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페어의 계절, ‘젊은 작가’ 바람이 분다
미술시장에서도 젊은 작가들이 대세가 되는 것일까?
영국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미술품 장터 프리즈의 서울 전시와 한국화랑협회가 주관하는 국내 최대 미술품 장터 키아프를 동시 개최하는 올해 9월 한국 미술판에서는 젊은 작가들의 전시동향을 주목하고 있다. 두 행사를 겨냥해 개막 전부터 청년작가 기획전들의 물량 공세가 전례없이 쏟아지는데다, 출품작들 또한 만만치 않은 문제의식과 내용성을 지닌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예술경영지원센터와 미술계에 따르면, 6일 키아프 개막을 앞두고 지난달 잇따라 개막한 주요 미술공간들의 청년 소장 작가들의 굵직한 기획전은 아트선재센터의 ‘오프사이트’ 전, 뮤지엄 해드의 ‘더비 매치’, 송은문화재단의 ‘파노라마’ 등 5개나 된다.
이 전시들은 ‘이젠 진부한 대가들 작품만 보지 말고 신선한 젊은 문제작들을 눈여겨 보라’는 모토를 내걸었다. 프리즈∙키아프를 앞두고 메이저 갤러리와 경매사들은 여전히 대가들 명품 전시에 다걸기를 하는 관행을 답습하지만, 상당수 미술공간들은 이런 관성을 벗어나고 있다. 기획전을 통해 재료와 개념에 대한 20~30대 작가들의 젊은 감각을 강조하면서 엠제트(MZ) 세대작가의 집단 마케팅을 특징적으로 부각하고 있는 것이다.
2010년대 이후 공간과 물질 등을 소재로 새로운 시각과 방식으로 작업한 작가 6명이 참여하는 그룹전 ‘오프사이트’를 지난달 18일부터 연 북촌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의 파격적인 전시공간 변신이 대표적이다. 최고은 작가의 뱀 같은 금속 파이프 조각을 선보이기 위해 과감히 건물 옥상 덮개판을 뜯고 옥상 정원을 개방했고, 현남 작가의 쇠사슬로 엮인 관계성의 조각 덩어리를 기계실을 전시장으로 바꿔 설치했다. 또 지하 강당은 현정윤 작가의 율동하는 실리콘 조형물 설치작품 무대로 활용했다.
지난 1일부터 열린 서울 계동 뮤지엄 헤드의 청년작가 24인 연합 기획전 ‘더비 매치:감시자와 스파이’는 거대 미술자본의 잔치인 프리즈∙키아프에 맞장을 뜨겠다는 발칙한 전시의도와 구성이 독특하다. 거대 자본의 거래 행태를 그대로 따라 하면서 그들과의 차이와 공유점을 더듬어본다는 것이 전시 얼개다. 전시관 앞 연못에 종이와 우레탄으로 국제갤러리, 가고시안 같은 거대 갤러리의 명품들을 실은 궤짝들을 어설프게 실물로 재현해놓은 신호철 작가의 풍자적 설치작품들을 볼 수 있다.
프리즈∙키아프와 시장 공간에서 함께 공존하면서 시장을 인정하고 한편으로는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존재들이라고 출품작가들의 정체성을 규정한 권혁규 기획자의 취지대로 전시는 이중적인 단면을 띤다. 전시 참여작가들은 실제 판매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설치하면서도 얼핏 그 장소로부터, 또 각 개인으로부터 분리된 플레이어 같은 인상으로 다가온다. 비판적인 조형의식과 별개로 팔리는 시장과 필연적으로 함께 갈 수밖에 없는 청년 작가들의 속내를 다기한 매체의 작품들을 통해 이야기하는 전시다.
인왕산 자락 아래 자하미술관의 기획전 ‘하이브리드 그라운드’도 특이하다. 7명의 소장작가(팀)들이 미술관은 물론 인근 산자락 곳곳에 지금 지구촌의 환경과 생태 등에 대한 이분법적 대립 구도를 담은 여러 작품들을 흩어놓았다. 숨은 그림 찾기 하듯 관객들에게 찾아보기를 권하면서 인류세의 미래를 성찰하게 했다.
이외에도 송은문화재단은 각기 다른 세대와 주제·매체를 다루는 작가 16명의 단체 기획전 ‘PANORAMA(파노라마)’를 지난달 16일부터 10월28일까지 열고 있고, 예술경영지원센터도 2022~2023 전속작가지원제 참여 작가 204명(86개 화랑) 중 13인의 작가를 골라 서울 플랜트라스 성수플래그십에서 ‘다이얼로그 : 마음의 지도’라는 주제로 단체기획전을 9일까지 여는 중이다.
지난해까지 초가을 아트페어의 계절엔 갤러리는 물론 미술관들도 원로∙기성작가를 앞세우는 빤한 전시에 몰두했었다. 올해부터 젊은 작가들 작품이 일부 화랑들의 주력 상품으로 부각되고 미술관 등의 전시기관도 소장 작가들의 의욕적인 기획전을 내놓는 양상이 두드러진 것은 간과할 수 없는 변화다.
미술평론가인 유진상 계원예술대 교수는 “미술시장에 30~40대 젊은 컬렉터 투자자와 관객들이 급격하게 유입되고 국외 화랑과 투자자들도 젊은 작가들 확보에 나서면서 중견 작가 작품만 갖고는 시장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라면서 “젊은 미술 콘텐츠가 지금 당장 필요하다는 시장의 수요가 더욱 차오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짚었다.
글 ·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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