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美 경고에도 ‘군사 밀착’ 가속… 동북아 정세 '요동'

김예진 2023. 9. 6.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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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푸틴과 정상회담 예정”
우크라전 무기 등 추가 지원
北, 핵잠 등 첨단 기술 원해
美 “北·러 간 무기협상 활발”
정치·외교 등 의제 테이블 오를 듯
習주석, 러 동방경제포럼 참석 땐
北·中·러 3국 정상회의 열릴 수도
美 행정부, NYT 보도 사실상 인정
北·러 동향 면밀 감시·견제 메시지
태평양함대사령부에 핵잠 등 정박
14조원 들인 우주기지도 시찰 전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르면 다음 주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북·러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북한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무기 거래를 본격화하고,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및 핵추진잠수함 관련 첨단 기술 협력이나 북·러 연합훈련 논의 등도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한·미·일 대 북·중·러 간 대립 구도가 심화하고 동북아 정세가 요동칠 전망이다.

뉴욕타임스(NYT)는 4일(현지시간) 미국 정부 당국자 등의 말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이달 중 러시아를 찾아 푸틴 대통령을 만나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필요한 무기를 러시아에 추가 공급하는 방안과 기타 군사 협력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10일부터 13일까지 열리는 동방경제포럼 참석차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2019년 4월 러시아 극동연방대학교에 만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악수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에이드리언 왓슨 대변인은 이날 세계일보의 관련 질의에 “우리가 공개적으로 경고했듯이 러시아와 북한 간 무기 협상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면서 “우리는 김정은이 러시아에서 정상급(leader-level) 외교적 참여를 포함해 이러한 논의가 계속되기를 기대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러시아에 포탄과 대전차 미사일을 지원하는 것을 원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미국은 지난해 연말부터 최근까지 북한이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 등을 통해 러시아에 무기를 공급하고 있다고 밝혀왔고, 한국 국방부도 미국에 포탄을 제공하는 계약 등을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우회 지원’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만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남북 대리전 논란이 일 전망이다.

북한은 러시아에 무기를 지원하는 대신 군사정찰위성과 핵추진잠수함의 첨단 기술을 제공받기를 바란다고 매체는 전했다. 김 위원장이 식량 지원을 원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러시아는 정상회담 개최 여부에 대한 질문에 답을 피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레믈궁 대변인은 5일 “우리는 (회담 가능성에 대해) 할 말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앞서 북한 정부 대표단 20명이 지난달 말 기차로 평양을 출발해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한 뒤 비행기로 갈아타고 모스크바를 향했는데, 이는 김 위원장이 방러를 진지하게 고려 중임을 시사한다고 NYT는 전했다.

앞서 김 위원장은 2019년 4월 열차편으로 블라디보스토크를 찾아 푸틴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한 바 있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은 이날 러시아 남부 휴양지 소치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과 연합훈련을 개최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고 타스통신 등이 보도했다. 쇼이구 장관은 러·북 연합훈련 가능성에 관한 질문에 “왜 안 되겠는가. 우리는 이웃”이라며 당연히 논의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이웃을 선택할 수 없다. 이웃과 평화롭고 조화롭게 사는 것이 좋다’는 러시아 속담을 인용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지난 7월 31일 새 기록영화 '만대에 떨쳐가리 위대한 전승의 영광을'에서 지난 27일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열린 쇼이구 국방장관과 담화가 끝난 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쇼이구 장관에게 기념품을 전달하는 모습을 방영했다. 조선중앙TV·연합뉴스
앞서 쇼이구 장관은 북한이 ‘전승절’이라고 부르는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일(7월27일) 70주년을 맞아 7월25∼27일 평양을 방문, 김 위원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북·중·러 연합훈련이 제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훈련·무기거래 땐 北 국방력 강화… 한반도 정세 ‘요동’
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 계획을 보도한 가운데 실제 성사될 경우 한반도 안보에 끼칠 영향에 이목이 쏠린다. 북·러 간에 연합군사훈련 실시와 무기 거래 등 협력이 심화하는 경우 북한의 국방력 증가는 물론 제재를 무력화할 북·중·러 경제권 형성이 우려된다.

하반기에 북한이 공세적 외교전에 나설 것은 6월부터 예고됐다. 북한은 6월 16∼18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8차 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군사기술적으로, 정치외교적으로 예민하고 기민하게 대응해야 할 절박성이 언급됐다”며 “미국의 강도적인 패권 전략에 반기를 든 국가들과의 연대를 강화” 필요성을 강조하며 반미 연대를 통한 적극적 외교전 개시를 암시했다.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2019년 4월 블라디보스토크 회담 이후 두 번째다. 통일부 당국자는 5일 “당시 회담은 전통적 북·러관계 복원 측면이 있었다”며 “최근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한이 노골적으로 러시아를 지지하고 무기 거래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정상회담이 이뤄지면) 한반도 긴장 고조 속에 장기 외유성 모스크바행보다는 블라디보스토크 방문 가능성이 높다”며 “정치, 군사, 외교, 경제 협력이 의제에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군사분야 협력이다. 두 나라 연합군사훈련 실시를 비롯해 북한이 러시아에 포탄을 지원할 가능성 등이 거론된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북한이 8차 당대회에서 밝힌 ‘국방공업 발전 및 무기체계 개발 5개년 계획’에 포함되는 군사정찰위성 등 고난도 과업에 대한 러시아의 기술 이전이다.

북·러 회담은 시작일 뿐 북·중·러 3국의 활발한 외교전이 연쇄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양 교수는 “김 위원장이 사회주의 연대 활동을 위한 정상외교에 시동을 걸고 있다”며 “정권 수립 75주년(9·9절) 계기 중국과 러시아 고위급 사절단 방북으로 분위기를 조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9, 10월에 북·중·러 3국은 각자 국내 정치적으로 중요한 이벤트가 예정돼 있다. 9월9일 북한 정권 수립 75주년, 9월 10∼13일 러시아 동방경제포럼, 9월23일∼10월8일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 등이다. 또 10월10일은 북한 노동당 창건 78주년, 10월12일은 북·러 수교 75주년이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북·중 양자 정상회담이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동방경제포럼에 참석, 북·중·러 정상이 한자리에 모여 3국 정상회의가 열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시 주석은 2021년 동방경제포럼에 화상으로 참석했고, 지난해에는 리잔수(栗戰書) 당시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을 파견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시 주석의 동방경제포럼 참석 여부와 관련해 “현재 제공할 수 있는 정보가 없다”고 했다.

미 행정부는 김 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할 것이라는 NYT 보도가 맞다고 사실상 인정했다. 미국이 북·러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 경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러시아가 북한, 이란 등의 무기에 의존할 정도로 궁지에 몰려 있음을 알리기 위한 의도도 읽힌다.

미 국무부는 세계일보 질의에 대변인 명의의 답변에서 “미국의 제재와 수출 통제의 성공으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북한과 같은 불량 정권에 의지해 무기를 확보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백악관 NSC도 세계일보에 “북한이 러시아와의 무기 협상을 중단하길 촉구한다”고 밝혔다.

다만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에 관한 언론 보도가 향후 행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006∼2008년 주북 영국 대사를 지낸 존 에버라드는 BBC에 “경호를 중시하는 김 위원장 입장에선 일정이 알려질 경우 모든 것을 취소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 대북 소식통도 “김 위원장이 정상회담을 위해 북한 밖으로 나온다는 것의 무게감을 고려하면, 여러 나라가 모이는 동방경제포럼을 계기로 활용하는 것은 주목도가 떨어진다”며 “동방경제포럼 참석보다는 다른 계기를 모색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 동방경제포럼·해군기지 찾을 듯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9월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만남 장소로는 오는 10∼13일 동방경제포럼(EEF)이 열리는 블라디보스토크가 유력하게 꼽힌다. 열차로 이동이 가능한 데다 러시아 우주기지와 해군기지 시찰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이다.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김 위원장이 아마도 방탄 성능을 갖춘 열차를 타고 평양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해 푸틴 대통령을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극동지역에 있는 블라디보스토크는 북한·중국·러시아 3개국이 국경을 맞댄 곳이다.

NYT는 북한 정부 대표단 20명이 지난달 블라디보스토크 방문을 마치고 모스크바로 이동한 점 등에 비춰 회담이 모스크바에서 열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지만, 보안과 안전을 이유로 비행기보다 열차편을 선호하는 김 위원장이 이동하기에는 블라디보스토크가 용이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무엇보다 김 위원장은 2019년 4월에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푸틴 대통령과 회담한 적이 있다.
평양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기차로 1180㎞ 거리이다. 시속 50∼60㎞ 정도인 북한의 열악한 철도 사정과 국경을 넘으면 러시아 표준에 맞는 열차 바퀴로 교체해야 하는 점 등을 고려하면 한 번 가는 데만 20시간 이상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 위원장은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에도 참석할 전망이다. 동방경제포럼은 푸틴 대통령이 극동 개발을 목표로 2012년부터 야심차게 추진 중인 ‘신동방정책’의 플랫폼 성격을 띤다. 2015년 처음 열려 한때 한국, 중국, 일본 정상이 나란히 참석하기도 했으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열린 지난해 7차 행사 때에는 중국, 미얀마, 인도 등 우방국 위주로 대표단을 보냈다.

김 위원장은 블라디보스토크의 러시아 태평양함대사령부 소속 함정들이 정박한 33번 부두를 찾아 전략핵잠수함 등 주요 함정들을 둘러볼 것으로 보인다. 북·중·러 해군 연합훈련을 염두에 둔 시찰 목적도 있어 보인다.

이밖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1500㎞쯤 떨어진 곳에 있는 ‘보스토치니 코스모드롬’(동방 우주기지)을 방문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우중·김예진·이지안 기자, 워싱턴=박영준 특파원, 유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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