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시대에 돌아온 사랑과 전쟁 [K콘텐츠의 순간들]
지난봄 JTBC에서 방영한 〈닥터 차정숙〉은 의대를 졸업했지만 20년간 전업주부로 살아온 차정숙이 대학병원 가정의학과 레지던트로 복귀해 커리어를 재개하는 이야기다. 초반에는 ‘아줌마’ 레지던트를 달가워하지 않는 동료들 사이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실수를 거듭하지만 정숙은 가사에 전념했던 지난 20년의 경력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환자에게 정서적 안정과 세심한 돌봄을 제공하는 훌륭한 의사로 성장한다.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정숙의 삶만 반듯하게 발라낸, 위의 요약을 읽고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왜냐하면 〈닥터 차정숙〉이 18%라는 높은 시청률로 종영할 수 있었던 결정적 흥행 요인은 정숙의 자발적 성장기가 아닌 그녀의 슬픔과 분노에 있기 때문이다.
정숙은 의대 1학년이던 스무 살에 동기 인호와 결혼해 임신과 출산을 한 후, 둘 중 한 사람만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 낫다는 시어머니의 설득에 응해 전업주부가 된다. 그는 ‘이왕 하기로 한 거 열심히 하는’ 뒤끝 없는 사람이기에 20년간 군말 없이 자신을 무시하는 권위적인 남편을 내조하고, 며느리를 종처럼 부리는 시어머니를 모시며, 두 자녀까지 도맡아 양육한다. 정숙이 가족을 위해 아내·며느리·엄마로 헌신하는 동안, 정숙의 남편 인호는 오랜 외도 관계에서 혼외 자녀까지 두고도 그 사실을 정숙에게 철저히 숨긴 채 바쁜 가장 행세를 하며 뻔뻔한 이중 생활을 지속한다. 이렇듯 〈닥터 차정숙〉은 정숙과 인호의 예정된 관계의 파국을 처음부터 보여준 뒤 정숙이 어떻게 모든 사실을 알게 되는지, 또 정숙이 어떤 방식으로 인호에게 복수하는지 끊임없이 추측하게 하며 시청자들의 기대를 모으고 성실히 이에 부응했다.
배우자 불륜으로 인한 부부관계의 파탄과 이어지는 복수극은 한국 드라마의 마스터플롯 중 하나지만, 〈닥터 차정숙〉은 처음부터 주인공 부부의 이혼을 전제하며 뚜렷한 갈등 상황을 제시해 시청자들의 판결을 요하는 구성으로 차별점을 만든다. 그렇다면 〈닥터 차정숙〉을 비롯해 몇몇 작품이 취하는 이러한 ‘가정법원’ 장르는 어떻게 묶어 부를 수 있을까? 나라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랑과 전쟁’을 외칠 것이다.
1999년 시작한 KBS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은 종영할 때까지 800편에 가까운 이혼 위기 부부의 에피소드를 방영한 장수 단막극이다. ‘사랑과 전쟁’이라는 제목 자체가 가정불화와 불륜의 관용어로 쓰일 만큼 작품은 오랫동안 이혼에 이르는 다양한 문제와 사례를 조명했다. 연령 제한이 있는 프로그램이지만, 초등학생 시절 금요일 밤은 무조건 〈사랑과 전쟁〉을 시청해야 잠에 들던 때가 있었다. 〈의좋은 형제〉 〈천하무적 시아버지〉 〈못생긴 남편〉 〈두 명의 시어머니〉 〈시누이 삼총사〉…. 가정이 무너지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에피소드의 제목은 양순하기 짝이 없었고, 나는 마치 전래동화 전집을 구독하듯 매주 새로운 에피소드를 기다렸다.
현실의 이혼 사례를 바탕으로 각색한 〈사랑과 전쟁〉 에피소드들은 짧은 분량 안에 이야기를 압축해야 하기에, 문제 상황을 최대한 자극적으로 그려내며 꾸준히 ‘막장’이라는 질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 단순하고 직관적인 갈등 구조와 불화의 책임이 있는 배우자를 응징하는 특유의 ‘사이다’ 결말은 무언가 해결하고 싶어 하는 시청자들의 욕망을 충족하며 꾸준히 그들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였다. 결정적으로 〈사랑과 전쟁〉이 사랑받을 수 있던 가장 큰 이유는 ‘가정법원’이라는 프레임 구성에 있었다. 피로를 느낄 만큼 지나치게 몰입해서 보더라도, 극이 끝날 무렵엔 늘 상석에 앉은 판사(신구)가 “4주 후에 뵙겠습니다”라는 말로 이야기를 단정하게 매듭짓는다. 이를 통해 액자(프레임) 밖으로 나온 시청자들은 ‘사이다’를 즐겼다는 일말의 죄책감마저 말끔하게 청산하고, 금요일 밤을 기분 좋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내가 아는 한, 이런 기승전결을 가진 엔터테인먼트를 싫어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사랑과 전쟁’은 하나의 장르다
〈사랑과 전쟁〉은 부부관계 개선의 일환으로 이용되는 사이코드라마(심리극)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지상파 채널로 송출되는 방송이기에 소재와 표현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단골 권고 대상이었다. 때마침 활성화되기 시작한 인터넷 게시판 문화는 〈사랑과 전쟁〉의 선정성에 대한 대중의 반응을 더욱 뜨겁게 만들었고, 방송은 에피소드마다 ‘이혼 찬성’ ‘이혼 반대’에 관한 시청자 투표를 ARS, 우편, 인터넷을 통해 수집했다. 어떻게 보면 〈사랑과 전쟁〉은 작품의 지속적인 노이즈를 이용해 시청자 참여를 유도하고, 그 공론장의 에너지로 채널을 유지하는, 말 그대로 지금의 유튜브 콘텐츠를 미리 시험한 작품인 셈이다.
심의 기준이 좀 더 자유로운 케이블 채널의 등장과, 리얼리티로 재편된 방송가 판도는 영원할 것 같던 〈사랑과 전쟁〉의 인기도 금세 식게 만들었다. 2014년 종영을 맞은 후 한동안 소문으로 돌던 세 번째 시즌의 제작도 무산되고,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은 〈우리 이혼했어요〉 〈결혼지옥〉 같은 실제 위기를 맞은 부부 리얼리티에 밀려 점점 잊혀가는 듯했다.
그런데 2020년, KBS 미디어의 유튜브 채널 '케미티비’에 〈사랑과 전쟁〉 두 번째 시즌의 에피소드 요약본 전체가 업로드되었다. 고전은 시대를 가리지 않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미 유튜브 시대를 예견한 작품이기 때문일까? 이대로 잊히는 줄 알았던 〈사랑과 전쟁〉은 채널 업로드와 동시에 몇십만에서 몇백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익숙한 묘미에 열광하는 옛날 텔레비전 시청자와 솔루션 일색의 부부 예능에 질린 새로운 시청자들이 다 같이 모여 작품의 내부와 외부를 넘나들며 방송사 공채 탤런트 출신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력에 감탄하고, ‘간통죄’ 부활에 대해 찬반 토론을 열고, 2000년대 텔레비전 드라마 특유의 미장센을 분석하며 댓글창을 포화 상태로 만들었다.
이와 같은 반응은 〈사랑과 전쟁〉이라는 당대 인기 작품의 힘에 자사의 옛날 콘텐츠를 ‘숏폼’으로 만든 케미티비의 기획을 더한 결과다. 실제 해당 채널에 업로드되는 〈사랑과 전쟁〉 에피소드는 모두 편당 10분 안팎으로 편집되어 있고, 장면마다 요즘 인터넷 커뮤니티의 감성과 말투로 코멘트를 달아 보다 즉각적인 반응을 유도한다. 채널은 또한 최대 60초 길이인 유튜브 ‘쇼츠’와 인스타그램 ‘릴스’ 포맷에 맞춰 초단편 버전으로 편집하는 등, 원본을 더욱 공격적으로 변형해 자사 콘텐츠를 다양한 연령층에 유통시키고 있다.
〈의좋은 형제〉 〈시누이의 반란〉 같은 제목이 〈동생밖에 모르는 美친 남편〉 〈개진상 C누이 이야기〉 등으로 바뀐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케미티비 〈사랑과 전쟁〉은 ‘유튜브 버전’임을 반드시 명시해야 할 만큼 인터넷 커뮤니티 감성으로 재해석된 콘텐츠다. 처음엔 유행어와 ‘밈’으로 범벅된 코멘트가 원작을 너무 훼손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으나, “이러니까 폐지됐지” 하며 〈사랑과 전쟁〉 자체를 ‘디스’하는 자막을 본 뒤 나는 케미티비의 피아 구분 없는 무아지경 코멘트에 완전히 중독되고 말았다. 명절 동서지간 갈등을 말리면서도 일 하나 거들지 않는 남편들을 향해 “싸움 말릴 시간에 니들이 집안일 하면 되잖아!” 하며 호통을 치고, 아내를 때리고도 ‘사랑해서 그랬다’고 하는 남편에게 판사가 4주의 조정 기간을 주자, “뭐 하시는 거예요! 이혼이 아니라 당장 구속시켜!” 하며 분개하는 자막들은 과거 작품 속 구습들을 한마디로 해소해내며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플랫폼 변화를 지나치게 인식한 콘텐츠의 ‘숏폼화’는 해석의 폭을 제한해 감상을 가볍게 만들고, 긴 호흡의 작품을 시장에서 소외시키는 부작용을 야기하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유튜브판 〈사랑과 전쟁〉 역시 누구에게나 권장할 만한 모범적인 콘텐츠라고는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이 인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숏폼’의 한계보다는 콘텐츠의 완성도와 안정감에 대한 사람들의 갈망을 더욱 크게 느낀다. 실제 인물의 사생활 리얼리티, 출연자의 역량에 많은 것을 의존하는 예능에서 피로를 느낀 사람들은, 이제 다시 극본을 토대로 처음과 끝을 단단히 매듭지은 스토리 콘텐츠의 매력에 끌린다. 유튜브판 〈사랑과 전쟁〉은 성실하게 만들어진 원작의 기쁨과 그것을 요즘 시대의 시선으로 변형하며 얻는 재미를 ‘관계’라는 보편적 소재를 통해 추구한다. 그래서 〈사랑과 전쟁〉 유튜브의 댓글창엔 1980년대생과 2000년대생이 한데 모여 의견을 주고받으며 각자의 해결 방식을 구체화한다. 과거의 콘텐츠와 현재의 플랫폼이 결합해 다시 돌아온 〈사랑과 전쟁〉이 더 이상 ‘길티 플레저’가 아닌 이유다.
복길 (자유기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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