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농업·농촌은 양성평등의 토양에서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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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도, 도지사도, 시장도 내 손으로 뽑는데 이장은 제 손으로 못 뽑아요"라는 여성농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여성농이 농업·농촌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유로는 '체력 부족' '가사 병행' '농기계 사용의 어려움'을 들었으며,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는 '과중한 노동 경감'과 '복지 확대'를 꼽았다.
농촌에서 여성은 최소한 남성과 동일한 수준의 노동을 하고 있고 가사노동, 마을사업 참여 등을 포함하면 여성농의 역할은 남성과 비교해도 결코 모자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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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도, 도지사도, 시장도 내 손으로 뽑는데 이장은 제 손으로 못 뽑아요”라는 여성농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농촌마을 이장 선거는 가구당 1표가 부여되다보니 집안의 남성들이 투표권을 행사하는 경우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고 한다. 웃어넘겨 버리기에는 어딘가 불편한 여성농의 지위를 비춰주는 한 단면이다.
과거 농촌에서 여성은 농업활동의 보조자로 여겨지면서 ‘그림자 노동(무보수 노동)’을 했다. 집안일을 도맡고 농사와 가사를 병행하느라 문화·교육 등을 향유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었고, 기계화가 덜된 농작업도 어쩔 수 없는 몫으로 받아들였다.
농촌에서 양성평등은 진전되고 있지만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2018년 여성농업인 실태조사’를 보면 여성농 10명 중 8명은 여성농의 지위를 남성농보다 낮게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농이 농업·농촌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유로는 ‘체력 부족’ ‘가사 병행’ ‘농기계 사용의 어려움’을 들었으며,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는 ‘과중한 노동 경감’과 ‘복지 확대’를 꼽았다.
양성평등은 성별에 따른 차별·편견·비하·폭력 없이 모든 개인이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동등하게 참여하고 대우받는 것을 말한다. 양성평등은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핵심이자 인류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가치다.
우리 사회에서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하면서 농촌에서도 양성평등 인식이 과거와는 많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농촌에서 여성은 최소한 남성과 동일한 수준의 노동을 하고 있고 가사노동, 마을사업 참여 등을 포함하면 여성농의 역할은 남성과 비교해도 결코 모자람이 없다. 더구나 여성이 농가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되면서 남성과 여성의 구별이 무의미한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현장에서 나타나는 실상은 농업·농촌에서 양성평등 달성이 쉬운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제도와 실천이 동반돼야 하고, 신체·경제·사회적으로 불리한 여건에 놓여 있는 여성농을 배려할 수 있는 정책도 전제돼야 한다.
여성친화형 농기계를 개발해 여성농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농작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영농 여건 개선을 위한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수단 중 하나다. 여성농을 위한 특수건강검진도 빼놓을 수 없다. 주기적인 건강검진을 통해 근골격계 질환 등을 예방하거나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면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누릴 수 있다. 여성농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소규모 창업을 지원하거나 농산물종합가공센터에서 융복합산업을 지원하는 것도 확대해야 한다.
돌봄·교육 여건이 불리한 농촌에서 일·가정 양립을 이룰 수 있는 여건도 만들어야 한다. 소규모 어린이집이나 농번기 아이돌봄방 등을 통해 육아 부담을 완화하고, 농촌지역에서 주민 주도로 교육 등의 자발적 공동체 활동을 활성화하는 것도 필요한 과제다.
양성평등에 대한 인식과 실천도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농가에서는 ‘공동경영주’ 제도의 의미를 인식해 여성농에게 동등한 기회를 부여하고 여성농이 자긍심을 갖는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실천해나가야 한다.
농업·농촌에서 여성농을 포함한 모든 개인은 자유롭고 공정한 기회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율성과 창의성이 발휘되고 지속가능한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농업·농촌은 양성평등의 토양에서 성장한다는 믿음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강형석 농림축산식품부 기획조정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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