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정책 역주행…재생에너지 안 늘리면 사람 죽고 경제도 죽어”[논설위원의 단도직입]

이명희 기자 2023. 9. 5. 20:5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기후경제학자, 홍종호 교수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OECD 국가 중 기후변화로 인한 경제 전환에 제일 준비 안 된 나라가 한국”이라며 대응이 시급하다고 말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경제·산업과 기후·환경을 연결하는 활동을 해오고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미시간주립대와 코넬대에서 환경경제학과 재정학을 공부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연구위원과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를 거쳐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기후·환경·에너지경제학과 지속가능발전 정책을 가르치고 있다. 퇴임 전까지 제자 100명의 논문 지도를 꿈꾼다.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를 지냈고. 사단법인 에너지전환포럼 상임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기후위기는 경제 문제’라는 화두를 알리기 위해 JTBC <차이나는 클라스>, tvN <미래수업> 등에 출연했다. 올해 초 <기후위기 부의 대전환>을 출간했다.
탄소중립 위해 재생에너지로 전환 불가피…안 바꾸면 수출 위주 경제 치명적
원전, 지리적 여건상 지속 가능하지 않아…에너지 정책 정쟁화는 불행한 일
선진국 재생에너지 시장 선점 경쟁…우리나라 ‘규제 강화’는 세계 흐름 역행
한전·가스공사 적자는 요금 정상화로 풀어야…가격 정책으론 절대 해결 못해
해수면 상승·침수 우려로 고지대 집값 오르고 먹고사는 데도 직접적인 영향

올여름 한반도엔 폭염과 31일간의 장마가 몰아쳤고, 홍수·가뭄·산불이 세계 곳곳을 덮쳤다. 자연이 보내던 경고를 우리가 무시한 사이, 기후재난 피해가 커지고 있다. 현실로 다가온 기후위기 그림자는 일상을 파고들었다. 극한기후가 일으키는 해수면 상승·침수 우려로 고지대 집값이 오르고, 쌀·커피 등 식량 가격이 급등했다. 매운 소스 ‘시라차’(스리라차) 가격이 오른 것도 멕시코 지역 가뭄 때문이라니, 빙하 조각 위 위태로운 북극곰 얘기보다 더 정신이 번쩍 든다. 부쩍 잦아지고 세진 극한 기상현상은 기후위기가 먼 미래 일이 아님을 보여준다.

기후경제학자인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한국이 기후위기에 대응하지 못하면 경제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기후경제학은 기후변화 영향을 경제·산업과 연결지어 분석하는 학문이다. 한국사회는 기후위기를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고 탄소중립 사회로 가기 위해 얼마나 준비돼 있을까.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홍 교수를 만났다. 그는 “앞으로 이상기후는 더 자주 우리의 일상을 위협할 것”이라며 “기후위기는 환경문제로만 국한되지 않고, 경제문제”라고 했다. 그는 “기후위기 시대, 전 세계가 한국의 국력에 부합하는 기후변화 정책을 요구할 것”이라며 당장 재생에너지를 갖추지 못하면 달라지는 세계 무역환경 속에서 우리 기업들이 뒤처지게 될 거라고 진단했다. 홍 교수는 “세계적 흐름과 달리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 비중을 축소하고 핵발전을 확대하는 쪽으로 거꾸로 가고 있다”며 “이런 나라가 어디 있나. 에너지 정책이 정쟁화되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했다.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간명하다. 기후위기 대응 방안인 탄소중립을 위해 에너지 전환을 안 하면 사람이 죽고, 경제가 죽는다는 것이다.

폭염경보가 내려진 지난달 3일 서울 동대문 종합시장 인근에서 배달 노동자가 아스팔트 열기를 받으며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열화상 카메라는 높은 온도는 붉게, 낮은 온도는 파랗게 보인다. 조태형 기자

- 이번 여름 기후재난으로 다들 힘들었습니다. 올해가 가장 덜 더운 여름이 될 거라고도 하는데요. 사람들이 기후위기를 ‘진짜 위기’로 자각했을까요.

“지금 20~30대를 ‘기후위기 세대’라고 하는데, 조사해보면 20~30대에겐 환경문제가 우선순위는 아니에요. 오히려 40~50대가 기후문제에 제일 민감해요.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선 환경·기후문제는 ‘진보의 어젠다(의제)’거든요. 그래서인지 가장 진보적 성향인 40~50대가 더 관심이 많고요. 젊은 세대는 당장 먹고사는 게 힘들어서인지 관심이 덜해요. 그간 사람들이 먼 미래, 적어도 나와 가족들과는 상관없다고 느꼈을 기후위기가 올여름만 해도 폭우·폭염으로 인명·재산피해가 잇따르니까 ‘진짜 재난이 일상화되나’ 하면서 두려움을 느끼게 됐다고는 봐요. 하지만 국민 대다수가 심각성을 알아도 ‘시급한 내 문제’로 받아들이기엔 거리감이 있지요. 당장 경제·일자리 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생각이 바뀌겠죠.”

- 기후위기가 먹고사는 문제와 연관돼 있다고 했는데요. 어떤 영향을 주나요.

“기후위기는 두 가지 경로를 통해 경제위기로 확산되는데요. 우선 기후변화로 인해 사회경제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인간에게 직접 피해를 끼칩니다. 홍수나 가뭄으로 농업 생산성이 떨어지면 곡물자급률이 낮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극한 기후는 기업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결국 국내총생산(GDP) 손실로 이어질 수 있어요. 또 하나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탄소 배출을 줄이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비용을 치릅니다. 이쯤되면 기후위기가 먹고사는 문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봐야겠죠. 집값도 큰 영향을 받고요.”

- 기후위기가 부동산에도 영향을 미친다고요.

“해수면이 상승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미국 플로리다 같은 덴 작년에도 엄청난 태풍이 몰려왔으니까 두려운 거죠.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안가 호화주택에 살던 부자들이 높은 지대로 옮겨가고 있어요. 미국에선 개발업자들이 고지대에 거주하는 저소득층을 내보내고, 그곳에 멋진 집을 짓는 현상이 이미 벌어지고 있거든요. 그럼 주민들이 더 이상 집값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또 다른 지역으로 연쇄 이동하는 ‘기후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날 수밖에 없죠. 우리도 지난해 8월 단 하루 동안 쏟아진 폭우로 인해 서울이 물바다가 됐잖아요. 신림동 반지하에서 비극적인 사망 사고도 있었고요. 이젠 우리도 주거 지역을 결정하는 데 안전을 고려하겠죠. 저한테도 부동산 신탁회사 같은 곳에서 막 연락이 와요. 앞으로 부동산 시장이 기후위기로 어떻게 바뀌는지 얘기 좀 해달라고 합니다. 국내에서도 이런 흐름을 시장이 감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정부 차원의 선제적인 대응이 꼭 필요합니다.”

용어 설명


RE100
(Renewable Electricity)


기업이 자사에 필요한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풍력·태양광 등) 전기로 사용하겠다는 자발적인 글로벌 캠페인이다.

탄소국경조정제도
(CBAM·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유럽연합(EU)이 자국보다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은 국가에서 생산·수입되는 제품에 대해 탄소배출량을 기준으로 관세를 매기는 제도다. EU는 이 제도를 철강·시멘트·비료·알루미늄·전기 등 탄소배출이 많은 품목에 올해 10월부터 시범 시행한 뒤 2026년 전면 도입할 예정이다.

- 기후위기 대응이 그렇게 간단하진 않을 텐데요. 선진국들은 어떤 노력들을 하고 있나요

“기후위기 대응 선진국들은 화석연료 의존도에서 벗어나고자 재생에너지 확대뿐 아니라 새 시장을 선점해 지배력을 유지하려 앞다퉈 움직이고 있어요. 미국과 유럽 등이 기후위기 대응을 명분 삼아 무역 장벽을 세우고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강화하겠다는 겁니다. OECD 38개국 올해 통계를 보고 놀랐는데요. 지금 덴마크는 재생에너지 비중이 올 상반기 90% 가까이 갔어요. 독일은 52% 찍었습니다. 재생에너지 확충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입니다. 기업도 ‘탄소 줄이지 않으면 너희 회사에 투자 안 하겠다’ ‘거래 안 하겠다’ 이런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어요. 전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 애플이 ‘RE100’ 가입을 선언하며 2030년부터 재생에너지로 전기를 공급받는 기업과만 거래를 하겠다고 했어요. 삼성·SK·현대차·LG가 RE100을 선언한 게 우연이 아니에요. 그리고 RE100에는 핵발전이 포함되지 않아요. 국제 무역규범도 탈탄소 무역규범으로 옮겨간다고 봐요. 유럽연합과 미국은 화석연료로 생산된 상품에 탄소국경세를 준비 중이에요. 에너지 체계를 바꾸지 않으면 수출 위주의 한국 경제에 치명적입니다.”

-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탈탄소 에너지 전환은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방향은 정해졌고, 여기에 우리나라가 얼마나 대처하느냐의 문제만 남았어요.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앞으로 재생에너지로 전환할 수밖에 없어요. 한국에선 압축 성장을 하는 사이에 원자력 발전이 전력 공급에 기여한 바가 꽤 컸어요. 이제는 고맙게도 재생에너지라고 하는 훌륭한 대안이 있는 거잖아요. 단가도 싸고, 효율도 올라갔어요. 계속 원전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 할 자연 여건이 안 된다고 하는데요.

“‘한국은 국토가 좁고 산지가 많아서 재생에너지에 적합하지 않다’ ‘한국 날씨는 재생에너지 발전에 불리하다’ 등의 오해가 있어요. 독일을 보자고요. 독일은 인구도 8400만명이고 국토 면적도 우리의 4배예요. 한국은 독일보다 위도가 낮기 때문에 연간 일사량이 독일의 1.5배입니다. 한국 상공에 제트기류가 흘러 풍력도 작다고는 볼 수 없어요.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태양광 설치 규모는 우리 국토 면적의 3~4% 정도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 정부의 ‘탈원전 폐기’ 정책이 탄소 중립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겠네요.

“탈원전이라는 표현은 엄밀하게 말하면 오용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탈원전은 원전을 건설하다가 중단하든지 할 때이고, 수명이 끝날 때까지 원전을 돌리는 우리나라에는 그 말은 안 맞죠. 한국의 지리적 조건상 원전이 지속 가능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당장 24개 원전을 멈추자는 건 현실성이 없어요. 그렇다면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지속 가능한 ‘전력 믹스’를 만드는 고민을 해야 해요. 마치 ‘원전이냐 재생에너지냐 둘 중 택해라’, ‘재생에너지가 안 되니 원전을 확대해야 한다’. 에너지 정책이 이런 수준에 머무른다면 너무 비극적이에요.”

- 기후위기 대응에 우리는 아직 많이 부족한 상황이군요.

“우리도 서둘러야 하는 상황인데, 오히려 들리는 얘기는 정부가 재생에너지 허가 관련 규제를 강화한다든지 글로벌 흐름과는 너무 상반된 얘기들이 나오고 있어요. 지금 정부가 문재인 정부 태양광 사업을 때리고 있는데요. 만일 불법행위가 있었다면 그건 사법적으로 하면 되는 것이고요. 에너지 이슈가 정치화하는 건 한국 사회의 비극이에요. 한국이 유일하게 석탄·가스·원전 발전 비중을 합쳐 90%인 나라예요. 본래 정부 계획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30%로 끌어올린다는 거였는데 윤석열 정부는 21.6%로 목표치를 줄였거든요. 그만큼 원전 비중이 확대(23.9%→32.4%)됐어요. 세계 흐름과 역행하고, 정말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는 나라예요. 지난 정부도 그렇게 잘했다고 보기는 힘든데 윤석열 정부에서는 퇴행 조짐까지 보여 걱정이에요.”

환경의날인 지난 6월5일 서울 국회 앞에서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와 청년환경단체들이 퍼포먼스를 하며 국회의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 그렇다면 기후위기를 어떻게 우리 모두의 관심사로 만들 수 있을까요.

“이건 국민들이, 설문조사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건데요. 한국의 경제 수준이 선진국이잖아요. 근데도 우리 국민은 여전히 성장에 목마르더라고요. 아직도 복지나 환경보다 성장이 중요하다는 것이 일관되게 나타나요. 저는 이런 점이 역동적으로 기후변화 문제에 대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이 역할은 정치 지도자가 하는 것이고요. 세계 경제 질서를 좌지우지하는 이런 나라들의 방향이 탈탄소로 가고 있으니 우리도 그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국민을 설득하는 거죠. ‘여러분 자식들에게 다시 일자리가 없는 성장률 1% 시대가 고착화되는 게 좋냐’ 저는 그러면 다 싫어할 거라고 봐요.”

- 꼭 다뤄졌으면 하는 기후위기 정책이 있습니까.

“한전과 가스공사 적자가 심합니다. 요금 정상화로 풀어야 하는데, 가격은 못 올려요. 이게 희극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전기·가스 요금 싸게 해주면 누가 실제로 이익을 많이 보겠어요. 부자들과 경제 규모가 큰 기업들이에요. 에너지 요금을 무조건 싸게 유지하는 것이 서민을 위한다는 잘못된 신앙은 깨져야 해요. 작년에 국제 가스요금이 7배가량 올랐거든요. 그 충격을 우리 국민들은 못 느꼈다고 봅니다. 전기와 난방 공급에 필요한 생산 원가를 가격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으면서 국민들에게 왜곡된 정보를 자꾸만 제공하는 것은 천벌받을 일입니다. 전기가 공공재라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해요. 근데 이런 얘기하면, 특히 진보 쪽에서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서민들이 힘들어진다고 얘기해요. 취약계층 문제는 정부가 에너지 지원금을 지급한다든가 하는 식의 다른 방법을 찾아야죠. 그것도 못하면 나라도 아니죠. 근데 가격 정책으로 해결하겠다. 세상에 이런 나라는 없어요.”

이명희 논설위원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