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고도 안타까운 예술노동자 통계 [한국의 창(窓)]
2021년 600만 원대 머문 예술인 소득
그래도 예술인 선택은 내재가치 중시
예술노동 가치 보전할 사회정책 시급
요 며칠 예술노동자의 불안정성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들여다보고 있다. 다양한 분야 예술가들의 연평균 소득은 2,000만 원에 한참 못 미친다. 이 숫자만으로는 설명 안 되는 게 더 있다. 예술인의 소득이란 들쭉날쭉한 환경에서 수행하는 크고 작은 창작과 비창작 활동들, 자비를 들여야 기회라도 얻을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의 총합이라는 점이다. 다수의 일을 저글링하며 살아가는 예술가들이 정작 예술창작 활동으로 번 돈은 전체 소득의 40%에도 못 미친다. 생계를 위한 다른 일을 두 배 정도 해야만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예술가의 삶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3년에 한 번 시행하는 '예술인 실태조사'에서도 이런 현실은 확인된다. 예술인 연평균 소득은 2018년 기준 1,281만 원인데, 이마저 소득이 상대적으로 월등히 높은 건축예술가가 포함된 수치다. 그 외 예술가들의 수입은 한참 더 적다는 의미다. 이 평균은 팬데믹 중인 2021년 694만 원으로 반 토막 났다. 다시 강조하지만 월평균이 아니고 연평균 소득이다. 극도로 낮은 수입과 불안정한 소득 구조로 인해 예술가들이 지탱하는 창작의 삶은 '더 이상은 예술 경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이성적 판단과 하루하루 맞서는 중이다.
이런 데이터를 계속 읽다가 어느 대목에서 결이 다른 통계에 눈이 멈췄다. 작품이나 프로젝트 참여 여부를 정할 때 고려할 법한 열 개 정도 항목을 제시하고 각각에 중요도 점수를 매겨달라 했을 때 응답자들은 '예술적 성장 가능성'과 '예술적 흥미' 등 내재적 가치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반면 '수입'은 그리 높은 점수를 받지 않았다. 일면적으로 해석할 결과는 아니다. 단일 작품으로 높은 수입을 올릴 기회가 희소해 수입이 그다지 덜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어버렸을 수도 있다. 최근 만난 일군의 예술가들은 개개 작품에서 많은 소득을 기대하기보다 가능한 한 많은,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에 참여함으로써 소득도 얻고 관계를 넓혀 다음 기회도 기대하는 전략적 선택을 하고 있었다.
개중에는 분명 예술가로서의 정체성과 진정성을 다짐하며 소득에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준 예술가도 있을 텐데 이 점에 마음이 갔다. 1,000인 이상 대기업에 다니는 정규직 고소득 노동자 중 취업 시 1순위 고려사항으로 '임금'을 선택한 비율이 2014년 35.4%에서 2019년 50.1%로 대폭 증가한 '대졸자 직업이동 경로 조사'의 통계 수치나, 2021년 기준 '보람·자아실현', '발전성·장래성' 등이 직업선택 고려사항 1순위로 꼽힌 비율이 5%에도 못 미치는 사회조사 결과와 크게 대비되어 보였기 때문이다. 한국의 직업과 산업구조는 점점 더 지식, 창의 사회의 면모로 바뀌어 가고 있는데, 사회 전반은 내재적 가치보다 도구적 가치를 중시하고 미래를 준비하기보다 현재에 급급한 모습을 예전보다 한층 서슴없이 드러내고 있다. 도구적 가치가 팽배한 사회에서 사회 신뢰와 연대적 가치, 그리고 구성원의 행복과 안전이 자라나기 어렵다. 극단의 불안정(precarity)을 관리하며 진정성과 정체성을 지탱하려 분투하는 예술노동자가 탄광 속 카나리아로 희생되지 않으려면 예술 노동을 사회의 품격을 한 단계 높이는 기반으로서의 사회노동으로 인정하고 더 세밀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예술인 기회 소득처럼 소득을 보전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고 있다는 점은 반길 만하다. 그러나 조사를 통해 더 알게 된 사실들, 예컨대 프리랜서로서 예술가들의 단명 혹은 역의 U자형 소득의 이면에 젊은 몸과 체력을 요구하는 노동시장이 있다는 사실 등은 더 세밀한 정책의 필요성을 말해준다. 예술 노동이라는 본령을 유지하기 위한 소득활동은 시간과 공간이 자유롭지만 역시 전혀 보호장치를 갖추지 못한 취약 프리랜서 노동, 예컨대 최근 확산되고 있는 비가시적 마이크로 노동 등에 연루되기 쉽다. 취약노동자가 더 위험해지지 않도록 하는 사회정책이 시급하다.
권현지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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