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오션을 부실 계열사 지원에 활용했던 하림, ‘14조 현금’ HMM 새주인으로 괜찮나
하림그룹이 국내 최대 해운사인 HMM 매각 숏리스트(적격인수후보)에 선정된 가운데, HMM이 과거 하림에 인수된 후 부실 계열사 자금 지원에 활용됐던 벌크선사 팬오션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하림그룹의 지배구조와 평판 등을 고려했을 때, 현금성 자산만 14조원에 달하는 HMM이 하림그룹 캐시카우로 이용될 가능성을 산업은행이 사전에 면밀히 들여다봐야 한다고 금융권 일각에서는 지적하고 있다.
6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 등 HMM 매각 측은 지난 4일 하림·JKL파트너스 컨소시엄과 동원, LX를 적격인수후보로 선정해 통보했다. 하림과 JKL파트너스는 과거 팬오션을 함께 인수하며 우군이 된 바 있다. 이후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아들이 JKL파트너스에 입사하며 더욱 끈끈한 관계로 발전했다.
겉만 보면 하림은 팬오션을 인수한 후 대기업 집단에 올라서는 등 성공 사례로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뜯어보면 팬오션은 하림에 이용된 전례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하림USA다.
하림그룹은 하림USA를 통해 2011년 미국 대형 닭고기 전문업체 앨런패밀리푸드를 인수하는 등 미국 사업을 공격적으로 전개했다. 하지만 하림USA는 무더기 적자를 이어갔고 결국 그룹의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이때 하림이 선택한 것이 자금 여력이 가장 좋은 팬오션 투입이다. 하림USA는 2021년 1월 팬오션을 상대로 308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하림USA는 2021년에만 당기순손실 328억원을 기록하며 자본총계가 마이너스(-) 35억원으로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는데, 이때 사업상 연관성이 전혀 없는 팬오션이 구세주로 등장한 것이다.
이때 팬오션이 떠안은 하림USA의 지분 22.36%의 가치는 올해 상반기 말 기준 193억원(지분 가치)으로 급감했다. 현재 지분가치를 출자금과 비교하면 115억원가량의 평가손실을 기록 중이다. 팬오션이 하림USA에 자금을 투자한 사실이 알려진 2021년 5월, 팬오션 주가는 급락한 바 있다. 당시 팬오션 시가총액은 1개월 만에 7500억원가량 증발했다. 하림지주는 팬오션 주식 1080만주를 하림USA에 대한 지급 보증의 담보로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차입금 1500만 달러에 대한 담보다.
하림그룹은 팬오션 주식을 담보로 금융권에서 추가 대출을 받는 등 팬오션을 ‘돈줄’로 사용하고 있다. 하림지주가 팬오션 주식을 활용해 체결한 주식담보대출 계약은 모두 10건에 달한다. 금융권 등에 담보로 제공한 주식 수도 2억3554만1486주 규모다. 전체 보유 주식의 80.52%에 해당하는 양이다. 하림지주가 팬오션 대주주가 된 이후 담보 비중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돈이 필요할 때마다 찾는 곳간과 같은 상황이다.
하림그룹의 지주사인 하림지주는 지난 6월 말 농협과 우리은행에서 팬오션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일으켰다. 농협에 주식 2200만주를 맡기고 500억원을 대출받았다. 우리은행에는 주식 1273만8854주를 담보로 제공하고 돈을 빌렸다. 지난해 7월에는 팬오션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1120억원 규모의 교환사채(EB)를 발행해 부동산 개발 등 신사업에 사용했다.
하림그룹의 돈줄로 전락한 계열사는 팬오션뿐만이 아니다. 과거 계열사 NS홈쇼핑의 자금 수천억원도 하림산업, 엔바이콘, 글라이드 등 신사업을 하는 자회사에 투입됐다. 양재 도시첨단물류단지 개발에 나선 하림산업에만 6500억원 이상 투자했고, 식품회사 엔바이콘과 글라이드에도 각각 260억원, 160억원을 수혈했다. 2015년까지 무차입 기조를 유지하며 높은 재무 건전성을 유지하던 NS홈쇼핑은 하림산업 등에 대한 지속적인 출자로 2016년 이후부터 실적과 재무구조가 악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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