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늘리면 청년 실업? 청년도 뽑아라"…노조 압박에 기업들 '난감'
[편집자주] 생산인구 감소와 평균연령 증가로 인한 연금 고갈 등 고령자 고용이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른 가운데 노조가 강력하게 정년연장을 요구한다. 기업은 고령자 고용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정년연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을 긋는다. 양 측의 주장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상황에서 내놓을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일까.
국내 최대 단일노조인 금속노조 현대차지부가 올해 임금 및 단체협상의 중요 안건으로 정년 연장을 지목했다. 기대수명이 늘어났고 연금 수령 시점도 정년보다 뒤에 있는 만큼 정년을 64세까지 늘려달라는 것이다. 현대차 외에도 기아와 포스코, HD현대 계열사 등의 노조가 올해 임단협 요구안에 정년 연장을 핵심 과제로 넣었다. 이들 중 일부는 정년 연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파업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회사의 입장은 난감하다. 현재 법으로 정해진 정년은 60세다. 고령자 고용의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으나 노사간 협상으로 이를 늘리는 것은 다른 문제다. 또 현행 노동제도 하에서 정년을 늘리는 것은 임금과 고용유연성 측면에서 회사가 져야 할 부담이 너무 크다. 청년 고용이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따라붙는다.
때문에 고령자 고용을 놓고 노사간 갈등이 심화할 수 밖에 없다. 이는 단순히 노사가 일자리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는 상황이 아니다. 국내 고령자와 관련한 대부분의 통계가 고령자 고용 해결이 시급하다고 가리킨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901만8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17.5%다. 2025년엔 65세 인구 비율이 20%를 넘기고 2050년이 되면 40%가 넘게 된다. 여기에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38.9%로 2020년 기준 경제협력개발(OECD) 국가 평균(14.9%)보다 크게 높다.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노조는 안정적으로 길게 일할 수 있게 되면 고령자 고용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낙관한다. 그러나 재계의 의견은 다르다. 국내 대부분의 기업이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를 가지고 있다. 정년만 늘리게 되면 기업이 져야 할 부담이 지나치게 커져 경쟁력을 잃는다는 것이 재계 시각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에 따르면 100인 이상 사업장의 절반 이상이 아직도 호봉제를 운영 중이다. 1000인 이상 사업장으로 한정하면 70%에 달한다.
2017년 정년이 60세로 한차례 연장된 뒤 겪은 부작용 또한 기업이 정년 연장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법적으로 정년이 연장되면 이후 기업은 인력 구조를 재편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정년이 한차례 연장된 이후 노동경직성이 더 높아졌고, 글로벌 경쟁력에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하는 기업이 많다. 여기에 재계는 임금 부담이 컸던 기업을 중심으로 청년고용이 감소했다고 본다. 청년의 안정적인 일자리도 함께 챙겨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정년 연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정부는 최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를 통해 '초고령사회 계속고용 연구회'를 발족해 임금체계 개편과 연계한 고령층 계속고용 문제를 논의한 뒤 하반기 중 그 결과를 발표하기로 했다. 계속고용은 정년을 채운 뒤에도 계속 일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으로 정년 연장·폐지와 재고용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경사노위는 "베이비붐 세대 비중이 큰 우리나라는 급속한 고령화에 잘 대처하지 않으면 성장률 저하는 물론 국가재정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며 "고령층이 계속 일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나 노동계 주장처럼 단순히 법으로 정년을 연장할 경우 취업을 원하는 청년들에겐 큰 장벽과 절망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청년층과 노년층 모두를 고려한 방향으로 고령자 고용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며 "서로 유리한 부분만 주장해서는 안되고 노사가 모여 책임감 있게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년연장 이슈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는 청년 고용이다. 청년고용률이 47%에 그치는 상황에서 정년 연장은 청년 고용을 감소시킨다는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 이는 곧 세대 갈등으로 비화될 수 있다.
4일 재계에 따르면 완성차업계는 정년연장을 두고 세대 간 갈등이 심한 업종 중 하나다. 정년퇴직을 앞둔 '베이비붐' 세대를 주력으로 한 노조 측은 숙련된 노동력을 유지해야 한다며 정년 연장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2021년에 MZ 직원이 노조의 정년연장에 반대한다는 청와대 청원을 내기도 했다. 친환경차로 바뀌는 기로에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갈등의 기저에는 한정된 일자리를 둘러싼 청년과 고령자 의견 차이가 있다. 고령자 일자리와 청년의 일자리는 상관관계가 있다는 분석이 다수 존재한다. 예컨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민간사업체(10~999인)에서 정년 연장의 예상 수혜자가 1명 증가할 때 고령층(55세~60세) 고용은 약 0.6명 증가하고, 청년층(15~29세) 고용은 약 0.2명 감소했다. 청년 미취업자 고용 의무가 부과된 공공기관에서만 정년 연장에 따라 고령층만 아니라 청년층 고용도 증가했다.
다른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17년 발간한 '정년연장의 사회경제적 파급효과 분석' 보고서에서 "전체 취업자 중 청년층의 비중과 고령층의 비중을 비교한 결과 고령층의 비중이 1%포인트 증가할수록 청년층의 비중은 0.8%포인트 감소한다"며 "취업 비중을 기준으로 볼 때 고령층과 청년층이 노동시장에서 대체관계에 있음을 의미한다"고 했다. 연구원은 경제성장으로 일자리가 창출될 경우 청년층과 고령층의 일자리는 함께 증가했지만 외환위기 직후처럼 경제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아 일자리 수가 제한된다면 대체관계를 이룬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고용 유지가 쉽지 않은 가운데 청년 고용과 정년 연장이 양립하기 어려울 수 있다. 특히나 전기차·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산업구조 변화로 기존 인력 축소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실제로 기아의 지난해 만 50세 이상 임직원은 총 1만9610명으로 전년(2만1508명)보다 2000여명 가까이 줄었다. 같은 기간 만 30세 미만 직원은 2160명으로 1000여명 가까이 늘었다. 이에 따라 50대 이상 직원의 전체 비중은 60.6%에서 54.7%로 줄었고, 30세 미만 직원의 경우 2.9%에서 6%로 늘었다. 기아의 임직원 평균 근속연수는 22.4년으로, 기아는 지난 3년간 임직원 수를 3만5000명 수준으로 유지해왔다. 만 50세 이상의 직원이 정년퇴직 등의 이유로 줄어드는 사이 만 30세 미만의 신규 채용이 늘었다. 노조는 현재 신규채용과 정년연장을 동시에 요구하고 있다. 정년연장이 청년고용을 막는다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차의 경우 노조와의 협상 결과에 따라 올해 10년 만에 생산직 채용을 단행했다. 내년까지 총 700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그러나 사기업이 공공기관처럼 청년고용와 정년연장을 동시에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비용 측면에서 감당이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공기관은 2017년~2019년 부채 규모가 커지는 가운데서도 정부 일자리 정책의 일환으로 신규 채용을 늘려왔다. 결국 적자가 누적되면서 2020년 이후 채용 규모를 매년 감축하는 등 고강도 구조조정에 착수한 상태다. 재계에서는 정년 연장 정책 자체가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며 보다 유연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년 연장 60세가 정착된 이후에도 고령자 고용률이 55%에 머무르고 있다. 일자리를 떠나는 평균 나이도 약 49세다. 기존 정책이 효과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연령만 늘린다고 상황이 쉽게 개선되지 않을 전망이다. 우선 고령자가 다양한 형태로 일자리에 참여할 수 있도록 고령친화적 사업장 구축이 먼저이며, 이를 위해 유연성 있는 재고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재계 관계자는 "정년을 연장할 경우 기업의 선택지가 사라진다"며 "전반적인 경쟁력이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성 기자 lts320@mt.co.kr 정한결 기자 hanj@mt.co.kr 강주헌 기자 z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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