1회 청년작가전〉에) (2011·1981년 작 재현) <서울시립미술관>
작가는 초기에 ‘평면 오브제’ 연작으로 1970년대 상파울루비엔날레와 일본 개인전을 열며 주목받았으나 1981년 제1회 ‘청년작가전’에서 본인 작품을 박스와 포장재에 밀봉한 상태의 작품 ‘무제(1981년 제1회 ’청년작가전‘에)’를 출품하며 당시 화단권력과 사회 정치적 상황에 대한 회의감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이후 금강현대미술제 퍼포먼스 작업 등으로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김용익, 가까이 더 가까이(1995) <서울시립미술관>
1989년 인공갤러리 개인전에서 평면을 세운 ‘두 조각’ 입체 작품에서 앞면과 뒷면을 동시에 볼 수 있도록 합판 표면에 구멍을 뚫기 시작하면서 1990년대 작가 작업을 대표하는 ‘땡땡이’회화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작가는 이 회화에서 더 나아가 ‘가까이...더 가까이...’연작으로 전복했다. 그림을 코앞에서 보면 얇은 선이나 흐릿한 글씨로 보일 듯 말듯 ‘가까이 더 가까이’란 글자를 발견하게 된다. 완전무결한 모더니즘 회화에 일부러 흠결을 내는 장면을 보여준다.

같은 맥락에서 ‘너를 보내며(1995~2012)’란 작품도 흥미롭다. 환갑을 앞둔 작가는 파란 원의 ‘땡땡이’ 회화(1995) 위에 자신의 쇠약한 육체를 그리고, 4년 후 의도적으로 작업실 밖 처마 아래에 1년을 방치해 캔버스 천이 벗겨질 정도로 훼손되게 했다. 이 부분에 수의나 관을 상징하는 금칠 문양과 나무 장식이 더해져 2012년 서울시립미술관 단체전에 전시됐다. 그런데 관람하던 꼬마 몇몇이 형광펜으로 작품 위에 자기 이름과 그림 등 낙서를 남기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소식을 접한 작가는 비로소 ‘작품이 완성됐다’며 유리관을 씌워 작품을 보관한 후 그 위에 검정 펜으로 그간의 에피소드를 적었다. 작품 제목도 ‘흙 묻은 그림’에서 ‘너를 보내며’로 바꿨다. 순수한 관람객의 적극적인 소통이 작가의 작업 태도와 맞닿은 것이다.

김용익, 삼면화(1970-2022) <서울시립미술관>
작가는 세 개의 화면으로 분할된 나무 상자를 짜고 1970년대부터 이어진 자화상이나 평면 오브제 등 본인 작업을 솜으로 싸며, 저승길 노잣돈 동전과 금색 수의를 더한 작품 ‘삼면화’(1970~2022)도 선보였다. 과거 본인 작업물을 관에 짜 넣는 방식은 현재의 예술이 창조로서가 아니라 편집으로서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말년을 앞두고 작가는 작업실에 남아있는 화구를 다 소진해 나가는 물감 소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캔버스 화면을 색면추상 같은 지그재그 형상으로 나누고 그 위에 여러 형상을 겹치게 해서 면을 쪼개고 그 위에 물감을 골고루 사용하며 소진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라스트 제너레이션에게’작품을 완성하는 초안이 됐다.
김용익 아카이브 전시의 1980년 《금강현대미술제 창립야외작품전》 관련 자료 <서울시립미술관>
전시를 기획한 유예동 학예연구사는 “작가의 전 생애에 걸쳐 1034건 아카이브 자료를 2018년 기증받아 한국 현대미술에 대해 깊이 있게 조망하는 전시를 기획할 수 있었다”면서 “생태 문제에 관심 많은 작가가 미술에 대한 회의감에서 선언한 종이상자 출품작에서 착안해 전시실을 종이상자로 쌓고 전시 이후에도 재활용할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미술 애호가 방탄소년단 리더 RM도 전시 개막에 맞춰 다녀갔다는 소식이 회자되고 있다. 전시를 보고 나서 미술 관련 책이나 다른 작가들의 아카이브도 찾아볼 수 있어 오래 머무르기 좋은 공간으로 입소문이 나고 있다.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도 지역 학부모에게 인기다.

올해 3월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개관한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 전경 <서울시립미술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