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일본의 ‘한반도 통일’ 문서로 지지, 처음이다
“자유롭고 평화로운 통일 한반도”
한미일 3자 협력 순항하려면
한일관계 돌출 막아야
독도 문제 휘발성 줄이기 위해
양국 해양경계협정 서둘러야
지난달 18일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담은 동아시아의 전략 지형과 역학 관계를 재편할 세기적 사건이다. 여기서 3자 협력의 비전과 원칙, 목표, 이행 체제 등을 명시한 3개의 문서가 채택된 것은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외교적 이변이다.
이러한 이변은 동아시아의 시대적 요구와 이에 부응하려는 3국 정상의 절묘한 의기투합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국내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무모하고 과감한 베팅을 한 것이 캠프 데이비드로 가는 길을 열었다는 데는 이론이 없다. 역대 미국 정부가 20년 이상 3자 협력체 수립에 지대한 공을 들여왔지만 한일 간의 과거사를 둘러싼 반목과 갈등이 성사를 가로막아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윤 대통령이 푼 한일 관계의 매듭을 3자 정상회담으로 연결하는 리더십과 순발력을 발휘함으로써 동아시아 외교의 숙원을 달성했다. 동맹을 ‘기생충’으로 여기는 트럼프가 대통령이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일본의 총리가 아베의 추종자가 아닌 것도 요행이었다.
3자 간 안보 협력을 가능하게 만든 정치적 원동력은 3국이 공유하는 위협 인식에서 나온다. 그런 점에서 시진핑과 김정은도 주역 못지않은 조역의 몫을 한 셈이다. 시진핑이 ‘중국몽(中國夢)’을 앞세워 공세적 팽창 정책으로 역내 안보 불안을 조성하고 대한민국의 방어 주권을 부정하는 횡포를 부리지 않았다면 미·일의 중국 견제 전략에 한국이 선뜻 동참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김정은이 핵미사일 전력의 증강과 기술적 고도화에 광적으로 매달리지 않았다면 일본과의 군사협력 확대와 제도화는 국내 정치적으로 가당치 않은 발상이다.
그렇다면 3자 협력체 출범으로 무엇이 달라질까? 한국이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중국에 대한 레버리지(leverage)를 강화하고 패권적 횡포나 경제적 강압에 휘둘리지 않을 보험을 든 것이다. 3자 협력체가 군사동맹과는 거리가 멀지만 3국의 이익과 안전에 대한 역내 “도전·도발·위협”이 있을 경우 대응책을 조율하기 위해 신속히 협의하기로 한 것은, 중국이 한국을 겁박하려면 3국의 공동 대응을 각오해야 함을 의미한다. 또한 핵심 소재·부품의 공급망 교란에 대응할 체제를 마련함으로써 중국의 경제적 강압을 견제할 레버리지도 강화되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정책에 대한 우리의 발언권도 강화되었다. 특히, 미국이 중국의 위협을 과장하여 과잉 대응을 시도할 경우 한일 양국이 공동으로 이를 순화할 틀을 제공해준다.
일각에서 미·일과의 밀착이 중국의 반발을 초래하고 한국 외교의 독자적 공간을 제약한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으나 중·러·북 3자 간 결속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레버리지를 희생하여 운신의 폭을 넓힌다고 도움 될 것이 없다.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로 받들고 ‘중국몽’에 함께하겠다고 아부하면 중국의 반발은 피할 수 있다. 그러나 반발을 피하려고 레버리지를 포기하면 굴종을 자초할 뿐이다.
북한도 그간 민생을 희생해가며 개발해온 핵미사일을 사용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3국 간 미사일 경보 데이터의 실시간 공유와 함께 연합 훈련을 정례화함에 따라 북한이 핵미사일 발사를 시도하더라도 이를 더 효율적으로 탐지하고 요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의 해킹과 암호화폐 절도를 차단할 실무 그룹이 구성됨으로써 북한의 불법 외화 벌이는 더 힘들어졌다. 캠프 데이비드 공동성명이 “자유롭고 평화로운 통일 한반도”를 지지한 것도 주목된다. 통일의 방법에 대한 언급 없이 통일의 최종 상태만 명시한 것도 특이하고 일본이 한반도 통일을 공동성명을 통해 명시적으로 지지한 것도 처음이다.
그런데 3국 협력체의 출발은 창대하나 그 토대는 미약하기 짝이 없다. 내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는 참사가 발생하면 3자 협력은 동력을 상실한다. 한국에서 반일근본주의 세력이 집권해도 한일 관계는 무사할 수 없다. 한일 관계가 파탄되면 3자 협력도 끝이다. 3자 협력을 되돌리기 어렵게 하려면 이를 내실화하고 한일 관계의 잠재적 악재를 제거해야 한다. 독도에 대한 일본의 시도 때도 없는 영유권 주장이나 동해 표기 문제가 3자 협력의 분위기를 망칠 수 있다. 따라서 독도 문제의 휘발성을 줄이는 방안으로 한일 간 해양경계협정 체결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2016년 상설국제중재재판소(PCA)의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판결을 원용하면 독도가 한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들어오는 해법을 찾을 수 있다. 동해에서 한·미·일 간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하려고 해도 훈련 해역 표기 문제가 본질을 퇴색시키는 돌출 악재가 될 수 있다. 해양경계협정과 동해 표기 문제를 일괄 타결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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