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흉내 바둑
이홍렬 바둑전문기자 2023. 9. 6. 05:05
16강전 제1국
<흑 6집반 공제·각 3시간>
白 신진서 九단 / 黑 리쉬안하오 九단 흑>
白 신진서 九단 / 黑 리쉬안하오 九단 흑>
<제1보>(1~18)=현재 세계 바둑 무대에서 가장 유명한 두 명을 꼽으라고 한다면 이 두 기사가 아닐까. 신진서(23)는 자타가 공인하는 지구촌 1인자이고, 리쉬안하오(李軒豪·28)는 치팅(부정행위) 혐의에 시달리면서도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킨 인내의 승부사다. 둘은 AI에 특화된 기사로도 쌍벽을 이루고 있다. 한국 ‘신공지능’과 중국 ‘헌공지능’이 8강행 길목에서 마주 앉았다.
홀짝을 맞춘 신진서가 백을 선택하더니 6까지 동형(同型) 포진을 편다. 소위 ‘흉내 바둑’이다. 곧바로 다른 길을 택한 것을 보면 사전에 의도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흑 11을 외면하고 12로 밀어 올린 수가 두터운 호점. 물론 12로 참고 1도처럼 처리하는 것도 훌륭한 한 판이다. 13으로 근거를 빼앗았을 때 14는 탄력을 구한 정석적 행마.
17까지 교환한 뒤 18이 시원시원하다. ‘가’로 나와 끊을 테면 끊어보라는 것. ‘교과서에 나오는 행마법이지만 넘치는 자신감이 엿보인다. 18로는 참고 2도처럼 처리할 수도 있었다. 14까지 예상되며 호각(互角)의 절충이다. 바둑은 초반 기선을 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흑은 과연 ‘가’로 나가 싸웠을까, 맛만 남긴 채 딴 곳을 향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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