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열도 가슴 뛰는 청년이었음을 느끼길"…뮤지컬 '22년 2개월'
(서울=연합뉴스) 최주성 기자 =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것…. 책을 읽고 싶어요."
독립운동가 박열과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 일본 여성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는 가장 하고 싶은 일을 묻자 미소를 띠며 답을 내놓는다. 책을 읽고 싶다는 대답에 웃던 박열은 이내 가네코를 다정히 안고 책을 펼친다.
이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일본인 예심판사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사진기를 꺼내와 두 사람을 찍는다. 역사에 남은 한 장의 사진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지난달 31일 서울 대학로 링크아트센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22년 2개월'은 1926년 일왕 암살을 계획한 혐의로 재판받던 박열과 가네코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 한 장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광염 소나타'의 작가와 작곡가를 맡은 다미로가 7년에 걸쳐 직접 대본과 음악을 제작했다.
다미로는 5일 프레스콜에서 "8년 전 '독립운동가의 길'을 방문했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여사의 이야기를 처음 접하고 흥미를 느꼈다"며 "작품을 함께할 작가를 찾으려 했는데 어쩌다 보니 시놉시스도 쓰게 되고, 대본도 완성해 여기까지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작품은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박열과 가네코의 이상과 사랑을 극적으로 재구성했다. 도쿄로 향하는 배에서 서로 부딪히면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사상을 공유하는 동지로,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연인으로 거듭난다.
다미로 작가는 "역사적 기록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관객에게 박열과 가네코의 이야기를 친밀하고 대중적으로 전할까 고민했다"며 "이들도 독립운동가이기 전에 가슴 뛰는 청년이라는 것을 느끼고, 두 사람의 관계에 더 관심을 갖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제목인 '22년 2개월'은 사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힌 박열의 투옥 기간에서 따왔다. 작품에는 옥살이를 마치고 나온 박열이 전향을 종용당했던 때를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다미로는 "작품을 준비하며 '22년 2개월 동안 박열이 어떻게 전향을 거부하고 버틸 수 있었을까'하는 점이 가장 궁금했다"며 "22년 2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관객에게 '당신이라면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질문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실존 인물을 무대에 올리는 만큼 배우들은 철저한 사전 조사를 통해 박열과 가네코의 다양한 면모를 구현하는 데 집중했다. 역사 왜곡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에 자료 수집에도 공을 들였다.
박열을 연기한 유승현은 "영화 등을 통해 박열의 이야기가 알려진 상황에서 관객들의 기대치를 어느 정도로 충족시킬지 고민이 많았다"며 "공판 장면에서는 투쟁심을 드러내는 모습을 연기했지만, 가네코를 만날 때는 섬세하고 배려할 줄 아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고 돌아봤다.
최수진은 가네코 역을 맡고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옥중수기 '나는 나'를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한국의 독립운동을 바라보는 가네코의 성숙하고 깊은 생각을 연기에 녹여내고자 노력했다.
"기개가 있고 본인의 사상이 뚜렷한 분이라 준비하며 많이 배웠고 깊은 생각과 사고를 닮고 싶었어요. 신여성 가네코의 모습을 많이 담으려 했고 박열이라는 남자를 만나 사랑하는 여자의 모습까지도 재밌게 작업했습니다."
작품은 대형 스크린 등을 활용한 무대 연출과 5인조 라이브 오케스트라 연주로 생동감을 더했다.
특히 간토대지진이 발생하는 대목에서는 객석을 흔드는 강한 진동과 화재를 표현하는 영상으로 당시의 혼란을 묘사한다. 오케스트라는 격렬한 바이올린 연주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박지혜 연출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며 다미로 작가가 써 내려간 내용을 최대한 무대 위에서 구현하려 노력했다"며 "역사적으로 큰 사건인 간토대지진을 묘사하는 대목에서는 고민이 많았다. 작가부터 영상 디자이너까지 의견을 많이 물었고, 장면 전환부터 무대의 특수효과까지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작품은 11월 5일까지 계속된다.
cj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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