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배제하고 엉뚱한 곳 발령… 퇴사 유도하는 테크 기업들

지민구 기자 2023. 9. 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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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관련) 소문은 무성했지만 직원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어요."

지난달 국내 대형 테크(첨단 기술) 기업에서 퇴직한 4년 차 개발자 A 씨(29)는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떠날 때까지의 상황을 전하며 "정말, 정말, 정말 우울했던 시간"이라고 토로했다.

카카오의 기업간거래(B2B) 사업 전문 자회사인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올 7월부터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고 카카오엔터테인먼트도 연차가 10년 이상인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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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 기업 ‘조용한 해고’]
‘조용한 해고’ 글로벌 테크… 올해 23만 감원
‘23만3537명.’

미국 웹사이트 레이오프스닷에프와이아이(layoffs.fyi)가 각 기업 발표와 주요 언론 보도 내용을 토대로 집계한 전 세계 주요 테크(첨단 기술) 기업의 올해 누적 해고자 수다. 올해 들어 이달 4일까지 해고된 직원 수지만, 이미 지난해 테크 기업의 전체 감원 규모(16만4744명)를 넘어섰다.

감원 규모는 특히 올해 1분기(1∼3월) 16만7398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그 후 점차 감소하는 추세이지만 고용불안 분위기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 뒤 테크 업계의 실적이 악화했고 금리 인상 여파로 자금 조달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올해 2분기(4∼6월) 순이익이 200억8000만 달러(약 26조5900억 원)로 전년 동기 대비 19.9% 늘어난 상황에서도 7월 1000여 명의 추가 감원 계획을 발표했다.

고용과 해고가 상대적으로 유연한 미국 테크 업계에서도 이러한 대규모 감원이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며 최근 들어선 ‘조용한 해고(quiet cutting)’로 불리는 구조조정도 등장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27일 어도비와 IBM 등 테크 기업이 공식적인 구조조정 대신 업무 재배치 같은 조치를 통해 직원 스스로 퇴사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 테크 기업들도 경기 침체 장기화로 자금 사정이 악화되면서 올해 들어 ‘보이지 않는 구조조정’을 이어가고 있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테크 업계가 2010년경부터 꾸준히 성장하다가 사실상 처음으로 구조적 위기를 경험하는 상황이라 더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팬데믹 시기 직원 대거 뽑았다가… 수익 줄고 자금 막히자 ‘조용한 해고’
‘구조조정’ 등 고용 관련 검색 급증… 4년차 퇴직자 “정말 우울했던 시간”

“(구조조정 관련) 소문은 무성했지만 직원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어요.”

지난달 국내 대형 테크(첨단 기술) 기업에서 퇴직한 4년 차 개발자 A 씨(29)는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떠날 때까지의 상황을 전하며 “정말, 정말, 정말 우울했던 시간”이라고 토로했다.

A 씨가 희망퇴직을 신청하기 전 회사 내부엔 수상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A 씨는 올해 4월 조직장으로부터 “조만간 다른 팀으로 옮기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팀으로 인사 발령이 난 뒤에도 A 씨를 비롯해 새로 전입한 직원들은 별다른 업무를 받지 못했다. 회사는 결국 7월부터 공식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고 A 씨는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팬데믹 시기 높은 처우를 제시하며 인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던 테크 기업이 올해 들어 조용한 해고를 이어가고 있다. 구조조정이나 희망퇴직 등의 표현을 쓰지 않고 인사와 업무 재배치 등으로 자발적인 퇴사를 유도하는 방식의 감원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팬데믹 때는 정해진 시간 내 정해진 업무만 최소한으로 하는 직원들의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이 유행했지만, 이제 기업들의 ‘조용한 해고(quiet cutting)’가 시작된 것이다.
꾸준한 성장을 보여온 정보기술(IT) 업계에 감원 바람이 불기 시작한 이유는 팬데믹 이후 수익이 줄고 적자가 누적된 상황에서 금리 인상 등의 영향으로 새로 자금을 조달할 길마저 막혔기 때문이다. 유니콘 야놀자의 올해 상반기(1∼6월) 영업손실은 285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적자 전환했다. 비바리퍼블리카(토스)도 올해 1231억 원의 영업손실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손실 폭이 더 커졌다.

일부 테크 기업들 사이에선 공식적인 구조조정도 이뤄지고 있다. 카카오의 기업간거래(B2B) 사업 전문 자회사인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올 7월부터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고 카카오엔터테인먼트도 연차가 10년 이상인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진행했다. 아마존웹서비스(AWS)의 한국지사인 AWS코리아는 올해 5월 권고사직을 단행했고 비슷한 시기 메타코리아도 일부 직군에서 구조조정을 했다. 앞서 한국 마이크로소프트(MS)도 올 2월부터 권고사직을 통보했다.

미국 웹사이트 레이오프스닷에프와이아이(layoffs.fyi)가 각 기업 발표 등을 토대로 집계한 전 세계 주요 테크 기업의 올해 누적 해고 직원 수(23만3537명)는 지난해 연간 전체 감원 규모(16만4744명)를 넘어섰다. 미국 테크 업계에도 공식 구조조정 대신 직원 스스로 퇴사하도록 유도하는 조용한 해고가 이뤄지고 있다.

국내 테크 기업 임직원들이 느끼는 고용불안 분위기는 폐쇄형 직장인 플랫폼 ‘블라인드’의 검색어 변화에서도 나타난다. 테크 업계에서 최고 직장으로 꼽혔던 ‘네카라쿠배당토직야(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민족, 당근, 토스, 직방, 야놀자)’ 9곳의 재직자가 입력한 ‘구조조정’ 등 고용불안 관련 6개 단어의 올해 상반기(1∼6월) 블라인드 내 월평균 검색량은 전년 동기 대비 6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해 하반기(7∼12월)와 비교해도 3배 이상 급증했다. 블라인드 관계자는 “직원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회사를 떠나야 하는 업계 분위기 등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팬데믹을 거치며 몸은 커졌어도 수익을 내는 등 내실을 다지지 못한 IT 기업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라며 “앞으로 몇 년간 과거와 같은 ‘채용 호황’은 오지 않을 것 같다”고 짚었다.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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