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AI기업 '뉴스 사용료' 격돌 초읽기
네이버 '클로바X' 공개 후 가시화
온신협 등 언론단체 공동대응 나서
동아·중앙·한국·한경도 약관 개정
네이버판 챗GPT인 ‘클로바X’가 최근 공개되면서 국내 언론계에 생성형 AI가 미칠 파장이 가시화되고 있다. 당장 생성형 AI 학습에 사용되는 뉴스 사용료가 화두로 부상하며 언론단체가 협의체를 통한 공동대응으로 AI 기업과 협상이 예고된 상황. 20여년 포털 체제를 거쳐 ‘AI 시대’를 맞이한 언론사의 행보가 더없이 중요하진 시점이다.
주요 신문사 온라인부문·계열사를 회원으로 둔 한국온라인신문협회(이하 온신협)는 지난달 31일 생성형 AI의 뉴스 저작권 침해에 대해 △뉴스 콘텐츠 저작권자인 언론사의 권리 존중 △TDM(Text and Data Mining) 면책규정 도입 반대 △AI가 학습한 뉴스 콘텐츠에 대한 정당한 대가 지불 등 3대 원칙을 공식 표명했다. 앞서 국내외 AI 기업에 정당한 대가지급 및 보상체계 마련 등을 요구한 한국신문협회(신문협회)와 공동 대응 방침도 전했다. 개별 언론사에서도 조치가 나오며 한국일보는 지난 7월 사이트 약관 개정을 통해 국내 언론 중 처음으로 ‘인공지능 및 대량 크롤링 방지’ 조항을 신설했다. AI 기업으로부터 자산을 보호하려는 선제적 행보는 중앙일보와 동아일보, 한국경제에서도 이뤄지며 약관 개정과 자사 사이트 GPT봇 접근 차단 조치 등이 취해졌다. SBS는 지난달 30일부터 자사 사이트와 유튜브 등 뉴스 콘텐츠 하단에 “AI학습 이용 금지” 문구를 삽입하고 있다.
네이버가 거대언어모델 ‘하이퍼클로바X’와 대화형 생성 AI ‘클로바X’를 지난달 24일 ‘단(DAN) 23’ 행사에서 공개한 전후를 기해 지난해 ‘챗GPT’의 파장이 국내 언론계에 성큼 다가온 분위기다. 네이버가 이날 “지금까지 학습한 데이터들은 기존의 규제라든지 약관에 근거를 두고 학습 한 것”이라며 과거 학습한 뉴스 데이터 비용지급 요구를 일축하고, 온신협은 입장문을 통해 “옛 약관의 ‘연구 목적’ 조항을 근거로 제휴사인 언론사에 설명도 없이, 동의도 거치지 않은 것은 명백한 저작권 침해”이며 “공정이용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입장이 갈리는 상태다.
‘뉴스 사용료’는 특정 기술에 대한 담론 차원을 넘어 이미 구체적인 협상을 전제한 현실 문제가 됐다. 일례로 언론사 뉴스 판매 등 저작권 사업을 맡고 있는 한국언론진흥재단(언론재단)은 최근 삼성전자로부터 30개 매체 15년 치 뉴스 데이터 구매 의사를 전달받았다. 기존 저작권 징수 규정엔 AI 학습 관련 항목이 없었고, 이에 따라 언론사 간부 등이 포함된 ‘저작권 뉴스 운영위원회’ 위원, 유통사와 적정가격을 정하는 논의를 진행했다. ‘몇 억’과 ‘20~30억’ 수준으로 인식 차가 상당했고 이에 협의는 잠정 중단된 상태로 전해진다.
네이버와 협상도 현실화됐다. 국민일보, 동아일보, 디지털타임스, 매일경제, 서울경제, 한국일보 등 6개사 온신협 대표자와 신문협회 디지털특위로 꾸려진 협의체는 6일 오후 2시 네이버와 ‘AI 학습 데이터 사용료’, ‘파트너십’ 등과 관련해 협의를 진행한다. 일각에선 네이버가 보상 기준을 정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지만 실무자급이 참석할 것으로 전해지며 첫 협의는 양측 요구사항을 확인하는 차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언론과 AI 기업이 뉴스 저작권을 두고 맺는 국내 첫 계약의 지급 기준과 대가금액 등은 향후 타 AI 기업과 협상에서 준거가 될 수 있는 만큼 상징적인 자리라 하겠다.
온신협·신문협회 협의체처럼 언론사들이 대오를 꾸린 행보는 의미 있지만 앞으로 전망을 낙관하긴 쉽지 않다. 일단 협상에서 ‘칼자루’를 쥔 쪽은 AI기업이라서다. 해외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지만 국내에서 뉴스를 데이터 단위로 판매해 온 언론의 경험 자체가 희소하다. 고품질 우리말 자원 구축을 위한 2019년 국립국어원의 ‘말뭉치사업’에 언론재단이 참여해 30개 지역언론 10년치 데이터를 9억6000여만원에 판매하고, 큰 매체는 개별 협상을 한 사례 정도가 전부다. 적정 가격을 알기 어려운 여건에서 기업의 제시액을 기본으로 협상이 진행되기 쉽고, 이는 언론사 기대수준과 차이가 클 수 있다.
협의체가 개별 협상으로 와해될 소지도 거론된다.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와 AP통신, ‘바드’의 구글과 뉴욕타임스의 ‘1억 달러’ 계약처럼 해외에선 이미 개별 계약이 잇따르는 분위기다. 국내에서도 AI 기업이 대형언론과 개별 접촉해 협상할 경우 현재 대오는 쉽사리 무너질 수 있다. 중소 매체는 협상대상조차 되지 못하고, 생성형 AI로 포털의 현 검색기반 비즈니스모델이 바뀌는 시점 가장 크게 파장을 겪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위근 퍼블리시 최고연구책임자는 “생성 AI를 개발하고 상업화하는 업체들은 주요 언론사와 개별 계약을 하는 게 최근 흐름이다. 이미 AI의 학습은 돼 있고 정확도를 위해 언론사 데이터를 쓰는데 이전처럼 많은 언론과 할 필요가 없다”면서 “기존 포털이나 플랫폼은 정보를 배열해주는 검색시장에 기반했지만 이젠 나열이 아니라 결과를 노출하기 때문에 큰 언론사는 유리할 수 있다. 반면 포털과 관계 속에 언론에 전재료나 광고료를 배분하는 모델은 유효치 않아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큰 언론이나 역사가 깊은 매체, 통신사와 방송사 일부, 대표 지역언론이나 특화된 매체 정도가 협상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생성형 AI가 언론사에 미칠 영향과 대비, AI 기업과 협상은 이제 막 시작 단계다. 언론 현실과 전반의 디지털 역량은 물론 정치권이 ‘AI 산업 진흥’에 방점을 두고 추진하는 여러 법제도 유리한 상황이 아니다. 디지털 뉴스 시장에서 완전히 기술기업에 종속됐던 지난 20여년 과거가 반복되는 것인지 언론계가 기로에 놓인 시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언론학자는 “주요 매체인 네이버 80여개 CP사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 빼고 어려운 시기가 전망되는데 ‘나 있을 때 이거 꼭 해야하나’란 인식을 가진 경우가 언론사 수뇌부엔 여전히 많다. ‘클로바X 답변이 별로던데’가 아니라 이 데이터 처리 도구의 함의를 알고 대비해야 하는데 검색창이 바뀌고서야 충격을 받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어 “2010년대 중반 이후 디지털 혁신에서 자체 사이트와 브랜드 강화 등이 지속 얘기됐는데 결국 언론사들의 혁신 성과와 역량이 이 기술로 인해 시험대에 오르는 시점이 앞당겨진 듯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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