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술 사절’ 팔찌
개강 맞은 대학가에 ‘술 팔찌’가 등장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알코올 귀요미 팔찌’ ‘술 강권 금지 팔찌’라고 불리는 이 실리콘 팔찌는 몇 년 전 서울의 한 대학 총학생회가 자신의 주량을 색깔로 표시하는 팔찌를 만들어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나눠주면서 확산됐다.
▶신입생 주량을 세 단계로 나눠 술을 못 마시거나 마시고 싶지 않은 경우에는 노란색 팔찌를, 얼굴이 살짝 붉어질 때까지만 마시겠다면 분홍색을, 끝까지 마실 수 있다면 검정색 팔찌를 고르게 했다. 또 다른 종류로는 겉면에 ‘술만 받아요’라고 쓰고, 안쪽 면에 ‘마음만 받아요’라고 써서 필요한 대로 뒤집어 사용할 수 있게 한 양면 팔찌도 있다.
▶팔찌나 브로치 같은 작은 액세서리도 때로는 사회적 소통 수단이나 강력한 언어가 될 수 있다.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 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여성들의 옷 장신구인 브로치를 외교적 상징으로 활용한 ‘브로치 외교’로 유명했다. 이라크 언론이 그를 “사악한 뱀 같다”고 비난하자 유엔 회의장에 뱀 모양 브로치를 하고 나왔다. 열 마디 반박보다 강한 분노의 메시지였다. 러시아 외교 장관을 만날 때는 미사일 모양 작은 브로치를 달고 나갔다. 러시아 장관이 “미사일 모양 브로치냐” 물으니 올브라이트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맞아요. 요격 미사일이죠. 우리는 이렇게 작게 만들 수 있으니 허튼 생각 마세요.”
▶1990년대 초 미국의 화장품 그룹 에스티 로더 가문의 에벌린 로더 여사가 유방암을 겪고 나서 핑크 리본을 만들고 유방암 캠페인을 시작했다. 여성의 가슴이라는 단어를 입 밖에 꺼내는 것이 금기시되던 때였다. 유방암에 대한 인식 개선과 조기 진단의 중요성을 알리는 이 캠페인을 계기로 핑크 리본은 유방암 퇴치의 상징이 됐다. 에이즈 퇴치를 위한 빨간 리본, 동성애자 인권 보호를 위한 무지개색 리본 등도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액세서리다. 국내에서는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노란 리본,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후원 팔찌 등으로 이런 액세서리 문화가 젊은 층에 확산됐다.
▶술 팔찌 얘기가 나오자 기성세대는 “그냥 말로 하지, 번거롭게 팔찌까지 만드느냐”는 반응이다. 하지만 ‘의식 팔찌’ ‘기부 팔찌’ 등으로 자신의 의사를 드러내는 것이 젊은 세대에게는 익숙한 세태다. 음주 회식 문화가 달라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젊은 세대에게는 부담스럽고 거북한 경우도 많다. 아직 낯선 자리여서 대놓고 거부 의사를 밝히기 곤란할 때도 있다. 술 팔찌는 이런 음주 문화에 대한 신세대식 저항 화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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