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이전 상장 호재?…엘앤에프 투자자 ‘울상’ [비즈니스 포커스]
[비즈니스 포커스]
“포스코DX 생각하고 들어온(매수한) 사람 손 드세요. 그 손으로 가슴에 손을 올리고 복창하세요. ‘나는 호구다.’”
2차전지 양극 활물질 제조업체인 엘앤에프의 네이버 주식 종목 토론실에서 다수에게 공감받은 글이다. 유가증권시장 이전 상장을 발표한 기업 두 곳의 운명이 달라졌다. 한 곳은 이전 상장 발표 즉시 상승 랠리를 이어 가며 52주 최고가를 경신했지만 어떤 종목은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이전 상장은 주식을 불리는 마법일까, 아닐까.
공시 이후 주가 향방
8월 30일 코스닥시장에서 포스코DX의 주가는 장중 5만700원까지 치솟아 52주 최고가를 새로 썼다. 앞서 이 회사는 7일 전인 8월 23일 장 마감 후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위해 상장 폐지 승인을 위한 의안 상정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코스닥시장에서 시가 총액 기준으로 당시 5위(현재 4위)에 자리한 포스코DX의 이전 소식에 주식 시장은 달아올랐다. 공시 이후 8월 30일까지 8거래일 연속 상승세를 기록했다.
당시 코스닥시장 4위인 엘앤에프(현재 5위)도 이전 상장을 공식적으로 알렸다. ‘설’만 무성했던 엘앤에프는 8월 28일 이사회를 열고 유가증권시장 이전 상장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지난 7월부터 제기된 이전 상장 의혹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주식 시장에는 ‘이전 상장은 곧 주가 상승’이란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코넥스에서 코스닥으로, 코스닥에서 유가증권시장으로…. 실상 3부 리그에서 2부 리그로, 2부 리그에서 1부 리그로 옮겨 간다는 인식 때문에 이전 상장이 곧 호재로 여겨진 것이다.
물론 인식 외에도 공매도 영향을 줄이고 기관 자금을 확대할 수 있어 기업으로선 안정적인 투자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현재 공매도는 코스피200, 코스닥150 등에 부분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포스코DX와 엘앤에프 모두 공매도 수량 상위 기업으로, 코스피200 종목에 편입되기 전까지는 공매도 거래가 한시적으로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투자자들은 주가 상승 기대감에 막차에 올라탔다. 이전 상장이 곧 ‘테마주’가 된 셈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통계도 있다. 한국거래소는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코스닥시장에서 유가증권시장으로 이전한 기업 중 12개의 종목(신세계푸드·무학·동양네트웍스·코오롱아이넷·에이블씨앤씨·하나투어·한국토지신탁·동서·카카오·셀트리온·더블유게임즈·포스코케미칼)을 대상으로 주가와 유동성 측면에서 이전 효과를 분석한 결과 ‘공시일-20일에서 공시일+20일’까지 누적 초과 수익률은 8.22%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양의 수익률을 보였다고 발표했다.
김수연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2018년 2월 코스닥 시총 1위였던 셀트리온의 유가증권시장 이전을 사례로 들어 “유가증권시장으로 이전하는 코스닥 시총 대형주들은 이전 상장 때까지 주가가 버틸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셀트리온의 이전 상장은 2017년 8월 공시 후 실제 이전까지 5.5개월이 소요됐는데 공시 후 마지막 코스닥에서의 거래일까지 주가는 150% 상승했다. 코스닥지수도 34% 올랐다.
공시부터 실제 이전까지는 평균 4~5개월 정도 소요된다. 엘앤에프와 포스코DX의 유가증권시장 편입도 올해 연말에서 내년 초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전 상장은 곧 주가 상승’이란 공식대로라면 양 사의 주가 또한 상승이 기대된다.
하지만 실제 지표는 물음표가 그려진다. 이전 상장 공시 후 엘앤에프의 주가는 내리막세다. 8월 30일엔 전날보다 7.40%(1만7500원) 하락한 21만9000원에 마감됐다. 9월 5일 현재 주가는 이보다 내린 21만1000원이다.
포스코DX와 같은 결과를 기대하고 들어간 투자자들에게는 날벼락이다. 투자자 A 씨는 “포스코DX가 이전 상장 공시 후 주가가 30% 가까이 뛰었다”며 “이전 상장 효과에 기대를 걸고 엘앤에프를 매수했는데 손해만 보고 탈출했다”고 말했다. 실제 포스코DX는 이전 상장 효과로 주가가 공시 전 3만7500원에서 8월 30일 4만8300원으로 28.8% 뛰었다. 반면 엘앤에프의 공시 당일 종가는 23만7500원, 2거래일 지난 8월 30일 21만9000원으로 8.4% 하락했다.
오히려 엘앤에프는 이전 상장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7월 말 투자자들의 매수세가 이어졌다. 당시 엘앤에프는 7월 20일 한국거래소의 조회 공시 답변으로 “유가증권시장 이전 상장을 검토 중이지만 구체적으로 확정된 사항은 없다”고 밝혔다. 주가는 7월 26일 장중 31만8000원을 터치하며 52주 최고가(34만9500원)에 가장 근접했다. 투자자 사이에서 이전 상장에 대한 기대감이 선반영된 만큼 공시 이후 주가가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통계에서는 이전 상장 종목의 누적 수익률은 △공시 이전 24개월부터 △공시 이후부터 이전 상장 이전 △이전 상장 이후 24개월까지 무려 세 단계에 걸쳐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추세를 나타냈다. 자본시장연구원이 유가증권시장 이전 상장 기업들의 이 기간 전체 누적 수익률을 조사한 결과 무려 111%에 달했다. 공시 이전 24개월은 69%, 공시 이후부터 이전 상장 이전까지는 6%, 이전 상장 이후 24개월까지는 37%의 누적 수익률이 관찰됐다. 당시 연구를 주관한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전 상장 기업은 이전 상장을 결정하기 이전 큰 폭의 주가 상승을 경험하며 상승 폭은 다소 줄어들지만 이전 상장 이후에도 주가 상승이 지속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발목을 잡는 것은 실적이다. 엘앤에프는 하반기 양극재 재고 증가와 판가 하락에 의한 실적 둔화 우려가 커지며 주가가 힘을 받지 못하는 상태다. 올해 엘앤에프의 주가는 최대 101%까지 상승했지만 상승분을 약 80%포인트 반납한 상태다. 앞서 한국투자증권은 보고서를 통해 엘앤에프의 투자 의견을 ‘매수’로 유지하면서도 목표 주가는 기존 38만원에서 29만원으로 24% 하향 조정했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올해 엘앤에프의 영업이익은 1438억원으로 추정됐다. 이는 전년 대비 46% 감소한 것이다. 연간 주당순이익(EPS)도 지난해 대비 약 64% 줄어들 것으로 추정했다. 김정환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판가 하락에 의한 매출액 증가 폭 둔화는 모든 양극재 업체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양극재 출하량이 빠르게 느는 것이 주가 강세의 전제 조건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용의 꼬리와 뱀의 머리
코스닥 시총 4~5위인 엘앤에프와 포스코DX(현재는 순위 변경), 여기에 코스닥 시총 3위인 셀트리온헬스케어가 연말 셀트리온에 합병되면서 결과적으로 시총 상위 3~5위 종목들이 유가증권시장으로 이전한다. 올해 SK오션플랜트(구 삼강엠앤티)·비에이치·NICE평가정보 등 세 종목이 이미 코스닥에서 유가증권시장으로 이전했는데 6종목이면 종목 수로는 2010년 이후 최대다.
이제 투자자들의 관전 포인트는 이전 상장 이후의 주가다. 코스닥에서 유가증권시장으로 이전 상장한 기업들은 단기적으로는 주가가 반짝 상승했지만 중·장기적으로 주가가 오른 곳은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오히려 주가가 하락한 곳이 더 많았다. 2016년부터 총 11개 코스닥 상장사가 유가증권시장으로 이전 상장했는데 이 중 이전 상장 후 주가가 오른 곳은 카카오·포스코케미칼·PI첨단소재·LX세미콘 등 4개 기업에 불과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시장 이전에 대한 투자자의 기대 심리로 반영된 주가 상승분은 시장 이전이 실현된 시점에는 기대 심리가 사라져 더 이상 호재성 정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주가는 결국 실적 놀음이고 실적이 뒷받침해 주지 않는다면 호재성 정보에 따른 상승은 반납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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