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향은 조총련을 모르나, 그럼 재일교포의 ‘이 책’ 읽어보길
윤미향 무소속 의원께 추천할 책이 있다. 재일 교포 양영희(59)씨가 쓴 ‘북한에서 오빠는 죽었다(北朝鮮でオッパは死んだ)’이다. 일본어판밖에 없지만, 적은 분량이라 윤 의원 주변의 ‘도꾜 동포’들이 번역해 줄 수 있다. 책이 어렵다면 양씨가 만든 다큐멘터리 ‘디어 평양’이나 ‘굿바이, 평양’도 좋다. 이런 걸 보고 나서도 한국 국회의원이 조총련 행사에 갔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
조총련 열성 간부였던 양씨의 부모는 “북한이 지상낙원”이라는 말만 믿고 10대 아들 셋을 만경봉호에 태웠고 평생을 자책했다. ‘조총련 북송 사업’이 초래한 가족의 비극을 담아낸 게 양씨의 책과 다큐멘터리다. 조총련은 조선 학교와 지역별 기관 등을 총동원해 “무상 교육, 무상 의료 보장되고 차별 없는 공화국으로 가자”고 집요하게 교민들을 설득했고, 1959년부터 25년에 걸쳐 약 9만3000명을 ‘수령님의 품’으로 보냈다. 복잡한 서류 절차를 조총련이 모두 대리해 줬기에 까막눈 동포들도 대거 만경봉호를 탔다.
배가 원산항에 닿자마자 속았음을 알았지만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북송 교포는 인질이 됐고, 일본에 남은 가족들은 조총련에 거액 충성 헌금을 내야 했다. 양씨의 부모도 30년간 북한의 아들들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뒷바라지했다. 밥은 굶어도 베토벤 없이는 못 산다던 장남은 끝내 우울증으로 죽었고, 차남과 삼남은 뭘 하든 “김일성, 김정일 만세”를 외치는 기계가 됐다. 그럼에도 양씨는 “오빠들이 평양에 살아서 천운”이라고 말한다.
북송 교포들이 자유를 되찾을 방법은 탈북밖에 없었다. 북송선을 탄 9만3000여 명과 그 후손을 통틀어 약 200명만 탈북에 성공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들은 가난과 차별에 질려 일본을 떠났는데, 북한에선 차원이 다른 빈곤과 박해가 있었다고 한결같이 증언한다. 식량난, 물자난은 예사였고 평생 ‘쪽발이’ 같은 멸칭을 들으며 천민 대우를 받았다. 도저히 못 살겠다고 혼잣말이라도 하면 온 가족이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 행방불명됐다. 인권 단체들이 “조총련의 북송 사업은 현대판 노예무역”이라 규탄하는 이유다. 조총련은 올해로 북송 64년이 되도록 단 한 번도 사과한 적 없다.
윤 의원은 “일본 시민사회 어느 곳에 가든 조총련은 있다”며 자신의 조총련 행사 참석이 문제없다고 주장한다. 간토 대학살 못지않게 반인권적 참사인 재일 교포 북송 사업을 심지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행한 조총련을 마치 평범한 시민 단체인 듯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윤 의원께서 조총련 피해자의 절절한 마음이 담긴 양씨의 책이나 다큐멘터리를 보시길 간곡히 권한다. 그래도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면, 윤 의원이 사람을 ‘사업 수단’으로 보는 시선에 익숙해서 그러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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