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 알리는 주식시장 ‘카나리아’, 장단기 금리 역전 말고도 더 있다[윤지호의 투자, 함께 고민하시죠]

기자 2023. 9. 5.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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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

위험을 알려주는 징후를 빗댄 표현으로 ‘탄광 속의 카나리아’가 있다. 별다른 안전장치가 없던 시절 광부들은 갱도에 들어갈 때 카나리아 세 마리를 새장에 넣어 가져갔다. 탄광 내부에 일산화탄소가 퍼져 그중에 한 마리라도 지저귐을 멈추면 무색무취의 일산화탄소가 인체를 해하기 전에 알아차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에 쉴 새 없이 지저귀지만 주변의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카나리아의 습성을 활용한 것이다.

주가는 기업 이익을 보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따라간다. 주식이 오르고 내리는 이유가 금리도 환율도 아닌 기업 이익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투자자는 좀 더 빠른 감지를 원한다. 주식 투자의 세계에도 카나리아는 존재한다면, 그것은 기업 이익이 아닌 금리다.

단기금리는 장기금리보다 낮은 것이 일반적이다. 친구가 급전을 필요로 할 때를 떠올려보자. 며칠 뒤에 갚겠다고 하면 이자를 받기 민망하다. 하지만 1년 이상이라면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내 돈을 빌려간 친구에게 1년이 넘는 기간은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막연한 미래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급전이 필요할 때도 생각해보자. 나를 믿고 돈을 빌려주는 이를 찾는 것은 힘들다. 무엇보다 기간이 길어지면 고려해야 할 변수가 늘어나다 보니 돈 구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러다 믿고 돈을 상당 기간 빌려주는 사람이 나온다면 진심으로 고마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금리는 감사와 같다. 오랜 기간 빌리면 감사의 마음이 더 커지는 게 당연하다. 이렇듯 금리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채권자든 채무자든 이후 기대와 전망이 반영되는 정도가 더 크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단기금리와 장기금리의 일반적 관계가 흔들릴 때가 있다. 미래가 불투명해 보이고, 경제주체들의 기대심리가 흔들리면 장기금리가 단기금리보다 더 낮아지기도 한다. 경기 침체의 선행지표로 흔히 언급되는 장단기 금리 역전이다. 인플레이션 시기에 중앙은행이 자기 할 일을 할 때 출현하곤 한다. 한 방에 인플레가 잡히면 좋겠지만, 대개는 인플레와의 사투 속에 정책금리를 지속 인상하게 된다. 단기금리와 정책금리는 별 차이가 없다. 중앙은행은 개인이 아닌 다양한 금융기관과 돈을 거래하고 그 과정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 그 결과 정책금리를 올리면 단기금리가 높게 유지될 수밖에 없으므로 기업이나 개인은 돈을 빌리기 어려워지고 이윽고 경제는 활력을 조금씩 잃는다. 이때쯤 미래 경기에 불안을 느끼는 이가 늘어나면 미래 경기의 가늠자인 장기금리가 내려가게 된다.

과거 미국에서 장단기 금리 역전 후 1년을 전후해 경기 침체가 출현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보니, 이를 맹신하는 분들을 보곤 한다. 하지만 장단기 금리 역전을 경기 경착륙 내지 주가 폭락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장단기 금리 역전 이후 경기 하강의 강도는 제각각이다. 실제 경제 하강이 어느 정도일지를 가늠하는 필터링이 필요하다. 장단기 금리 역전 이후 바로 위험자산 회피에 나서기보다, 실제 경제지표들에 변화가 생긴 뒤에 행동하는 게 낫다.

올해 상반기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소비, 투자, 고용은 견고했다. 하지만 이제 경제지표들은 이상 징후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추정치(연율)는 6월에 비해 소비, 투자, 순수출 모두 감소하고 있고, 미국 소비를 이끌었던 고용지표들도 흔들리고 있다. 시장은 당장은 나쁜 뉴스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금리 인상이 멈추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주가도 상승으로 화답하고 있다.

하지만 머지않은 시기에 이러한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 경제지표들이 점점 더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 나쁜 뉴스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기에 들어설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잡혀 금리가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경기 하강이 본격화되며 금리가 내려가는 상황이다.

강한 긴축에도 지난 1년간 미국 경기는 견고했다. 단기금리는 지금, 장기금리는 미래를 본다. 장단기 금리 역전이 출현한 지도 이제 시간이 꽤 지났다. 카나리아의 지저귐이 멈춰가고 있다. 갱도에 일산화탄소가 가득해질지, 숨쉴 정도의 소량만 유출될지는 알 수 없지만, 굳이 탄광 안만을 고집하지는 말자. 2023년 4분기, 잠시 주변을 살필 때가 된 것이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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