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꿀벌과 춤을

관리자 2023. 9. 6.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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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경북 안동 본가에서는 큰방 섬돌 옆에서 벌을 키웠다.

우주인은 문어가 아니라 꿀벌처럼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생물에 관심이 많던 고교 시절, 꿀벌과 관련된 책을 읽을수록 벌은 신기했다.

전자파·농약·꿀벌응애·온난화 등이 거론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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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경북 안동 본가에서는 큰방 섬돌 옆에서 벌을 키웠다. 팔려는 게 아니라 어른들이 꿀을 약으로 먹으려고 딱 한통만 키웠다. 설탕마저도 귀하던 1970년대초 그 꿀의 귀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남자 어른 한두명만 독상을 받고 나머지 가족들은 큰 상에 모여 따로 먹던 그 시절, 장손도 아닌 나에게 그 꿀을 맛볼 기회가 올 리는 만무했다. 대신 벌통 때문에 집 안에는 늘 벌이 날아다녔고 아주 어렸던 나는 달려드는 벌이 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한번은 복숭아를 먹다 단내를 맡고 달려든 벌에 쏘여 꽤 오랫동안 복숭아 알레르기를 앓기도 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벌에 대한 두려움은 점점 없어지고 나는 벌을 잡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쏘이면 죽을 수도 있다는 장수말벌도 겁 없이 잡으러 다녔다. 가끔 벌에 쏘이기도 했지만 된장만 바르면 신기하게 부기가 빠졌다.

하지만 중학교 때 꿀벌들이 오로지 일을 위해 무성생식으로 태어난다는 걸 배우고 나서는 더이상 꿀벌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비록 곤충이지만 수도승처럼 사는 그들 삶의 방식이 사춘기 철없는 소년의 눈에도 경외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우주인은 문어가 아니라 꿀벌처럼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생물에 관심이 많던 고교 시절, 꿀벌과 관련된 책을 읽을수록 벌은 신기했다. 완벽한 육각형의 집을 짓고 그 안에 모아둔 꿀은 1만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다. 꿀벌의 군집생활 역사는 인간의 역사보다 훨씬 긴 3000만년이나 됐다. 나에게 진노란색 태양빛 꿀은 단순한 식품이 아니라 비싼 쇠고기에도 없는 아우라를 가진 찬탄의 대상이었다.

꿀벌에 대한 찬탄은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계속됐다. 신문사 후배 가운데 서울 남산에서 도시양봉을 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는 여름이 끝날 무렵이면 같은 부서원에게 조그만 꿀통을 돌렸다. 그 꿀은 비싼 뉴질랜드 마누카꿀보다 향기가 더 좋았다. 그 작은 곤충들이 사람 살기도 갑갑한 서울 하늘을 날면서 이런 향의 꿀을 모았다는 게 기적같이 느껴졌다.

나도 이때부터 도시양봉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그렇지만 매년 봄마다 바빠서 양봉학교 등록조차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래도 매년 가을이 되면 ‘내년 봄에는 꿀벌들과 함께 숲속에서 덩실덩실 춤을 출 거야’라는 굳은 결심을 하곤 했다. 양봉은 오랫동안 나의 버킷리스트였다.

그런데 몇년 전부터 미국에서 시작해 전세계로 퍼지고 있는 꿀벌 집단 폐사가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했다. 사체조차 찾을 수 없어 ‘꿀벌 실종사건’으로 불린다. 2022년 겨울에는 78억마리나 사라졌고, 올해도 100억마리가 사라질 전망이다. 그런데도 집단 폐사의 원인조차 모른다. 전자파·농약·꿀벌응애·온난화 등이 거론될 뿐이다.

꿀벌은 우리가 먹는 100대 작물의 70%를 가루받이한다. 인류에게 주는 경제적 이익을 추산하면 매년 2000억달러(250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꿀벌이 멸종하면 인간도 4년 후에 멸종한다”는 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지난달 24일 국회에서는 기후 위기에 따른 꿀벌들의 집단 폐사 사건에 대한 대책 마련과 지원을 명시한 ‘양봉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됐다. 늦은 감이 있지만 시의적절한 일이다.

권은중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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