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G 시장실패]② “서울도 안 터지고, 자주 끊겨”… 통신 3사 투자 안 해도 올해 영업이익 5조원 육박

안상희 기자 2023. 9. 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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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 3사, 설비투자 2020년부터 제자리
韓 통신사 매출액 대비 설비투자 비율 OECD 25위
”28㎓ 주파수 할당 취소, 미래 위한 인프라 투자에 소극적”
”LTE 시절엔 공격적 투자… 과점 굳어져 3사 투자 안하고 안주”

‘LTE(4세대 이동통신)보다 20배 빠르다’고 했던 5G(5세대 이동통신)가 사실상 반쪽짜리 서비스로 전락했다. 연간 4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내고 있는 통신 3사가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28㎓ 주파수를 반납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당초 통신 3사가 약속한 속도에 한참 못 미치는 서비스를 이용하면서도 LTE보다 비싼 요금을 내야 하는 현실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정부는 통신 3사가 장악한 통신 산업이 2002년 이후 과점 구조로 굳어져 시장 기능이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가격에 의해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못하는 ‘시장실패’ 상태에 있는 통신 산업을 진단해 본다.[편집자주]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있는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장모씨는 월 9만9000원짜리 SK텔레콤 5G 요금제를 쓰고 있지만, 사무실에서 5G가 터지지 않아 LTE를 사용하고 있다./독자 제공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건물 지하 1층 사무실로 출근하는 장모(40)씨. 그는 속도 제한 없이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제공하는 월 9만9000원짜리 SK텔레콤 ‘5GX 프라임플러스’ 요금제의 고객이다. 장씨는 사무실에서 5G(5세대 이동통신)가 안 터져 지난 7월 SK텔레콤 고객센터에 연락했고, 이후 직원이 현장점검에 나섰다. 하지만 그가 받은 답변은 “이 지역은 원래 5G가 안 터지고 LTE(4세대 이동통신)만 된다”는 것이었다. 장씨는 “5G 네트워크가 잡히지도 않는데 왜 더 비싼 5G 요금을 내야만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전남 진도군과 해남군을 오가며 유통업을 하는 김인성(39)씨는 올해 초 갤럭시S23으로 기기변경을 하면서 LTE에서 5G로 갈아탔다. 김씨는 속도 제한 없이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제공하는 월 13만원짜리 LG유플러스 ‘5G 시그니처’ 요금제를 사용한다. 그는 LTE 시절보다 한 달에 2만원을 더 주고 있지만, 5G의 데이터가 더 잘 끊기는 느낌이라고 했다. 김씨는 LG유플러스 대리점에 항의했고 “5G 기지국 설치가 부족해 모바일 네트워크를 ‘LTE 우선모드’로 변경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라는 답변을 받았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가 2019년 4월 5G를 처음 상용화하며 자랑했던 ‘LTE보다 20배 빠른 속도’는 이제 공염불이 됐다. 문제는 국내 일부 지역에서는 5G가 잘 터지지도 않는다는 현실이다. 때문에 5G를 쓰는 소비자들의 불만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지난해 발표한 ‘국내 이동통신서비스 이용행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10월 전국 204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5G 서비스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도는 23%에 불과했다. 이는 직전해인 2020년 12월 조사결과(30%)보다 낮은 수치다. 5G 가입자가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LTE와 비슷한 속도(55%)’였다. LTE 이용자가 5G를 이용하지 않으려는 가장 큰 이유는 ‘비싼 요금(58%)’으로 나타났다.

LTE보다 요금이 비싼 5G를 사용하면 서비스 품질도 좋아야 하지만 통신 3사의 설비투자 노력 부족으로 서비스 품질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5G를 원하지 않는 소비자가 신형 5G 휴대폰을 구입하면 LTE 요금제에 가입하지 못한다. 정부는 지난 7월 이런 관행에 제동을 걸고, 단말기 종류와 관계 없이 LTE와 5G 중 원하는 요금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아직 시행되지 않고 있고, 고물가 시대에 소비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최신폰을 사면 5G 가입을 강요받고 있다. 통신 3사는 늘어나는 5G 가입자 덕에 실적 잔치를 벌이며 콧노래를 부르는 형국이다.

신철원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정책팀장은 “당초 통신 3사가 약속한 LTE보다 빠른 속도를 제공하지도 않으면서 비싼 요금을 받는 것은 사기 행위”라며 “약속을 지키지 않은 대가를 왜 소비자가 부담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LTE와 5G의 차이가 실감 나지 않는 만큼, 통신사들은 소비자가 요금제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래픽=손민균

◇ 통신 3사, 5G 가입자 늘수록 수익성 개선… 韓, 통신사 매출액 대비 설비투자 비율 OECD ‘25위’

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통신 3사는 지난해 4조3835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5G가 상용화된 2019년과 비교하면 영업이익이 48% 이상 늘었다. 통신 3사의 합산 영업이익은 2019년만 하더라도 2조9455억원에 불과했는데, 5G 가입자 증가에 힘입어 2020년 3조원대를 돌파한 후 2021년과 지난해에는 4조원을 넘어섰다.

통상 5G 가입자는 LTE 대비 가입자당평균매출(ARPU)이 1.5배 이상 높다고 알려져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전국 5G 가입자는 올해 6월 기준으로 3076만명에 달한다. 지난해 6월 말과 비교해 1년 만에 25.1%가 증가했다. 5G 가입자 수 증가는 2019년 467만명에서 2020년 1185만명으로 두 배 넘게 커졌고, 2021년부터 2년 연속 800만명 안팎을 기록하고 있다.

통신 3사는 5G 가입자 증가로 수익성이 나날이 개선되고 있지만 설비투자에는 소극적인 모습이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통신 3사의 설비투자는 5G 상용화가 이뤄진 2019년 9조5965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 연속 8조2000억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세계이동통신협회(GSMA)에 따르면 한국 통신사의 매출액 대비 설비투자 비율은 지난해 13.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개 회원국 중 25위를 차지했다. OECD 회원국 평균 비율은 22.2%다.

그래픽=손민균

◇ 28㎓ 포기해 올해 시설투자 더 줄어들 것… ”미래 위한 인프라 투자에 소극적”

올해는 통신 3사의 시설투자가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5G 주파수 대역은 28㎓와 3.5㎓가 있는데, 통신 3사는 일제히 28㎓ 대역을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포기했기 때문이다. 28㎓는 LTE보다 20배 빠른속도를 구현할 5G의 핵심 주파수다. 하지만, 통신 3사는 28㎓ 기지국 투자에 소홀했다. 이들의 28㎓ 투자 실적을 살펴보면 SK텔레콤 5059대, KT 1586대, LG유플러스 1868대에 그쳤다. 정부와 약속한 물량의 10.7%, 10.6%, 12.5%에 불과한 달성률이다. 결국 정부는 지난해 말 KT와 LG유플러스에 이어 올해 5월 SK텔레콤으로부터 해당 주파수를 돌려받았다. 6일 업계에 따르면 전국망 기준으로 LTE는 약 15만개, 5G는 약 12만개 기지국이 구축되어 있어 아직까지 5G가 LTE 수준에 못 미치고 있다.

정부가 지난 6월 ‘통신 시장 경쟁촉진 방안’을 내놓으면서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을 폐지하는 대신 개정으로 가닥을 잡아 통신 3사의 마케팅비 지출 부담도 줄게 됐다. 덕분에 통신 3사는 올해도 4조원대의 영업이익이 확실시되고 있다. 이들은 이미 올 상반기에 2조5687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홍진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네트워크정책실장은 “통신 3사의 5G 28㎓ 주파수 할당 취소는 미래를 위한 인프라 투자에 소극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SK텔레콤 '6G 백서' 표지./SKT

◇ “노력했지만 고객 기대치가 높았다”… LTE 시절엔 통신 3사 공격적 투자

5G가 도입될 당시 기대와 달리 현재까지 예상보다 자율주행, 도심항공교통(UAM), 확장현실(XR), 홀로그램, 디지털 트윈과 같은 (5G 서비스가) 활성화되지 못했다. 5G 기술만으로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은 아니었는지, 서비스를 구성하는 제반 환경에 대한 준비가 함께 될 수 있는지 조금 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살펴보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SK텔레콤은 지난달 10일 공개한 ‘6G(6세대 이동통신) 백서’에서 5G 시장 활성화의 실패 원인으로 시장을 형성할 핵 ‘킬러 서비스’가 성장할 제반 환경이 마련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SK텔레콤은 “5G는 주파수 특성상 전국망 구축을 위해 LTE 대비 더 많은 기지국 장비 구축이 필요하다”면서 “구축 기간 단축 및 커버리지 확보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고객들은 단기간에 LTE와 동일한 수준의 커버리지를 원했다”라고 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결국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인데, 콘텐츠와 솔루션이 인프라와 함께 발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통신사, 단말기 제조사가 ‘원팀’으로 힘을 모은 결과 대한민국이 오늘날 세계적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으로 거듭났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LTE 상용화 당시 통신 3사가 앞다퉈 공격적인 투자를 했지만, 3사가 나눠먹는 과점 체계 구조가 굳어지다 보니 투자를 안하고 안주하고 있다”면서 “5G를 전혀 체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5G 요금제 가입을 유도하는 것은 불합리한 영업행위”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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