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직필] 한·미·일 회담 이후, 한국 경제 어디로?
8·18 한·미·일 정상회담은 역사적 전환점이 될 것인가. 8·18 회담의 핵심은 유사시 세 나라가 협의해 대응을 조절한다는 것이다. 이는 안보체제 차원에서는 ‘전환’의 계기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향후 과정에 대해,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한·미·일은 인도·태평양에서 공동 역량을 건설하는 역내 이니셔티브를 발표할 것이고, 이는 해상 안보를 포함한다”고 언급했다.
머지않은 시기에 육·해·공, 잠수함, 사이버 분야를 망라하는 다년간 공동 군사훈련 계획이 나올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설리번 보좌관은 3국 안보협력의 제도화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같은 수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향후 3국 안보체제는 느슨한 협의체와 새로운 군사동맹 사이에 있는 어떤 것이 될 것이다.
8·18 회담은 우선 미국 외교의 승리이다. 미국은 2010년대 들어 ‘아시아로의 회귀’를 선언하면서 중국의 군사적 굴기를 견제하려 해왔다. 8·18 회담으로 미·일 동맹과 한·미 동맹을 결속하는 안보체제가 가시화됐다. 미국 외교가에서는 8·17과 8·19는 전혀 다른 날이라는 평가도 나온다고 한다.
한반도 차원에서는, 분단체제가 다시 공고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남북한 분단체제는 1980년대 말 이후 냉전체제의 해체, 민주화의 진전 등으로 약화되고 있었다. 그러나 미·중 협조에서 경쟁의 시대로 전화되면서 한·미·일 결속과 북·중·러 결속이 상호작용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분단체제의 강화는 남북한 기득권층의 강화, 민주화체제와 평화체제의 약화라는 효과를 가져온다.
한국의 성장체제는 위기에 봉착했다. 그간 한국경제의 성장 경로를 이끌어온 동아시아형 발전모델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워졌다. 대안적 성장모델은 오리무중인데, 8·18 회담 이후의 한·미·일 안보체제는 동아시아형 모델을 뒷받침했던 지정학적 조건의 변경을 가져오고 있다. 한국형 성장체제는 ‘동아시아 모델 1’의 단계와 ‘동아시아 모델 2’의 단계로 구분될 수 있다. ‘동아시아 모델 1’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제1단계 한국형 성장체제는 1960~1980년대 한·미·일 국제분업 체제에 근거해 형성된 것이다. 1990년대의 탈냉전 및 글로벌화 조건 아래에서 전개된 동북아 분업구조 속에서 제2단계의 새로운 성장체제가 형성되었다. 한국은 이때 선진국 수준의 발전단계를 거의 추격하는 데 이르렀다.
‘동아시아 모델 2’에 해당하는 한국형 성장체제는 2010년대 중반 이후 정체·후퇴 국면에 들어선다. 이때부터 중국의 추격으로 한국의 경쟁우위가 축소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반도체 산업과 중국 시장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의 성장체제에서 성장률 침체 현상이 뚜렷해졌다. 여기에 미·중 갈등,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반도체·에너지·식량 부문의 변동성이 한층 더 커졌다. 무역수지 악화, 원화 가치 불안정, 가계부채 위험, 인구구조 악화 등은 구조적 문제가 되었다. 또한 소득·자산, 지역, 세대 등 여러 방면에서의 격차·불평등이 빠르게 악화됐다. 동아시아 모델의 장점이었던 성장, 분배, 안정성 모두 흔들리고 있다.
8·18 회담에서 논의된 경제 의제는 주로 경제안보와 관련된 것들이다.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첨단 분야에서는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겠다는 것이다. 반도체, 배터리, 에너지, 바이오기술, 핵심광물, 제약,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등은 미국이 주도하고자 하는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분야이다. 3국 간 협의체를 가동하겠다고 하지만, 미국은 자국 산업 보호주의를 강화하는 것이 기본 입장이다. 협의체 속에서 한국에 ‘협력의 이익’이 배분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8·18 회담은 ‘동아시아 모델 2’가 작동하던 지정학적 조건에 재차 타격을 가했다. 한국이 낮은 발전단계에 있던 1960~1980년대의 ‘동아시아 모델 1’을 다시 불러올 수는 없다. 한국·중국의 추격이 진행된 조건에서 수평분업 구조를 새롭게 짜야 한다. 중국과 인접한 한국·일본은 협력해서 미·중 갈등을 완화하고 한·중·일 분업의 새 틀을 만들어야 한다. 어렵지만 해야 할 일이다.
인도·태평양과 일본의 역할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8·18 회담에서도 “3국의 인도·태평양에 대한 접근법 조율”과 “아세안 주도의 지역구조에 대한 지지”를 확인했다. 인도·태평양으로의 연결에서는, 미국·일본·중국 모두 일정한 경쟁관계에 있다. 일본은 한·미·일 관계, 동아시아 정세에서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것 같다. 한국은 스스로 다층적 연결전략을 갖고 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까. 한국경제,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이일영 한신대 교수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무료 공영주차장 알박기 차량에 ‘이것’ 했더니 사라졌다
- ‘블랙리스트’ 조윤선 서울시향 이사 위촉에 문화예술계 등 반발
- [전문] 아이유, 악플러 180명 고소…“중학 동문도 있다”
- 미납 과태료 전국 1위는 ‘속도위반 2만번’…16억원 안 내고 ‘씽씽’
- 고작 10만원 때문에…운전자 살해 후 차량 불태우고 달아난 40대
- 평화의 소녀상 모욕한 미국 유튜버, 편의점 난동 부려 검찰 송치
- “내가 죽으면 보험금을 XX에게”···보험금청구권 신탁 내일부터 시행
- 경북 구미서 전 여친 살해한 30대…경찰 “신상공개 검토”
- 가톨릭대 교수들 “윤 대통령, 직 수행할 자격 없어” 시국선언
- 김종인 “윤 대통령, 국정감각 전혀 없어” 혹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