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北 김정은 진짜 올까"…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술렁술렁'(종합)
NYT "동방포럼서 푸틴과 무기 거래 논의 가능성" …러 "어떤 소문도 몰라"
(블라디보스토크=연합뉴스) 최수호 특파원 = "북한 김정은이 블라디보스토크에 온다는데, 진짜야?"
5일 오전 러시아 극동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롯데호텔 앞 흡연 공간.
담배를 피우고 있던 한국 기관 주재원과 교민 등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북러 간 무기 거래 논의 가능성을 전하는 뉴스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주재원은 "만약 북한까지 실제 개입한다면 상황이 더 복잡해지는 것 아니냐"며 "기약 없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걱정된다"고 했다.
반면 한 교민은 "솔직히 러시아가 무기를 구하려면 현재로서는 북한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크게 놀랍지는 않다"며 "김정은이 온다면 서로에게 필요한 걸 주고받기 위한 목적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시내에서 만난 한 러시아인은 "갑작스러운 소식에 좀 불안하다"며 "특히 무기 공급 협상에 관한 뉴스가 나오는 것이 무섭다"고 밝혔다.
이어 "만약 뉴스에 나오는 예측이 실제 이뤄질 경우 우크라이나 사태는 더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며 "또 북한과 가까운 극동에서도 향후 어떠한 군사적 행동이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렵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이날 블라디보스토크에 사는 주민과 교민, 주재원 등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주요 뉴스는 단연 김 위원장의 현지 방문 가능성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이날 오후 찾은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북한총영사관 안팎은 별다른 움직임 없이 조용했다.
총영사관 건물을 드나드는 북측 인원은 볼 수 없었으며, 건물 창문 대부분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다만 총영사관 입구에 있는 초소 옆 게시판에는 김 위원장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의 만찬 장면 등을 담은 사진이 여러 장 붙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앞서 4일(미국 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미 정부 관계자 등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오는 10∼13일 러시아 동방경제포럼(EEF) 기간 행사가 열리는 극동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할 계획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NYT는 김 위원장이 방탄 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했다.
동방경제포럼은 러시아가 극동 개발과 주변국과의 경제협력 방안 등을 논의하기 위해 2015년부터 개최하는 행사로 푸틴 대통령은 올해 포럼 기간에도 블라디보스토크를 찾을 예정이다.
미 행정부 관계자는 양국 정상이 회담을 열 경우 무기 거래 문제를 논의할 수 있으며, 북한이 러시아에 탄약과 대전차 미사일 등을 공급하는 대가로 인공위성 등과 관련한 첨단기술 이전과 식량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고 전했다.
다만 양국 정상회담이 블라디보스토크가 아닌 모스크바에서 열릴 가능성도 있다.
김 위원장이 실제 러시아를 방문한다면 2019년 4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푸틴 대통령과 만난 이후 거의 4년 반 만에 이뤄지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 이후 대외적으로 '은둔'에 들어간 김 위원장의 첫 대외 행보가 된다.
북한은 중국 팬데믹 시기인 2020년 1월 국경을 전면 봉쇄했다가 3년 7개월 만인 지난달 말부터 국경을 제한적으로 개방했다.
이처럼 코로나19로 김 위원장이 그간 중단했던 외국 방문을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으로 재개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자 러시아 현지 매체들도 관련 소식을 앞다퉈 다루고 있다.
국경을 개방한 북한과 1년 6개월 넘게 우크라이나 특별 군사작전을 지속하는 러시아가 군사 분야 협력 강화를 공식화한 가운데 김 위원장의 방러 가능성이 불거진 상황이라 성사 여부에 이목이 쏠리지만, 현지 매체들도 진전된 내용은 아직 전하지 않고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도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하는 외국인 명단을 묻는 기자들 질문에 "아직 정확하게 알지 못하며 조만간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외국인 참석자 가운데 김 위원장이 포함돼 있다는 소문에 대해서는 "어떤 소문도 모른다. 우리는 소문을 다루지 않는다"고 했다.
양국 정상회담이 열릴 유력 장소로 꼽히는 블라디보스토크나 북한과 국경을 접한 도시인 연해주 하산에서도 아직 김 위원장 방문에 대비한 뚜렷한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날 연해주 당국은 김 위원장의 블라디보스토크 방문 가능성에 대한 공식 통보를 아직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하산 측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모든 것이 평소와 같다"며 "접경지역에 있는 (조·러) 우호의 집에서 어떤 준비가 이뤄질지에 대한 정보도 없다"고 말했다.
러시아 극동철도청 관계자들은 현재까지 김 위원장이 블라디보스토크에 타고 올 수 있는 방탄 열차를 맞이할 준비에 대한 공식 명령은 없다고 전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한국총영사관 측도 "(김 위원장 방문과 관련해) 아직 확인된 내용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최근 북한과 러시아, 중국은 한미일 3국의 안보협력 강화에 대응해 결속을 강화하고 있지만, 북러 관계는 정치적 분야를 제외하고는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특별 군사작전에 쓸 무기 확보가 필요한 러시아와 오랜 국경 봉쇄로 인도적 지원 등이 절실한 북한 상황이 맞물려 향후 양국이 군사 등 분야에서 실질적 협력 수준을 높일 수 있다는 전망은 지속해서 나왔다.
특히 지난 7월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북한의 '전승절'(6·25전쟁 정전협정기념일) 70주년 행사 참석을 위해 방북하면서 이러한 전망의 실현 가능성은 한층 더 커졌다.
이런 까닭에 아직 러시아 정부의 명확한 입장 발표는 없지만, 어떤 형식으로든 이달 안에 북한·러시아 간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은 커 보인다.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주북 러시아 대사 역시 지난달 말 자국 매체와 인터뷰에서 북러 정상회담 전망에 대해 "조만간 양국 정상들의 새로운 만남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한편 북한과 러시아는 작년 11월 코로나19로 중단했던 연해주 하산역∼북한 두만강역 간 국경 철도 화물 운송을 재개했으며, 지난달 말에는 평양과 블라디보스토크를 오가는 여객기 운항도 다시 시작했다.
su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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