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야 한다[편집실에서]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또 한 번 일을 낼 기세입니다. 미국 메이저 음반사인 유니버설뮤직그룹 산하 레이블 ‘게펜 레코드’와 손잡고 글로벌 무대에서 활약하는 ‘걸그룹’ 결성을 위한 서바이벌 오디션을 열겠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빌보드 차트 점령에 이어 세계가 좁다시피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BTS를 배출한 하이브의 K팝 훈련 시스템을 전 세계에 이식해 BTS를 넘어서는 다국적 걸그룹을 선보이겠다는 구상입니다. 9월 2일 미션 라운드를 시작해 오는 11월 18일 ‘라이브 피날레’와 함께 최종 멤버를 확정 짓는 12주 일정입니다.
국경과 민족을 뛰어넘고,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가로지르는 글로벌 프로젝트라는 점이 특히 눈길을 끕니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전 세계를 대상으로 했습니다. BTS와 K팝에 매료된 지구촌 젊은이들이 2년 전부터 몰려들었고, 지역별 예심을 거쳐 결선 진출자 20명을 확정했습니다. 한국, 미국, 일본, 브라질, 아르헨티나, 스위스, 스웨덴, 슬로바키아, 벨라루스, 호주, 태국, 필리핀 등 출신 국적이 다양합니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정치 성향, 이념, 가치관, 성별, 세대, 종교, 지역에 따라 나뉘고 갈등하는 현실에서 다국적 그룹 결성이라니 그 자체로 엄청난 파격이요, 대단한 실험입니다.
공교롭게도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와 충돌 중인 중국, 러시아 등 국가 출신은 이들 중에 없습니다.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놓고도 중국은 반대하고 미국은 찬성합니다. 한국에서도 의견이 무 쪼개듯 갈라져 있습니다. 100여 년 전 그날, 한반도를 둘러싼 풍경은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 1910년 8월 29일. 일본제국주의가 조선의 국권을 빼앗은 경술국치일입니다. 그때도 일제는 “조선을 문명화시키겠다”는 식의 그럴듯한 논리를 들이댔습니다. 을사오적 말고도 한국인 중에 일본의 야욕을 지지하고 찬성하는 부류는 없었을까, 그로부터 35년간 이어진 식민지 수탈의 암울한 역사, 해방 이후 지금까지도 친일잔재는 제대로 청산되지 않고 대한민국 곳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각 분야에서 전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한국인들과 도심 곳곳을 활보하는 다양한 국적의 외국 관광객들을 보노라면 몰라보게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실감합니다. 그런데 한 꺼풀만 벗기고 들어가면 딴 세상이 펼쳐집니다. 아이 낳기 겁나는 나라, 자살률 1위 국가, 무한경쟁 사회, 만연한 혐오·대립, 급증하는 흉기 난동 범죄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벅찹니다.
2023년 8월 24일, 일본이 후쿠시마원전 오염수 방류를 기어이 개시했습니다. 그럴듯한 명분을 갖다 붙이며 짧게 잡아도 앞으로 30~40년간 계속해서 인류의 젖줄과도 같은 바다에 핵폐수를 쏟아붓겠다고 합니다. 인접 국가들의 반발은 ‘괴담’이니 ‘몰과학’으로 치부합니다.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지금, 일본의 무책임은 훗날 대한민국, 나아가 이 지구상에 어떤 잔해를 남기게 될까, 못내 걱정스럽고 두렵습니다.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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