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북한의 ‘대한민국’ 호칭 전략적 의도
북한이 최근 ‘대한민국’ 호칭 사용을 공식화하고 있다. 주요 기관 담화는 물론 김여정 부부장 같은 최측근 담화, 김정은 참석 중요 당회의 보도에서도 등장하고 있다. 고도의 정치적 계산과 이미 진행돼 온 ‘국가 대 국가’ 구도를 기정사실화하기 위한 행보로 보인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대한민국’ 호칭 사용 이면에는 북한의 대남 프레임 및 남북관계 인식 변화뿐만 아니라 군사전략의 변화도 함축돼 있다.
우선 핵무기 실전화와 ‘우리민족끼리’의 모순적 충돌을 해소하기 위한 차원이다. 전통적인 북한의 대남 통일전선 논리는 ‘우리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통일을 하자는 것으로 설정돼 있었다. 그런데 핵·미사일이 고도화되고 대남·대미 실전 배치 및 작전화가 이뤄지면서 기존 통일전선 논리와 모순이 발생했다. 소위 같은 민족에게 핵무기를 겨냥하고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다. 민족에게 핵을 사용한다는 자기모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가 대 국가’ 구도를 설정할 경우 외교관계가 없는 적대 국가에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순이 제거된다. 결국 북한은 핵·미사일 고도화와 대남 실전화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 대 국가’ 구도를 설정한 측면이 있다.
핵무기 고도화에 따른 북한의 대남 프레임 변화는 이미 몇 년 전부터 가시화됐다. 2019년 10월 김정은은 금강산관광지구 현지지도 때 그간의 남북한 교류협력을 국력이 미약했던 시기에 선대의 잘못된 판단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강하게 비판하며 향후 남북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설정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이는 일종의 대남정책의 가이드라인이 됐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북한은 대남 부서 폐지 및 축소, 노동신문 대남 지면 폐지, 한국의 대북 제의 무시 전략으로 일관했다.
또 2021년부터 ‘우리민족끼리’, ‘민족’, ‘통일’이라는 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기 시작했다. 2021년에는 당규약 서문에서 늘 있던 대남 부문을 삭제했다. 또 2022년 6월 당중앙군사위원회 개최를 통해 전술핵의 작전화를 공개하며 대남 작전지도를 펼쳐 놓고 회의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급기야 2022년 12월 제8기 제6차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는 한국을 ‘적’으로 규정하고 대적 행동으로 ‘전술핵’ 사용을 언급했다. 같은 민족을 상대로 한 대남 전술핵 작전화는 기존 ‘우리민족끼리’ 및 통일 논리와 충돌하기 때문에 북한은 핵·미사일이 점차 실전화 단계로 접어드는 국면에서 더욱 빠르게 남북관계를 ‘국가 대 국가’ 논리로 전환하려 시도해 왔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핵무기 개발의 국제적 정당성 확보 차원에서의 유용성이다. 2021년 8월부터 북한은 한국의 주요 무기 실험에 유사 무기 실험으로 대응하는 양상을 노골화하며 ‘이중기준’론을 제기했다. 한국이 자위권 차원의 무기 개발을 하고 북한도 마찬가지로 일반 국가의 자위권 차원의 국방력 강화를 하는데 왜 자신들에게만 ‘도발’이라고 비난하느냐는 불만을 피력하기 위해서다. 소위 한국도 북한도 모두 일반적인 국가처럼 자기 방위력을 행하는 ‘국가와 국가’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맥락이다. 일종의 핵무기 개발의 국제적 정당성 확보을 피력하기 위한 차원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정부의 대북·통일정책 무력화 효과다. 한국 정부의 신통일미래구상, 담대한 구상, 비핵화 로드맵은 모두 민족 특수관계를 전제로 구상된 것이다. 북한은 ‘국가 대 국가’ 논리를 통해 한국의 대북통일정책을 차단하고 배제하는 효과, 대화와 협력 가능성을 아예 무력화하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향후 한반도 문제의 ‘군사화’, 한반도 문제를 북미 외교 문제로 제한하려는 전략적 의도로 볼 수 있다. 향후 한반도 문제를 핵우산을 투사하는 미국과 핵보유국 국가인 북한 사이의 군사외교적 사안으로 제한하려는 의도다. 이런 구도라면 한반도 문제를 북미 간 ‘핵 대 핵’ 문제로 귀결되고 기존 민족 간 특수관계 차원에서 이뤄진 남북 교류협력과 대화는 사실상 실종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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