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계 명운 가른 ‘보안 감점’ 규정 세계1위… 호황기 접어든 조선·방산업 HD현대重·한화오션간 패권경쟁 가열 해군 호위함 입찰에서 한화오션 승리 HD현대重, 1.8점 감점 벽 막혀 ‘무릎’ 2025년 11월까지 감점 패널티 적용 7조원대 차기구축함 사업도 먹구름 호위함 입찰 관련 가처분 신청 제기 보안 사고 감점 규정 논쟁 지속될 듯
한국 기업이 지난해 주요 산업의 글로벌 상품·서비스에서 1위를 차지한 분야가 6개다. 일본과 함께 공동 3위를 차지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지난 4일 공개한 2022년 주요 상품·서비스 시장점유율 조사 결과에서 한국 기업은 조사 대상 63개 분야 가운데 스마트폰, D램,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낸드플래시 반도체, 초박형 TV, 조선 등 6개 품목에서 세계 1위에 올랐다. 스마트폰 등 5개 전자 분야 1위는 모두 삼성전자가 차지했는데, 조선은 HD현대중공업이 지난해 새롭게 1위에 올랐다. 긴 불황의 터널을 뚫고 재도약을 준비하는 국내 조선업계로선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물론 3년 치 일감을 확보하고도 일할 노동자가 없어 현장이 속앓이를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조선업 취업박람회가 성황을 이룬다니 다행이다.
◆창과 방패의 대결
조선업계 관련 뉴스는 이뿐만이 아니다.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을 인수해 세계 조선업계 최강자로 꼽히는 HD현대중공업과의 경쟁에 뛰어든 것도 화제다. 한화그룹은 지난 5월 인수 절차를 완료했다. 대우조선해양의 함정 설계·건조 능력과 액화천연가스(LNG) 등 에너지 수송 역량을 활용해 그룹 역량을 배가한다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사실 한화오션은 국내 ‘조선 빅3’ 중 HD현대중공업, 삼호중공업, 미포조선 등 3사를 합쳐 1위인 HD현대와는 차이를 보인다. 조선해운시황 전문기관 클락슨리서치(7월 말 기준)에 따르면 HD현대 계열 3사의 선박 수주잔량은 1913만CGT(선박 건조 난이도를 고려한 환산 t·HD현대중공업 865만3000CGT)를 차지한다. 이어 삼성중공업 1112만3000CGT, 한화오션 837만7000CGT 순이다. 한화오션으로선 다소 버거운 상대일 수 있다. 그럼에도 대우조선해양이 한화오션이라는 이름으로 한화에 편입되고 나서 경쟁은 격화할 조짐이다.
내년 입찰 예정인 7조8000억원 규모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 수주를 놓고는 사활을 건 진검 승부가 예상된다. KDDX는 2030년까지 6000t급 ‘미니 이지스함’ 6척을 건조하는 사업이다. 앞서 2020년 8월 HD현대중공업이 함정 기본설계사업자로 선정돼 다소 유리하긴 하나 안심하긴 이르다. 지난 7월 전초전이랄 수 있는 해군 차기 호위함(FFX) 울산급 배치(Batch)-Ⅲ 5∼6번함 건조 사업 입찰에선 한화오션에 밀려 우선협상대상에서 탈락했다. 울산급 배치-Ⅲ 사업은 척당 약 4000억원을 투입, 기존 울산급 호위함을 교체하는데 1번함은 HD현대중공업이, 2·3·4번함은 SK오션플랜트가 수주한 바 있다. 업계에선 주인 없이 어려움을 겪던 한화오션이 한화그룹으로 인수된 직후 대형 군수 계약을 따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반면 HD현대중공업은 연구개발과 선도 1번함을 만들고도 2∼6번함까지 5척의 후속함을 하나도 건조하지 못하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자존심이 상할 법하다.
◆첫 ‘보안 감점’ 적용… 과도한 페널티 논란
한화오션이 HD현대중공업과 치열한 경쟁 끝에 우선협상권을 따낸 과정도 눈길을 끈다. 한화오션은 이번 차기 호위함 입찰에서 최종 91.8855점을 받으며 91.7433점을 받은 HD현대중공업을 눌렀다. 0.1422점의 근소한 차이다. HD현대중공업은 방위사업청의 제안서 평가에서 ‘보안사고 감점’ 규정으로 인해 1.8점의 페널티를 받은 것이 결정적 패인이었다. 법원의 유죄 판결로 입찰에서 벌점이 적용된 첫 사례다. 이에 HD현대중공업은 지난 8월 입찰과 관련해 서울중앙지법에 우선협상대상자 지위 확인 등을 위한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앞서 7월 말 방사청에 이의제기를 신청했으나 “문제가 없다”며 기각된 데 따른 후속 조처다. 쉽게 물러설 뜻이 없어 보인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평가의 주요 요소인 기술 점수에서 우리가 앞섰으나 보안사고 페널티로 탈락했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관련 규정이 여러 차례 개정되는 과정에서 단서 조항까지 부과돼 추정하기 어려운 과도한 제재를 받고 있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한화오션 측은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에 따른 유죄 판결이 나왔고, 그에 근거한 페널티 부과는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2016년 울산급 호위함 배치-Ⅲ 기본설계 입찰에서 당시 대우조선해양도 보안사고 감점 1.5점을 받아 기술평가에서 HD현대중공업에 앞섰음에도, HD현대중공업이 기본설계 및 선도함 사업을 수주했다”며 “같은 논리로 보안사고 감점이 적용된 것을 이제 와서 자신들이 불리하다며 문제 삼는 것은 내로남불”이라고 반박했다.
◆‘보안 감점’은 어떻게 적용됐나
그렇다면 듣기에도 생소한 보안사고 감점은 어떻게 적용된 걸까. 전말은 이렇다. HD현대중공업은 2014년 1월 해군본부에서 당시 대우조선해양이 작성한 KDDX 개념설계도와 차기 잠수함 장보고-Ⅲ 관련 설계자료 등 군사기밀 12건을 몰래 촬영했다. 그러고는 이 자료를 회사 내 비인가 서버에 보관해 오다 2018년 4월 국군기무사령부의 방산업체 보안감사에서 적발됐다. 이 사건은 다수의 HD현대중공업 직원이 동원된 군사기밀 유출사건이었다. 그것도 계룡대 해군본부 내에서 이뤄져 세간에 충격을 줬다. 방사청은 HD현대중공업의 보안사고 적발 이후 지금까지 네 차례 보안사고 감점 관련 규정을 변경했다. 1차 개정 때인 2019년 9월에는 국민권익위원회와 민관 규제개선추진단이 ‘감점 기준이 지나치게 큰 비중을 차지해 기술 중심의 제안서 평가 원칙에 어긋난다’며 제도 개선을 권고해 입찰 관련 장벽이 낮춰졌다. 당시 대우조선해양 등이 포함된 7개 방산업체가 보안 감점 완화를 주장했다. 하지만 이후 관련 지침이 3차례나 개정(2∼4차)되며 장벽은 다시 높아졌다. 이 가운데 지난해 12월 4차 개정이 이번 수주전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2021년 12월31일 이전에 기소된 경우 최초 형 확정일 기준 3년 동안 감점을 적용한다는 단서 조항이 추가되면서다.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이 기소된 시점은 2020년 9월. 그리고 직원 9명에게 법원 유죄 판결이 내려진 것은 2022년 11월이다. 2년 이상 3년 미만 징역형에 1.3점 그리고 복수 인원 사건 0.5점이 더해져 보안사고 감점 1.8점 적용이 개시됐다. 페널티는 2025년 11월까지 3년간 적용된다. HD현대중공업은 소수점 차이로 결과가 갈리는 함정 입찰 경쟁에서 1.8점의 감점이 향후 3년간 지속되면 사실상 특수선사업부의 문을 닫아야 하는 처지라는 입장이다. 엄살이 섞이긴 했으나 한화오션이 후속 수주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향후 전망은
HD현대중공업은 보안 감점 제도의 페널티 적용 기간 축소를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 연말까지 적용돼야 하는 감점 기준이 4차 규정 개정으로 인해 다시 3년 이상 연장되는 것에 과도한 불이익을 받는다는 불만이 크다. 2020년 8월 KDDX 기본설계사업자로 선정돼 KDDX 1번 선도함 건조가 당연시되는데도 감점 제도로 인해 자칫 이런 구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의 발로다. 일부 전문가들도 기술력과 실적보다는 보안사고 감점이 승부를 결정짓는 현재의 제안서 평가 방식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K방산 생태계와 국익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도 표시한다. 반론도 만만찮다. 범죄행위를 저지른 사람이 제재를 받고 있는 와중에 제재의 근거 규정을 완화하자는 주장은 그 자체로 모순이라거나, 방위산업 특성상 보안을 무시하고 경제성만을 앞세우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방산비리 근절 차원에서라도 기밀유출 등 보안사고 유발에 따른 책임을 엄중히 묻고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러한 공정과 상식의 원칙이 자리 잡을 때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도 했다. 양사는 KDDX 수주전 외에도 향후 캐나다와 폴란드·네덜란드 등 북미와 유럽 해군을 상대로도 격돌한다. 특히 폴란드 잠수함 사업인 ‘오르카 프로젝트’는 이미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2파전으로 압축됐다는 평가다. 보안사고 감점을 둘러싼 HD현대중공업의 가처분 신청. 국내 조선업 패권을 놓지 않으려는 주도권 싸움이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간 전쟁은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