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재의 매일밤 12시]내가 모르는 선수입니다, 돈 줄 테니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마이데일리 = 최용재 기자]지난 시즌 잉글랜드 첼시의 부진이 절정으로 향했을 때, 스탬포드 브릿지를 채운 첼시 팬들이 한 명의 이름을 외치는 장면이 목격됐다.
"로만 아브라모비치!"
그는 전 첼시 구단주다. 러시아 출신 석유 재벌로 2003년 첼시를 인수했다. 이후 첼시의 운명은 바뀌었다.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는 천문학적인 투자를 감행하며 그저 그런 팀 첼시를 최강의 팀으로 성장시켰다. 첼시의 황금기를 만든 1등 공신이다.
그는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첼시를 매각하고 떠나야 했다. 그가 떠난 빈자리는 컸다. 첼시는 거짓말처럼 추락했고, 첼시 팬들은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를 그리워했다.
간혹 감독을 무자비하게 경질하는 모습에서 강압적인 독재자의 모습을 드러내기는 했어도, 첼시 부흥을 이끈 주역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때문에 첼시 팬들이 가장 존경하는 구단주로 기억되고 있다.
첼시 황금기의 또 다른 주역. 조제 무리뉴 감독을 빠뜨릴 수 없다. 첼시와 함께 세계적 명장으로 올라선 무리뉴 감독이다.
아마도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와 가장 궁합이 잘 맞았던 감독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일화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구단주와 감독의 신뢰, 구단주와 감독의 소통, 구단주와 감독의 존중이 어떤 결과 만드는지 보여주는 일화다.
때는 2004년 7월. EPL 우승을 간절히 원했던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와 무리뉴 감독은 선수 보강에 사활을 걸었다. 가장 중요한 포지션, '최전방 공격수' 영입이 아직 이뤄지지 않았던 시기. 구단주와 감독은 공격수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아브라모비치 구단주가 물었다.
"공격수로 원하는 선수가 누구인가요?"
무리뉴 감독이 답했다.
"디디에 드로그바입니다."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는 다시 물었다.
"그 선수는 누구입니까? 어떤 팀에서 경기를 뛰고 있습니까?"
무리뉴 감독은 할 말이 많았다. 사실 무리뉴 감독은 오랜 기간 드로그바를 지켜봤고, 그의 재능을 확신하고 있었다. 무리뉴 감독은 드로그바가 프랑스 르망, 갱강에서 활약할 때부터 주시했고, 당시에는 마르세유에서 뛰고 있었다. 첼시로 영입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무리뉴 감독이 더 설명을 하려는 찰나,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는 더 설명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는 이렇게 말하고 대화를 끝냈다. 무리뉴 감독에 대한 '절대 신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이적료를 주겠습니다.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적료는 2400만 파운드(402억원) 들었다. 드로그바는 첼시 유니폼을 입었다. 자신이 모르는 무명의 선수를 데려온다는 감독의 의견에 돈과 믿음으로 보답한 효과. 2004-05시즌 첼시는 1954–55시즌 이후 50년 만에 1부리그 우승컵을 들었다. EPL이 창설된 후 첫 번째 우승이었다. 리그컵도 우승했다. 드로그바는 데뷔 시즌 총 16골을 폭발시켰다.
이후에는? 드로그바의 첼시는 EPL 우승 4회를 차지했고, 첼시의 염원이었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우승컵도 품었다. 드로그바는 총 14개의 우승 트로피를 수집하며 첼시의 상징이 됐다. 또 첼시를 넘어 EPL 최고의 공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지금까지 드로그바는 '아브라모비치 시대'를 대표하는 선수, 무리뉴 감독 커리어 최고 영입이라는 역사로 기억되고 있다.
[최용재의 매일밤 12시]는 깊은 밤, 잠 못 이루는 축구 팬들을 위해 준비한 잔잔한 칼럼입니다. 머리 아프고, 복잡하고, 진지한 내용은 없습니다. 가볍거나, 웃기거나, 감동적이거나, 때로는 정말 아무 의미 없는 잡담까지, 자기 전 편안하게 시간 때울 수 있는 축구 이야기입니다. 매일밤 12시에 찾아갑니다.
[로만 아브라모비치 전 첼시 구단주, 조제 무리뉴 감독, 디디에 드로그바. 사진 =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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