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진의 바디올로지] 조지 오웰은 ‘계급의 냄새’를 맡았다
개는 냄새로 사람을 식별한다. 사람도 조금은 가능하다. 덧붙이자면, 계급 냄새만큼은 사람이 개보다 날카롭게 맡는다.
비판적 작가 조지 오웰은 계급 간 차이의 비밀이 냄새에 있다고 보았다. 오웰이 장미를 키운 것을 두고 작가 리베카 솔닛은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사회주의자가 한그루 사과나무가 아닌 장미나무를 가꾸는 것이 의미심장하다고 적었다. 하지만 오웰의 장미는 악취 대신 향기를 가까이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노동계급의 비참한 생활을 묘사한 르포르타주 ‘위건 부두로 가는 길’과 자전소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에서 오웰은 빈민의 악취를 상세히 묘사했다. ‘카탈로니아 찬가’에서는 민병대 참호 속 지린내를 묘사하며 “전쟁 특유의 냄새”라고 적었다. 문제적인 체제나 인물도 냄새로 감별했다. 전체주의에 저항하지 않는 사회주의에서 썩은 내가 난다고 비판했고, 위선적이고 부유한 사회주의자들에게서는 돈 냄새를 맡았다. 지금 한국사회에도 ‘오웰의 코’를 가진 정치인이나 정치평론가들이 적지 않다. 특정 당에서 썩은 내, 구린내가 난다는 류의 표현은 정쟁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근대 이전까지 후각은 인간의 오감 중에서도 별로 중요하게 쳐주지 않던 감각이었다. 야만인에 가까울수록 후각이 발달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역사학자 알랭 코르뱅은 1750년 무렵 ‘기체화학’이 등장하면서 악취와 향기가 뚜렷하게 구분되었다고 설명한다. 근대정신은 개인위생을 강조했고 배설물, 분뇨, 동물적인 것, 유기체 특유의 냄새는 ‘민중의 것’으로 분리되었다. 빈민 지역의 변소 냄새, 농촌의 퇴비 냄새, 노동자 몸에 흐르는 땀 냄새는 혐오를 받았다. 프랑스 성매매 여성들은 ‘악취를 풍기는 여자’를 뜻하는 ‘퓌탱’(putain)으로 불리면서 불결한 여자로 분류됐다.
악취에 대한 불안감은 도시 곳곳에 안개처럼 불길하게 스며들었다. 병원·교도소·병영·교회·극장 등 냄새나는 사람들이 밀집한 공간은 위생학적 위험이 들끓기 때문에 철저히 관리받아야 하는 장소가 되었다. 부르주아는 프롤레타리아의 분비물을 두려워했으며 부자들은 가난한 자들의 냄새가 자신에게 스며들지 못하도록 선을 긋고 집안 냄새를 정화했다. 공공장소를 ‘정화’하는 근대적 기획은 냄새나는 오염된 존재들을 감지하고 그들과 시민을 분리하려는 배타적 전략이었다. 도심 거리 퀴어퍼레이드 반대 운동도 이런 근대적 타자화의 냄새를 강하게 풍긴다.
서구의 근대적 후각 관념은 19세기 후반 한반도에 당도했다. 조선을 찾은 선교사들은 처음엔 산과 들에 가득한 꽃향기에 매혹됐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코를 찌르는 타자의 냄새를 맞닥뜨린다. 거리의 도랑 냄새, 길가에 방치한 주검 썩는 냄새, 환기하지 않는 방에서 나는 등불기름 냄새, 메주 냄새, 씻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 풍기는 악취가 서구 백인들의 혐오와 동정을 함께 불러일으켰다. 비위생적인 조선의 악취는 서구 백인들에겐 참기 힘든 것이었지만 후각은 쉽게 무뎌지는 것이기도 해서 이들은 점점 환경에 익숙해진다. 하지만 조선인은 결국 기독교를 받아들여야 할 전근대적인 민족이었다. 근대 초기 선교사 후각 기록을 연구한 국문학자 김성연은 보이지 않는 미생물 위협과 보이지 않는 신에 대한 믿음을 결합한 선교사들의 감각 경험은 종교와 과학과 사상이 한반도에 개입되는 장면임과 동시에 상호이해의 가능성이 움트는 지점이기도 했다고 분석했다.
구미의 위생학적 지식을 받아들인 1920년대 이 땅의 계몽주의자들은 전근대적 악취를 퇴치하는 위생 담론을 전개한다. 아무리 비단 치마저고리를 떨쳐입었더라도 머리에 냄새가 나면 견딜 수 없다거나, 암내가 있으면 소박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거나, 겨드랑이 땀내가 나면 시집도 못 간다거나, 흑인종은 냄새가 지독하다는 식의 성차별적, 인종차별적인 체취 이야기가 신문에 실렸다. 한국인들에게 체취는 점차 자기 신체를 관리하고 타인의 신체를 감시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어갔다. 체취 문제는 의료화해서 입냄새를 없애는 신진대사 활성법, 겨드랑이 액취증(땀 악취증) 치료법, 냄새의 원인이 되는 생식기 질환 치료법 등에 관한 광범위하고 세밀한 의료지식 담론을 미디어가 적극 유포했다.
글로벌 신자유주의 시대에 체취는 더욱 예민하고 섬세한 계급 의제가 되었다. 영화 ‘기생충’에서 냄새는 혐오의 원인이자 살인의 동기로 작용한다. 아이티(IT)기업 사장 박동익(이선균)은 운전기사 기택(송강호)의 몸에서 행주 냄새, 지하철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박동익은 자기 곁에서 하층민 냄새를 피우는 기택이 ‘선’을 넘는다고 생각했지만, 기택은 사람이 죽어 나가는 아수라장 속에서도 가난의 냄새를 식별하고 코를 틀어쥐면서 선을 넘는 박동익의 모습을 본 뒤 그를 살해한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특정 취향의 행동 기제를 아비투스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자본가 계급이 가진 후각의 아비투스는 다른 계급과 선을 긋고 혐오적 악취를 풍기는 타자와 고급스러운 향기가 나는 자아를 구별한다. 오늘날 후각의 계급 정체성은 자본·연령·지역 등에 따라 더욱더 섬세하게 나뉜다.
최근 시골에서 농사짓는 장인·장모의 몸에서 냄새가 난다고 온라인 게시판에서 뒷담화를 했던 남편 이야기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다. 체취 관리는 공동체 성원권(membership,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권리)의 문제다. 서구에 진출한 한국 선수들은 마늘 냄새를 없애느라 김치를 멀리한다. 수능을 준비하는 교실에서 냄새나는 아이는 그 자체로 훼방자가 된다. 공부만으로도 힘겨운 아이들은 자기 살 냄새를 관리하려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미용제품과 의학 정보를 구하며 스스로 신체를 감시한다. 한겨레가 최근 ‘씻을 권리’ 기획기사를 내보내면서 민주노총과 청소노동자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냄새가 난다는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들었다고 대답한 이는 60%에 달했다. 도시의 청결과 위생을 담당하는 청소노동자가 역설적으로 씻을 권리조차 갖지 못하고 체취 때문에 성원권을 박탈당한다. 노숙인은 겉모습 때문이 아니라 냄새 때문에 식당에서 내쫓긴다.
체취를 유발하는 땀샘은 체온 조절을 담당하는 에크린선과 겨드랑이 등 특정부위에 발달해 지방산과 유기물질을 배출시키는 아포크린선으로 나뉜다. 땀은 원래 냄새가 없지만 아포크린선 땀샘에서 분비가 과다할 때 피부에 서식하는 세균과 땀이 섞여 지방산과 암모니아로 분해되면서 악취로 바뀐다.
체취가 심한 이들은 일상생활에서 큰 고통을 겪는다. 나이가 들면 몸에서 ‘가령취’라는 ‘노인 냄새’가 난다. 중년 이후 피지 속 지방산이 산화돼 생기는 노넨알데하이드가 원인이다. 생선냄새증후군인 트리메틸아민뇨증은 몸에서 땀, 소변, 썩은 생선, 썩은 계란, 쓰레기 같은 냄새가 나는 희귀질환으로, 유전되며 여성의 경우 월경 때 특히 냄새가 심하다고 한다.
남성 특유의 체취에 ‘총각 냄새’ ‘홀아비 냄새’라는 딱지를 붙이지만 성적 이미지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여성을 비난할 때 냄새나는 걸레에 비유하는 것은 성적으로 더럽고 문란하다는 뜻을 포함한다. 국립국어연구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암내’를 ‘암컷의 몸에서 나는 냄새, 발정기에 수컷을 유혹하기 위한 것이다’고 적고 있다. 작가 최현숙은 ‘암내’는 여성을 성적 존재로만 보는 멸시가 담긴 단어이기도 하다며 아버지에게서 유전된 액취증이 자신을 끝도 없는 구덩이인 ‘무저갱’ 속에 빠뜨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생애를 지배한 액취증 때문에 얻은 수치심과 모멸감으로 소외된 사람에 대한 마음가짐과 태도를 만들어 나갔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는 홍차에 적신 마들렌 냄새를 맡고 과거를 돌아보는 장면이 나온다. 이렇듯 특정 냄새로 기억을 떠올리는 것을 ‘프루스트 효과’라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은 고인의 옷을 끌어안고 숨을 훅 들이마시며 폐부 깊이 냄새를 간직하려고 한다. 체취가 사라지기 전까지 애도는 완성되지 않고, 체취가 사라진 뒤에도 어느 순간 바람결에 프루스트 효과로 남은 이는 고인을 떠올리게 된다. 여름만 있는 지역에서 공부하다 문득 코끝을 스치는 겨울 냄새가 그리워 귀국했다는 어느 연구자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냄새는 우리를 다른 곳으로 데려간다. 인생을 움직인다.
※참고문헌: 오웰의 코(존 서덜랜드 지음, 차은정 옮김) 악취와 향기(알랭 코르뱅 지음, 주나미 옮김) ‘근대 초기 선교사 기록에 담긴 후각 감각을 통해 본 문화번역의 가능성’(김성연),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최현숙)
이유진
한겨레21 선임기자. 한겨레 편집국 문화부, 편집부, 사회부 기자를 거쳐 책지성팀장과 토요판 부장을 지냈다. 대학원에서 여성학과 문화학을 공부했고 감염병과 주부주체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지성이 금지된 곳에서 깨어날 때’가 있고, ‘엄마도 아프다’ ‘종이약국’을 다른 필자들과 함께 썼다. ‘바디올로지’는 ‘몸(body)’과 ‘학(-logy)’의 합성어로, 지난 100년 동안 미디어를 통해 유포된 몸 담론을 씨앗으로 전쟁터나 다름없는 몸과 젠더, 장애, 노화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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