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아프리카에 “곡물 지원”…식량 위기 주범의 검은 속내
러·튀르키예 정상회담 ‘빈손’
흑해곡물협정 재개 무위로
푸틴 “서방, 철수 강요” 핑계
우크라에 수입 의존 국가들
러 영향력 속으로 빨려들어가
세계 식량 위기와 직결된 흑해곡물협정 재개의 돌파구가 될지 관심이 쏠렸던 러시아와 튀르키예 간 정상회담이 결국 별다른 성과 없이 마무리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는 곡물협정을 재개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도 서방이 러시아 측 요구를 먼저 수용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흑해 항로를 봉쇄해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의 식량 위기를 촉발한 러시아는 값싼 자국산 곡물을 무기로 아프리카에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를 노골화했다.
푸틴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서방의 제재 등으로) 협정에서 철수하도록 강요당했다”고 주장하며, 서방이 러시아산 곡물·비료에 대한 제재 완화 등 러시아 측 요구를 들어줘야 협정에 복귀할 수 있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는 “곡물 가격은 하락하고 있고, 식량은 부족하지 않다”면서 러시아가 곡물협정을 파기해 세계 식량 위기가 초래됐다는 비판을 반박했다.
아울러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전쟁 발발 이후 식량 안보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식량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그는 “우리는 6개 아프리카 국가들에 식량을 무료로 공급하고, 운송과 물류도 무료로 진행할 계획을 갖고 있다”면서 “거의 마무리 단계”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식량 지원을 받는 국가는 부르키나파소, 짐바브웨, 말리, 소말리아, 에리트레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이다.
그간 러시아는 세계적 식량 위기 와중에 값싼 자국산 곡물을 미끼로 아프리카 개발도상국을 자국에 경제적으로 종속시키려 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아프리카의 식량 안보를 위협해온 러시아가 이들 국가들이 러시아산 곡물에 의존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는 지난해 전쟁 발발 전까지 우크라이나 곡물의 최대 수입처였다. 푸틴 대통령은 식량 지원을 통해 아프리카 개발도상국들을 달래는 한편 지난달 아프리카 정상들과 만나 “신식민주의와 함께 맞서 싸우자”면서 외교 포섭전 역시 강화해 왔다.
6개국에 대한 곡물 ‘무상 지원’ 외에도 러시아는 최근 이집트와 러시아산 밀 수출 거래를 마무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집트 정부는 최근 50만t에 이르는 러시아산 밀을 공개 입찰방식이 아닌 비공개 거래를 통해 수입하기로 했다. 이집트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우크라이나산 밀 수출이 중단되자 상대적으로 값싼 러시아산 밀에 의존해왔다. 거래에 관여한 이집트 관계자들은 기존 입찰가 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가 이뤄졌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러시아는 지난 7월 흑해곡물협정 파기를 선언한 뒤 지난 한 달여간 우크라이나의 주요 곡물 수출항과 농업 인프라 시설에 포격을 퍼부었다. 흑해를 통한 수출길이 막히자 우크라이나는 다뉴브강을 통한 내륙 수출을 모색해 왔지만, 다뉴브항의 주요 항구 역시 러시아군의 집중 포화 대상이 됐다.
푸틴 대통령은 흑해곡물협정으로 이득을 본 것은 아프리카와 중동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미국과 유럽 등 서방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는 이날 회견에서 “지난 1년간 흑해곡물협정에 따라 수출된 (우크라이나) 곡물의 70%를 부유한 나라들이 가져갔다”면서 “서방이 러시아를 속였다”고 말했다. 협정의 ‘중재자’를 자처한 에르도안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곡물협정과 관련해 러시아에 대한 입장을 완화하고 유럽이 아닌 아프리카에 더 많은 곡물을 수출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유엔에 따르면 흑해곡물협정을 통해 수출된 곡물의 57%는 빈곤국을 포함한 개도국에 전달돼 왔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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