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세대가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김학선의 음악이 있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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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8월 6일, 이상은은 '벼락스타'가 되었다.
"하룻밤 사이에 스타가 됐다"는 말이 흔하게 쓰이지만 이상은에게는 그 하룻밤마저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날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를 노래하는 이상은의 모습을 본 많은 이가 그의 대상 수상을 점쳤다.
이상은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아저씨'들이 '채집'해온 사랑 노래를 부르는 것도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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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스타가 된 이상은은 행복했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가 음악을 좋아하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을 때 품었던 낭만 같은 건 이미 산산조각 나 있었다. 만 18세의 나이에 데뷔한 뒤 본 방송계의 모습은 큰 충격이었다. 촌지가 오갔고, 접대가 이어졌다. 훗날 그는 한 인터뷰에서 “비즈니스라니, 그것은 너무 미화한 말이다”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이상은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아저씨’들이 ‘채집’해온 사랑 노래를 부르는 것도 싫었다. 그는 부르기 싫은 노래를 녹음하고 무대에 섰다. 환멸이 이어졌다.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는 자각이 일었다.
이상은은 스스로 그 자리를 벗어났다. 미술 공부를 한다는 이유를 대긴 했지만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도피였다. 미국과 일본에 머물며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애쓰던 자기 생각을 정리해 글을 쓰고 멜로디를 붙였다. 세 번째 앨범부터 더 이상 아저씨들이 만든 곡이 아닌 자신의 곡을 수록했고, 삶에 대한 고민은 이후 ‘언젠가는’이라는 명곡으로 이어졌다. 가요계를 떠났던 그는 ‘언젠가는’과 함께 스스로를 지키고 빛낼 수 있는 예술가가 돼 돌아왔다.
올해 9월 2일 강원 철원군 고석정에서는 ‘언젠가는’이 울려 퍼졌다. 매해 철원에서 열리는 ‘DMZ 피스트레인 페스티벌’ 무대에 이상은이 올랐다. 최근의 음악 페스티벌 경향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많은 젊은이가 철원에까지 와 ‘자기만의 리듬에 맞춰’ 음악을 즐겼다. 무대에 오른 이상은은 자신이 데뷔했을 때 ‘우주의 먼지’였을 아이들이 이제 자신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따라 하는 게 신기하다고 말했다.
가장 신기했을 광경은 마지막 노래 ‘언젠가는’을 모두가 따라 부를 때였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20대 초반의 젊은이가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라는 노래를 만든 건 다소 과해 보인다. 하지만 이는 이상은이 그만큼 치열하게 고민하고 세상을 살아온 증거이기도 했다. 그가 고민 없이 방송계에 정착했다면 우리는 ‘언젠가는’이란 명곡 대신 이른바 ‘떼토크’ 정보 프로그램에 패널로 앉아있는 이상은을 만났을지도 모른다. 모든 세대가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남게 된 건 그래서 모두에게 다행이다. 그 치열한 고민의 결과가 만들어진 지 30년이 됐음에도 아름답게 철원의 밤에 울려 퍼졌다.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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