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부터 주민까지 모두 '이야기'가 되는 마을

속초=김지영 기자 2023. 9. 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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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관광' 속초 상도문 돌담마을
500년 역사 품은 한옥촌, 고즈넉함 물씬
돌담떡 만들고 곳곳 벽화···옛 구멍가게도
대문없는 담장 따라 '정겨움'이 넘실넘실
지역관광 프로그램 인기···수익은 주민에게
낮은 돌담이 마을 내내 이어지는 강원도 속초시 상도문 돌담마을 전경.
이달 1일 강원도 속초시 상도문 돌담마을에서 민박집 ‘설악한옥’을 운영하는 김택규 씨가 자작시를 낭송하고 있다.
[서울경제]

“우리 부부가 신혼 한옥집을 지었습니다. 옆집 돌담 모퉁이를 돌아오시는 어머니의 손에 드신 작은 나무 묘목···.”

이달 1일 강원도 속초시 상도문 돌담마을에서 민박집 ‘설악한옥’을 운영하는 김택규 씨가 자작시를 읊었다. 김 씨는 40년 전 처음 한옥을 지었다. 집이 완성되고 김 씨의 어머니가 살림에 보태라며 준 사과나무 묘목은 현재 지붕보다 더 높이 자랐다. 울창했던 나무 밑에 달아둔 그네는 시간이 흘러 가지가 부러지면서 나무 의자로 바뀌었다. 김 씨는 민박집의 사연을 담은 시를 숙박하러 온 손님들에게 낭송해준다고 했다. 투숙객은 설악산을 뒤로한 채 한옥 앞마당에 놓인 의자에 앉아 할머니 집에 온 듯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인기 관광지보다 국내 숨은 지역에서 생활하듯 머무르는 ‘생활관광’이 인기를 끌고 있다. 현지인과 어울려 그 지역의 문화·역사·먹거리 등을 체험하는 여행은 해당 지역의 경제적 이익으로 이어진다. 한국관광공사가 전국 13개 지역을 ‘살아보기 생활관광’으로 지정하고 관광객을 모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중 속초 상도문 돌담마을은 2022년 생활관광으로 선정돼 2년째 프로그램 ‘속초오실’을 운영하고 있다. 속초는 관광객들에게 산·바다 등 자연이 먼저 떠오르는 관광지다. 인기 관광지로 속초관광수산시장·속초해변·설악케이블카 등이 상위에 집계될 정도다. 속초시는 자연을 넘어 문화를 내세워 관광객을 더 끌어오겠다는 계획을 바탕으로 생활관광에 힘을 싣고 있다. 속초시의 한 관계자는 “연간 2000만 명의 관광객이 속초를 방문하는데 설악산과 바다만으로는 관광객을 확대하는 게 제한적”이라며 “아바이마을에 전시회를 열고 상도문 돌담마을에 2박 3일 머무는 생활관광을 운영하는 것도 문화 관광의 일환으로 관광의 저변을 확대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상도문 돌담마을은 마을의 풍경부터 주민을 비롯해 고양이까지 모두 문화 콘텐츠로 활용하고 있다. 돌담마을은 역사만 500년에 이른다. 55년간 매일 일기를 쓴 조선 후기 유학자 오윤환의 생가도 위치해 있다. 마을에 묵는 관광객에게 일기장과 연필을 주는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대문 없이 낮은 돌담 위에는 마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참새·고양이·무당벌레 등을 그린 돌들이 놓여 있다. 마을 곳곳에 특정 돌 그림을 찾아내는 미션 투어도 관광객이 참여할 수 있다.

강원도 속초시 상도문 돌담마을에서 옛날 구멍가게를 사진관으로 리모델링해 운영 중인 '육모정 상점'

무엇보다도 관광객들은 마을에 머무르면서 지역에 특화된 다양한 체험 활동을 할 수 있다. 동네 방앗간에서 마을의 상징인 돌담을 본뜬 돌담떡을 만들어보는 게 대표적이다. 속초오실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해녀의 음식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최소 인원을 모을 수 없어 돌담떡을 만드는 것으로 바꿨다”며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생활관광 체험 프로그램을 많이 이용하는데 특히 자녀들이 돌담떡 만들기를 좋아한다”고 귀띔했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오래된 구멍가게를 아들이 흑백 셀프 사진관으로 리모델링해 운영하는 ‘육모정상점’은 이미 MZ세대를 중심으로 입소문이 났다. 육모정상점 때문에 일부러 돌담마을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다수 있을 정도다. 관광객들은 사진관에서 직접 버튼을 누르며 자유롭게 촬영한 뒤 그중 두어 장을 골라 흑백으로 인화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속초오실은 △짚풀로 계란 꾸러미를 만드는 활동 △막걸리 만들기 체험 △속초를 대표하는 수제 맥주인 몽트비어 공장 견학 등을 제공한다. 2박 3일간 숙박·체험 등을 모두 합해 비용은 16만 원(2인 기준)이다. 관광객이 지역에서 숙박하고 지역민이 마련한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쓴 돈은 지역 주민에게 돌아간다.

원도 속초시 상도문 돌담마을에 500년 전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돌담길.

문화체육관광부와 속초시는 이 같은 생활관광을 통해 궁극적으로 속초 지역의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속초시 인구는 8만 2474명으로 2013년 8만 3109명 이후 급감했다가 최근 2~3년 새 반등하는 추세다. 그러나 속초시는 여전히 인구소멸위험지역에 해당된다. 정주 인구가 줄어든 데 따른 문제를 이틀 이상 체류하는 관광으로 채우려는 게 생활관광의 취지다. 생활관광은 지역 주도로 관련 사업을 추진하고 그에 따른 경제적 수혜를 지역사회가 가져가도록 구현된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속초시의 평균 숙박 일수는 올 7월 기준 1.43일로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 평균보다 0.33일 적다. 속초시의 숙박 방문자는 전체 방문자의 20.5%로 이 중 70%가 1박에 그친다. 더 많은 방문객이 속초에서 오래 숙박하도록 하는 게 속초시로서는 과제인 셈이다. 한국보다 먼저 저출산·고령화로 지역 소멸 위기를 겪은 일본이 일찍이 관광을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성공한 점도 정부와 업계가 주목하는 지점이다. 일본은 올해 6월 발표한 관광 백서에서도 지역 주민 한 명 한 명이 ‘이야기꾼’이 돼 그 지역만의 스토리를 발굴하는 것을 과제로 꼽았다.

속초오실 측은 “처음에는 생활관광에 참여하는 민박집이 5곳이었으나 올해는 여덟 군데로 늘어났다”며 “최근 설악산에 홍보 영상도 틀기 시작해 돌담마을의 생활관광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속초=김지영 기자 ji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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