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집착’에 1만3000명 당했다…신당역 1년 됐지만

권선미 기자(arma@mk.co.kr) 2023. 9. 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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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역 스토킹 살인 범죄 1년
서울교통공사 안전 대책 미흡
직원 10명중 9명 혼자서 근무
최근 5분기 피해자 1만3천여명
여성 피해자 男보다 4.5배 많아
“가해자 중심 형사제도 개편해야”
지난해 ‘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됐던 추모공간. [매경DB]
이른바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발생 1년이 되어가고, 스토킹처벌법 시행은 2년이 돼가고 있지만 스토킹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은 지난해 9월 14일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 전주환(32)이 서울교통공사 입사 동기였던 20대 여성 역무원을 흉기로 살해한 사건이다.
지난 9월 검찰로 이송되는 전주환씨 [사진 = 연합뉴스]
전주환은 피해자에게 2019년 11월부터 3년 가까이 350여 회 이상 전화와 문자를 보내는 등 스토킹했으며, 피해자가 자신을 스토킹 등으로 고소해 재판에서 징역 9년을 구형받자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4일 서울교통공사 노조 등 여러 단체는 신당역 10번 출구 앞에서 ‘신당역 살인 사건 1년 추모 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신당역 살인 사건뿐만 아니라 7년 전 강남역 살인 사건, 최근 신림동 성폭행 살인 사건을 거론하며 “언제까지 여성은 출근길에서, 일터에서, 귀갓길에서 두려워해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정의당 이은주 의원은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 현장 직원에 관해 2인 1조 안전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역 직원 10명 중 9명이 여전히 나 홀로 근무로 불안과 위험에 노출돼 있다”며 “신당역의 충격과 불안은 현재 진행형”이라고 지적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직장 내 스토킹·성범죄 실태’를 발표했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경찰청에서 받은 지난해 2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 스토킹범죄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관련 신고 처리 현황을 인용, 피해자가 총 1만3774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피해자 성별은 여성(1만1112명·80.7%)이 남성의 약 4.5배였다. 2020년 1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 3년여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피해를 신고한 경우도 여성(1045명)이 남성(79명)의 약 13.2배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4일 오전 서울 신당역 앞에서 직장갑질119 주최로 열린 신당역 살인사건 1주기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관련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직장갑질119는 직장 내 성범죄에 대한 처벌 등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다며 정부가 이를 방치한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실이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올해 7월까지 남녀고용평등법 제12조(직장 내 성희롱 금지) 관련 신고 사건 3186건 중 7.1%(225건)에만 사업주에게 과태료가 부과됐다. 같은 기간 피해자 등에 대한 불리한 처우를 신고해 기소의견으로 송치된 경우는 449건 중 35건(7.8%)이었다.

최근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스토킹 살인사건 관련 국가배상금 소송에서 “112 신고에 ‘여자가 살려달라고 소리쳤다’는 내용이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남자가 여자를 폭행했다는 것일 뿐” 등의 이유로 경찰의 안일한 대응을 눈감아준 것으로 드러나 큰 파장이 일기도 했다.

이 후보자는 서울중앙지법에서 근무하던 2007년 7월 스토킹 살인 피해자 유족들이 사건 당시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의 조치가 미흡했다며 제기한 국가배상금 청구소송에서 ‘경찰들은 잘못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일선 경찰관들의 안일한 대응이 스토킹 범죄를 막지 못한다고 꾸준히 지적되어온 바 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는 “스토킹으로 인한 강력 범죄 등 증오·분노 범죄는 아무리 처벌이 강화돼도 확신범행이므로 예방이 어렵다”며 “경찰들이 강력한 법 집행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는 이상 적극적인 대응은 요원하다”고 말했다.

이어 “안전조치용 위치 추적 장치인 ‘스마트워치’를 피해자에게 채우고 있는데 이를 가해자에게 채워 경찰이 실시간으로 위치를 추적하고 동선을 제한하는 등 가해자 중심인 형사 제도를 피해자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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