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 답사기] 되살아난 ‘100년 양조장’…역사는 깊고 술은 익어갑니다
‘영양양조장’ 폐업 딛고 프리미엄공방 변신
군·교촌F&B 협업 … 이동훈 대표 등 뭉쳐
삼양주 ‘은하수막걸리’ 도수별로 개성 뚜렷
6도는 가볍고 청량·8도엔 고소한 향 더해
요구르트 제형 ‘감향주’ 디저트로도 제격
아시아 최초 ‘국제밤하늘보호공원’으로 지정된 경북 영양에선 칠흑 같은 밤하늘과 반딧불이 그리고 은하수를 볼 수 있다. 이곳에 최근 명물이 하나 더 생겼다. 100년 양조장으로 역사가 깊은 영양양조장이 폐업까지 이르렀다가 영양군과 교촌에프엔비(F&B)의 도움을 받아 ‘발효공방1991’이라는 이름으로 2022년 새롭게 태어났기 때문. 발효공방1991에서 ‘은하수 막걸리’ 빚기에 바쁜 김명길 양조사(45)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원래는 음식디미방보존회에서 활동하며 고문헌의 조리법과 술 복원 작업에 참여했어요. 100년 역사를 지닌 영양양조장이 다시 살아난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발효공방1991에서 술을 빚기 시작했죠.”
‘음식디미방’은 영양에 살았던 사대부 집안의 장계향 선생이 쓴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조리서다. 여성이 쓴 조리서로도 동아시아 최초다. 영양군은 음식디미방을 운영하며 장계향 선생의 삶을 소개하고, 그가 조리법을 기록한 요리와 술을 복원, 알리고 있다. 김 양조사는 복원 작업에 핵심 역할을 해왔다.
발효공방1991이 문을 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전신인 영양양조장은 일제강점기에 문을 열고 3대째 막걸리를 빚었지만, 2018년 경영난으로 폐업했다. 영양군은 어떻게든 양조장을 살리려 애썼고, 교촌치킨을 만드는 교촌에프엔비와 협업해 프리미엄 막걸리를 생산하는 공방으로 변신시킨 것이다. 현재 발효공방1991은 이동훈 대표를 필두로 타 주류업체에서 전통주 복원·연구를 한 경력이 있는 송숙희 부문장, 그리고 김 양조사 등 양조사 세명이 일하고 있다.
“지역주민들도 지나가는 길에 ‘막걸리 언제 나오냐?’고 물어볼 정도로 관심을 많이 받았어요. 영양양조장은 영양군민의 희로애락이 담긴 곳이었거든요. 저 또한 누구보다 기뻤습니다.”
영양군과 교촌에프엔비는 최대한 영양양조장의 틀을 유지한 채로 내부를 개조했다. 양조장과 지역주민이 운영하는 카페 ‘소풍’, 청년 창업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카페 소풍에선 과거 양조장의 다양한 유물과 전시를 볼 수 있다. 발효공방1991에 가면 막걸리로 만든 막걸리푸딩과 막걸리타르트도 놓치지 말길.
발효공방1991엔 세가지 술이 있다. 고품질 영양쌀로 만드는 ‘은하수 막걸리’(6도·8도) 그리고 ‘음식디미방’에도 소개된 떠먹는 막걸리 ‘감향주’(9도)다. ‘은하수 막걸리’는 세번 담그는 삼양주다. ‘은하수 막걸리’는 6도와 8도 각각 개성이 뚜렷하다. 6도는 가볍고 청량하며, 8도는 부드럽고 도수가 낮은데도 걸쭉하다. 특히 8도에는 금강밀을 넣어 특유의 쌉싸래함과 고소한 향을 더했다. 막걸리는 발효한 후 도수를 맞추려고 원주(原酒)에 물을 섞는데, ‘은하수 막걸리’는 원주 도수가 13도다. 대부분 일반 상업 양조 막걸리의 원주가 15∼18도인 점을 고려했을 때 낮은 편이다. ‘음식디미방’에 나오는 감향주 복원을 통해 개발·현대화한 발효기술을 적용해 일부러 낮은 도수의 원주를 만든 것이다.
‘감향주’는 찹쌀로 빚는 막걸리로 물을 적게 써서 숟가락으로 떠먹을 수 있다. 요구르트 제형이고 맛이 달콤해 디저트로 먹기 좋다. 붉은빛을 내는 홍국균을 접종한 쌀인 ‘홍국쌀’로 만든 붉은빛 ‘감향주 홍’도 있다.
“요즘 시중에 정말 맛있는 막걸리가 많잖아요. 발효공방1991은 다른 막걸리와 차별화를 하려 노력했어요. 마시는 사람 누구나 프리미엄 막걸리의 진가를 느낄 수 있도록요.”
향후 발효공방1991은 이름처럼 막걸리를 시작으로 발효의 영역을 다양하게 확장할 계획이다. 영양군 고추산업특구에 6280㎡(1900평) 규모로 생산 인프라를 구축해 영양군 특산물인 고추로 고추장을 만들고, 간장과 된장 등 다양한 발효식품을 만들 계획이다. 또 어쩌면 교촌에프엔비의 자랑인 ‘교촌치킨’과 막걸리를 더한 ‘치막(치킨+막걸리)’을 기대해볼 수도 있겠다. 김 양조사의 다짐이다.
“발효공방1991은 영양양조장의 부활과 동시에 고품질 제품을 생산하고 다양한 발효식품을 만들어 지역민과 상생하려고 해요. 저 또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발효공방1991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게 목표입니다.”
영양=박준하 기자(전통주 소믈리에) june@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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