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학폭 방관자 아니었나… ‘회색빛 몸짓’으로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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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 뿌연 안개 속에서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교실 속 폭력을 이대로 둘 것인가'. 아이들은 다가올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학교폭력을 꼬집는 무용극 '그리멘토'의 무대, 조명, 의상, 소품 등을 맡은 정구호 연출가(58)의 말이다.
그는 "중학생 때는 키가 큰 편이어서, 고등학생 때는 미술부에서 그림만 그리느라 '조용한 학생'으로 지냈다. 이번 작품을 준비하며 과거의 나 역시 방관자는 아니었을까 되물었다"며 "학교폭력은 우리 모두의 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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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무대-소품, 무채색 조명 활용
교실 속 숨은 방관자 표현하려 해
해법 찾으려면 계속 공론화해야죠”
학교폭력을 꼬집는 무용극 ‘그리멘토’의 무대, 조명, 의상, 소품 등을 맡은 정구호 연출가(58)의 말이다. 4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그를 만나 신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멘토’는 프랑스어로 회색을 뜻하는 ‘Gris’와 기억, 순간을 의미하는 라틴어 ‘Memento’의 합성어다. 가해자, 방관자, 피해자 등의 역할을 맡은 무용수 16명이 폭력에서 치유로 이어지는 과정을 6가지 상황에 맞춰 춤으로 풀어낸다. 안무는 정 연출가와 서울시무용단 ‘일무’로 호흡을 맞췄던 현대무용가 김성훈 씨가 맡았다.
‘일무’ ‘묵향’ 등 전통무용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스타덤에 오른 정 연출가가 사회적 이슈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을 선보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접한 학교폭력 이슈를 다룬 드라마와 영화, 뉴스 등이 그에게 굳은 의지를 심어줬다. 그는 “콘텐츠가 결코 과장된 게 아니라 현실에선 더 잔인하단 걸 알고 많이 놀랐다. 해법을 찾으려면 끊임없이 공론화돼야 하고, 적극 동참하고 싶었다”며 “틀이 확고한 장르보다는 현대무용이 문제를 제기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무용수들은 서로 다른 6가지 회색으로 표현된 교실을 배경으로 책상과 의자를 활용해 춤춘다. 공연 초반 어두웠던 무채색 조명은 점차 밝아지도록 연출했다. 피해자를 따라다니는 그림자 같은 기억을 표현하고자 소품과 무대를 무광 회색으로 칠했다. 그는 “방관자와 가해자의 경계, 가해자를 낳은 구조적 모순 등 단순 흑백논리 밖의 회색지대까지 짚으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공연에선 방관자의 존재를 강조했다. 폭력이 벌어지는 동안 교실 곳곳에 숨어 있는 방관자들은 무대 벽과 바닥에 투사되는 영상에 의해 시각적으로 호명된다. 그는 “중학생 때는 키가 큰 편이어서, 고등학생 때는 미술부에서 그림만 그리느라 ‘조용한 학생’으로 지냈다. 이번 작품을 준비하며 과거의 나 역시 방관자는 아니었을까 되물었다”며 “학교폭력은 우리 모두의 일”이라고 했다.
그가 이번 작품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관객과의 소통’이다. 1990년대 미국 뉴욕에서 안은미, 안성수 등 현대무용가들의 의상을 맡아 무용계에 발을 디뎠기에 현대무용을 향한 그의 애정은 남다르다. 그는 “무궁무진한 새로움을 보여주되 명료한 메시지를 토대로 대중과 가까워지고 싶다”며 “지금까지 현대무용 작품에 비해 다소 설명적일 수 있지만 관객이 쉽게 동작과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했다.
1000석 이상의 대극장에서 주로 활약했던 정 연출가에게 300석 규모의 소극장 공연은 ‘귀한 작업’이었다. 그는 “규모와 설비 등 여러 제약이 도전정신을 자극했고, 관객과 더 친밀히 호흡하는 게 좋다”고 했다. 제일모직 전무 출신으로 패션 디자인과 브랜드 컨설팅, 영화 미술감독 등 다채로운 경력을 쌓은 그는 스스로 ‘도전 중독자’라고 했다. 다음 달엔 직접 연출한 오페라 ‘나비부인’을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제작사의 의뢰를 받아 드라마 대본도 쓰고 있다.
“7월부터 패션 디자인과 컨설팅 일은 전부 정리했어요. 10년간 제 인생의 마지막 전환을 해보려고요. 수입이 끊겨 불안하기도 하지만 공연을 비롯한 새 도전에 열중하고 싶어요. 내년에는 정구호가 아닌 비밀스러운 이름으로 여러분을 만나게 될 겁니다.(웃음)”
7∼10일, 4만5000∼5만5000원.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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