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하이킥] 간토대학살 연구자 "우리 정부 아무 노력 없어.. 부끄럽고 참담"
- 간토 조선인 대학살은 '제노사이드'
- 3.1운동 이후 日에 한국인에 대한 두려움과 편견 퍼져
- 日 국가가 유언비어 만들고 개입하며 '집단학살'까지
- 아직도 정확한 희생자 수 몰라.. 6661명으로 추산 중
- 정부, 진상조사나 日에 책임 묻기 위한 활동 없어
- 추도식 참여가 국가보안법 위반? 부끄럽고 창피한 일
- 특별법 통과시켜서 일본에 자료 요구해 진상 규명해야
- 9월 1일, 국가추도일로 정해야.. 기억해야 반복되지 않아 김응교>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프로그램 : 신장식의 뉴스하이킥 (MBC 라디오 표준FM 95.9Mhz /평일저녁 6시5분~8시)
■ 출연자 :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
◎ 진행자 > 진상규명 작업이 아직도 안 끝난 거네요. 100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간토 조선인 대학살 6600명에서 2만 명까지 추산되는 진상 규명 작업조차 아직 일어나 제대로 끝나지 않았고 그 다음에 최근에 관방장관은 기록이 없다 이런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진상규명을 할 생각이 없는 거죠. 실은. 그래서 관련해서 간토 조선인 대학살을 연구한 전문가에게 직접 이야기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숙명여대 김응교 교수님 전화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 김응교 > 안녕하세요.
◎ 진행자 > 간토 조선인 대학살 관련 연구를 얼마나 해오신 건가요?
◎ 김응교 > 저는 평생 해오신 분에 비하면 아주 부족합니다. 한 20여 년 됐습니다.
◎ 진행자 > 20년 밖에 안 됐다.
◎ 김응교 > 예, 1998년경에 제가 유학을 갔는데 일본에 있었는데 박사 논문 쓰고 윤동주 연구자인 와세다대학교 오무라 마스오 교수님께서 어느 날 같이 가고 싶은 데가 있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그게 2001년이었어요. 근데 어느 날 봉고 벤을 준비하셨더라고요. 그래서 탔더니 치바에 있는 조선인이 살해당한 곳 그 다음에 거기서 모시고 있는 절 그 다음에 자위대 부대 앞을 데려가는 거예요. 교수님이 거기가 낙하산 부대인데 지금은 거기가 옛날에 수용소였던 거죠. 한국 사람들 다 수용했던 곳 그리고 추모비가 있는 곳을 데려가고 활동가들을 만나게 해 주시고요. 결정적으로 며칠 뒤에 제 연구실에 오셔서 서류 봉투를 주셨는데 거기에 여러 자료들이 많이 있었어요. 살해된 지역 지도하고 근데 그때만 해도 이 정도로 많이 안 알려져 있었거든요. 선생님이 이걸 연구해서 글로 써보지 않겠냐고 그래서 제가 연구하면 학자로서 보람이 있겠다 하고 시작했었죠. 그래서 다시 3년 만에 다시 글을 쓰면서 학계로 돌아왔습니다.
◎ 진행자 > 20여 년간 간토대학살을 연구하셨는데 아시아판 홀로코스트다 이렇게 표현들을 합니다. 조선인 학살이 벌어진 배경이 뭐고 어떤 식으로 학살이 벌어졌는지 간단하게 설명을 좀 해 주시죠.
◎ 김응교 > 홀로코스트라는 것보다 학술적으로는 제노사이드라는 규정을 여러 번 해요. 민족과 민족이 죽인 거 있지 않습니까?
◎ 진행자 > 인종 학살.
◎ 김응교 > 네, 인종 학살 이렇게 보는 거죠. 왜 그러냐면 제 책에 제가 2장에 6가지 배경을 써놨는데요.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는 3.1운동 이후의 두려움 일본식 두려움이죠. 1919년. 한국 사람들이 복수할지 모른다 이런 것들이 보편적으로 퍼져 있었고 그것이 한국인에 대한 편견이 만들어지고 개별적인 편견이 집단적인 차별로 승화되는 겁니다. 거기가 국가가 유언비어를 만들고 개입하면서 집단학살로 퍼져버린 거죠. 제노사이드. 두 번째가 일본의 노동시장 오사카 같은 경우에는 한국의 1910년대부터 엄청나게 많이 노동자들이 들어가거든요. 그래서 문학 작품에 많이 나오는데 한국 사람들이 노동시장을 뺏었다고 생각하는 게 많이 퍼져 있었어요. 세 번째는 후테이센진이라고 조선인들은 굉장히 불운하다.
◎ 진행자 > 불령선인.
◎ 김응교 > 령자가 즐거울 령(逞)자거든요. 불령이면 즐거움을 모르고 늘 불평만 한다 이런 거죠. 네 번째 결정적인 건 유언비어죠. 가짜뉴스를 퍼뜨린 거죠.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퍼뜨리고 사회주의자와 함께 불을 지르고 세 가지인데요. 그 다음에 여자들을 강간한다. 그 다음에 다섯 번째인데요. 자경단이 이제 움직이기 시작한 거예요. 이 자경단은 원래 이거 있기 전에 벌써 1918년에 쌀 폭동이 있었거든요. 그때 막 사람들이 경찰서를 갖다가 거의 지역에 따라서 50% 내지 70%를 파괴시켜버려요. 마을 사람들이 유지들이 돈을 모아가지고 자기 군대를 만드는 거죠. 칼도 나눠주고 이러면서 그게 조직화돼 있는 상태에서 이 일이 퍼지니까 착한 사람들도 어린애들도 칼을 들고 나가서 사람들을 죽인 거예요. 여섯 번째는 마지막인데 일본만이 최고의 나라라는 국가주의에 세뇌되어 있던 상태였죠. 신의 국가라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제가 지난주에 일본에 있었는데 많은 일본 사람들 식당에 가서 또 운전수랑 드라이버랑 이렇게 얘기를 하니까 완전히 국가에 세뇌돼 있는 분이 많으세요. 오염수나 이런 것도 우리는 신의 나라고 정부가 그럴 리는 없다. 아시아의 나라에 나쁜 물을 퍼뜨릴 리는 없다. 이런 식으로 생각한 거죠.
◎ 진행자 > 일단 희생자 수를 6600여 명부터 2만 명이 넘는다는 기록도 있는데 이게 추산이 되나요?
◎ 김응교 > 할 수 있는 거 최대한 노력을 해서 해야 되는 거죠. 중국인들은 그래도 비교적 실제 피해를 조사했다고 그렇게 알려져 있습니다.
◎ 진행자 > 희생자 명부가 있다고 하는데.
◎ 김응교 > 우리가 같이 연대해서 조사를 해야 할 부분이거든요.
◎ 진행자 > 연대라고 하면 일본 중국
◎ 김응교 > 일본 시민, 그 다음에 한국, 한국 시민들, 한국 정부가 나서주셔야죠. 그 다음에 중국 정부, 또 중국 시민들, 그리고 또 북쪽에 있는 지금 조총련이라고 하지만 북쪽에 있는 쪽에도 희생자가 많으니까 북쪽 출신들. 그것도 같이 연대해가지고 조사를 해야지 지금 정확한 숫자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6661명이 그래도 12월 달에 23년 3개월 지나서 몇 달을 조사한 거니까 그래도 가장 구체적인 건 이 숫자였죠. 지역별로 조사한 거죠. 사이타마에서는 몇 명 도쿄에서는 몇 명 요코하마에서는 몇 명 이런 식으로 조사한 것이니까 현재로는 그 숫자가 제일 정확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진행자 > 한일 시민단체나 역사학계 등 민간에서 진상규명 요구하고 추모제도 이어지고 있는데 일본 정부는 학살기록이 없다고 합니다. 일본 정부의 태도는 그렇다 치고 우리 정부는 간토 조선인 대학살과 관련해서 진상조사 내지는 일본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 게 있습니까?
◎ 김응교 > 지금까지 명확히 얘기하면 없죠. 이번이 100주기였으니까 지금이라도 했어야 하는데 하지도 않으면서 거기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국가보안법이니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것이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한 얘기입니까. 지금 해야 할 일은 지금 유기홍 국회의원이 100명이 발의해서 특별법을 만들려고 하거든요. 중요한 것이 뭐냐 하면 특별법이 통과되면 네 가지를 해야 합니다. 첫 번째는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진상규명해야 되고요. 대통령이 그 다음에 정부에서 일본에 자료를 요구해야 돼요. 일본 측이 자료 갖고 있거든요. 없는 척하는 거잖아요. 지금. 일본 측에서도 조선인 145명이 학살됐다는 가해자 이름까지 적힌 일본 공문서가 있어요. 그런데 지금 모른다고 하거든요. 두 번째는 9월 1일을 국가추도일로 해서 전 국민이 기억해야 합니다. 일본 국민도 그렇고 한국 국민도 이래야지 제노사이드가 반복되지 않거든요. 세 번째는 그분들을 위한 간토대학살 섹션이 독립기념관뿐만 아니라 또 있어야 되는데 있는 것도 없애려고 한다는 그런 지금 소문이 퍼지고 있어요. 이것까지 없애려고 한다는. 민간에서 추도회를 했을 때 학살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잖아요. 그 다음에 네 번째는 가장 중요한 건데 한인교과서에 한국 학생들도 이걸 몰라요. 교과서에 안 나오니까 이런 걸 일본 교과서에도 얼버무리듯이 사람들이 죽었다 이렇게 나오거든요. 정확히 피해자 그 다음에 두 가지가 명확히 적혀야 됩니다. 사건이 어디서부터 출발했고 국가에서 묵인 내지 조장했고 숫자가 적혀 있고 그래서 이 왜곡과 삭제의 죄악에 맞서서 기억의 복원과 더불어서 기억의 연대가 필요한 것이지요.
◎ 진행자 > 알겠습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응교 > 감사합니다.
◎ 진행자 > 지금까지 숙명여대 김응교 교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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